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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여자 - 일상에 도전하는 철학을 위하여
줄리엔 반 룬 지음, 박종주 옮김 / 창비 / 2020년 4월
평점 :
<생각하는 여자>는 사랑, 놀이, 일, 두려움, 경이, 우정이라는 삶과 긴밀한 주제 여섯 가지를 철학을 공부하는 여성의 시선으로 풀어낸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줄리엔 반 룬은 각각의 주제마다 로라 키프니스, 시리 허스트베트, 낸시 홈스트롬 등 여덟 명의 여성철학자를 공부하고 인터뷰하여 책을 엮었다. 우선 백인 남성 중심인 철학이라는 학문을 여성의 시선에서 일상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다.
책 제목의 ‘생각하는 여자’는 이 철학자들 자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 반전이었다. 생각하는 것이 여성이 당연히 가지지 못하는 권리이고 그 생각이라는 것을 했을 때, 소위 ‘나댄다’라는 말을 듣기 일쑤인 사회적 분위기에 저항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하는 여자’는 어떻게 살아남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다루고 있다. 또한, 여덟 명의 철학자들이 ‘생각만 하는 여자’가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이라 그 점이 더 신뢰감을 주었다.
모두 재밌게 읽었다. 재밌다기보다는 정말 많이 생각해야 했고, 그래서 진도가 더디었다. 나한테 새롭게 느껴졌던 파트는 사랑과 우정이었는데, 사랑에 대한 시선을 확장시켜 주었다. 철학자의 사유도 훌륭했지만, 사랑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저자의 시선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사랑이 건강한 마음과 삶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들뢰즈와 라깡에게 영향을 받은 로지 브라이도티의 이론적 개념이 흥미로웠다. 우리는 모두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주체이지만, 타인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받고 얽히고 의존하며 끊임없이 형성된다. 이를 통해 상호작용이 이루어지고 상호작용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데 이와 같은 형태를 우정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브라이도티가 이야기하는 우정은 차이를 이해하는 ‘복잡성의 놀이’와 같은 것인데, 나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관계를 지속하는 것을 놀이로 표현한 것이 참신하게 느껴졌다.
이 책의 옮긴이가 한 말을 옮겨 적는다. ‘생각이란 삶이 불편한 사람들의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워서 마주치는 모든 것이 곧 질문거리가 되는 어린아이가 그렇다.’.
평소에 생각이 많아 편하게 살 수 없어 그만 생각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마음 편히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생각이 누군가의 삶의 어딘가에 닿아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젠 생각을 멈추고 싶다는 생각을 그만할 것 같다. 자신을 위해 지구의 만물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지구의 만물을 위해 도움이 되고자 존재한다고 생각하라는 ‘품위 있는 그녀’가 한 말처럼 더 생각하고 더 나대야겠다.
(p.29) 점차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덧없는 일들과 사소한 짜증들 외에 이 관계에 남은 것이 거의 없게 된다. 핵심이 사라진다.
둘은 사랑에서 빠져나온다.
(p.172) 예를 들어 많은 여성들은 공공장소의 성별화된 구성으로 인해 도시에서의 야외 여가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곤 한다. 그런 식의 구성은 우리로 하여금 공공장소를 남성은 언제든 자유로이 접근가능하지만 여성은 특수한 조건 하에서만, 혹은 비난이나 위험이라는 요소와 함께하면서만 접근가능한 곳으로 읽게 만든다.
(p.29) 점차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덧없는 일들과 사소한 짜증들 외에 이 관계에 남은 것이 거의 없게 된다. 핵심이 사라진다.
둘은 사랑에서 빠져나온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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