『여름을 지나가다』에서 ‘여름’은 지나치게 뜨거워서 살아가기 쉽지만은 않은, 열매를 수확하기 전의 시기를 뜻한다. 『여름을 지나가다』는 손에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은 인생들에 대해 말한다. 이 소설은 민과 수호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처음엔 두 인물이 살아가는 모습이 비슷해서 같은 인물인가 의심했었다. 저마다의 불안이 잠식한 도시의 풍경 속에서,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작은 죽음을 경험하는 소설 속의 인물들이 겹쳐 보였다. 소설 속 인물의 시선이 타인에게로 갔다가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모습도 의심의 원인 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박선우의 신분증으로 신분을 속이고 일하는 수호와 30분씩 다른 사람의 집에 들어가 다른 사람으로 살아보는 민이라는 인물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자신의 삶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는 그들의 처지가 하나둘 드러나면서 인물들의 행동이 이해가 되었고, 결국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 살아야 하는 순간이 올 때는 다른 삶을 좀 더 지속할 수 있기를 응원했다. 또한, 민이 자신의 연인인 종우를 위해 했던 행동으로 인해 어떤 삶이 자발적인 죽음을 택한다든지, 이후 타인의 삶에 개입하고자 하는 의지가 전혀 없던 민이 수호의 삶에는 적극적으로 들어가 도와주려고 한다든지 하는 장면에서는 뭉클하기도 했다. 기억되지 않는 삶과 죽음에 대해 기록하려는 작가의 시도가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타인에게 동감하기는 어렵지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한 번 더 상기시켰고 자신의 것을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삶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