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초판본, 양장)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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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농사를 짓는 윌리엄 스토너는 효율적인 농사를 위해 농과 대학에 진학하지만, 우연히 들은 영문학개론 수업에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읽고 전과는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 그렇게 흘러간 스토너의 인생은 우리 주변에 있을 법 하지만 잔잔한 비극이다.

<스토너>는 한 순간의 선택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통의 연속인 삶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각 개인은 어떤 고유성을 가지고 있을지 등을 상상하게 해 준다. 타 버려 앙상하고 곧 바스라질 것 같은 나뭇가지 사이로 기둥만이 남아 있는 폐허가 창문 사이로 보이는 것이 이 책의 표지인데, 주인공인 스토너의 삶을 상징하는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는 주인공을 보면서 끊임없는 자기 반성을 하게 되었다.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할 말이 너무 많아 시작조차 할 수 없는 작품이다. 스토너의 지난한 삶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었던 것만으로 작품의 의미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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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호스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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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음복>을 읽고 지나치게 인상 깊어서 신작이 언제 나오나 검색창에 작가의 이름을 검색하거나 인터넷 서점 신간 알림이 뜨는 방식으로 기다렸다. 어딘가 음침하고 적나라한 스릴러 장르의 소설을 한국 소설에서 볼 수 있을 줄이야. <화이트 호스> 또한 이런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진다.

7편의 단편에서 배경이나 인물이 어쩐지 위태롭고 불완전하고 안전하지 않았지만, 그럴수록 이 소설 속에 빠지는 나의 세계는 반대가 되어갔다. 여성에게 완전히 안전한 공간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 오히려 위험한 세상을 그려내는 작가의 세계에 스며드는 게 안전하게 느껴졌다. 아마 그럴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작가가 글을 잘 썼기 때문일거고 하나는 진짜 현실을 그려내고 있어서일 것이다.

<음복> 이외에 가장 좋았던 작품은 <가원>이다. 가원이라는 이름의 집은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뜻도 있지만 마지막에 다른 뜻이 언급된다. (이에 대해 더 해석하고 싶지만 스포일러가 될까 멈춘다.) 소설에는 ‘나’의 미래를 위해서 나를 엄격하게 대하는 할머니와 ‘나’의 숨통을 트게 해주는 할아버지가 나온다. 그 이면에는 집안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계속해서 생각 없이 돈을 끌어다 쓰는 할아버지와 어떻게든 집안을 망하게 하지 않으려고 버둥대는 할머니가 있다. 죽은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살아있는 할머니를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의 고뇌가 현시대 여성들의 고민과 닿아있다. 또한, 가정 내의 악역을 도맡을 수밖에 없는 여성의 위치를 부각시키는데, ‘나’의 웃는 모습을 바라봐 주는 할아버지와 그 모습을 내버려 둘 수 없는 할머니를 그리는 장면에서 드러났다.

✔️ 그때 나는 이미 뭔가를 예감했던 것 같다. 이를테면, 앞으로 내가 그와 비슷한 남자들을 만나게 되리라는 사실을. 자신의 진짜 능력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남자들. 어쩔 수 없이 부당한 현실을 감내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남자들. 기회만 주어진다면, 이번만큼은, 정말이지 이번만큼은 제대로 해낼 수 있다고 믿는 남자들. 그들과 헤어질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어쩌다보니 겨우 이 정도 얄팍함에 자신을 갖는 남자들만 만난 것일까. 아니면 이 세상에는 이런 남자들만 있는 것일까. 그러니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들 중 누구도 달라지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러니까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p.68-69)
✔️ 하지만, 왜, 어째서.

그 무책임한 남자를 미워하는 것이, 이 미련한 여자를 사랑하는 것보다 힘든 것일까.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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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 문지 스펙트럼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김현성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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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 중 하나로, <모자>에는 10권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고전을 빛의 파장과 같이 펼쳐주는 역할에 있어서 문지 스펙트럼이라는 이름을 잘 붙인 것 같다. 또한, 크고 깊은 세계를 얇고 가벼운 책의 물성으로 만날 수 있어 더 자주 보고 싶고 쉽게 읽혔다.

내지와 표지 글자의 색을 맞춘 디테일도 좋았고, 달랑 코트만 둥둥 떠 있는 모습의 그림도 <모자>라는 책과 잘 어울렸다.

 

베른하르트의 글이 잘 안 읽히면 정상이라는데, 나는 잘 읽혔다. 현재 내 정신 상태가 불안정하다는 것을 책을 읽으며 많이 깨달았던 것 같다. 책을 적절한 시기에 잘 만난 것 같다. 행복하기만 하고 마음 편하기만 했다면, 이 책이 공감은커녕 이해조차 되지 않았을 테니까.

 

<모자>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글은 모자인데, 대략적인 줄거리를 소개해보겠다. 어느 날 모자를 주운 는 푸주한들을 찾아다닌다. 내가 사는 마을부터 이웃 마을까지 돌아다니며, 푸주한들뿐만 아니라 농부, 나무꾼 등까지 찾아다닌다. 그들은 모두 다 똑같은 모자를 쓰고 있다. ‘는 주인이 없는 모자를 들고 다닌다. 결국 는 모자의 주인을 찾지 못하는데, 그것에 죄책감을 느껴 모자 도둑이라는 환청을 들으며 집으로 돌아온다.

처음에는 모자가 신분이나 직업을 결정할 수 있는 등의 상징적 요소로 쓰인다고 생각했다. 다 읽고 난 후에 모자가 자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정신착란을 앓고 있는데, ‘모자도 마찬가지다. 정신병이 있는 , 산림학자로서 공부도 많이 한 가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자신의 병에 대해 의사들에게 질문만 하고 다니던 , 타인의 모자들을 경험한 후 집으로 돌아와 모자를 쓰고 글을 쓴다. 그리고는 나를 제외한 사람들도 이러한 모자를 쓰고 있다고 생각하며 글을 마무리 짓는다.

여기서 인상 깊었던 것은 다른 사람의 모자들이 대부분 다 회색이라는 점이다. ‘회색 도시’, ‘회색분자등으로 유추할 수 있는 회색의 이미지는 부정적이다. 획일화되었고 어두우며 차갑다. 어떤 이유로 인해 획일화되고 인간성이 상실된 사람들의, 자아의 형상과 그 속에서 고뇌하는 인간이 미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야기하고 있는 글이 아닐까 생각했다.

 

조금은 혼란스러운 부분도 있었지만, 생각을 확장해주는 글들이었다. 평소 쓰지 않는 부분의 머리를 쓰면 근육과 같아 당기는 것 같은 느낌이 이 책을 읽을 때도 들었다. 편안할 때 읽어보면 어떨지 궁금해진다. 내 상태가 너무 안정적이면 읽고 싶지 않을 것 같기도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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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여자 - 일상에 도전하는 철학을 위하여
줄리엔 반 룬 지음, 박종주 옮김 / 창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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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여자>는 사랑, 놀이, , 두려움, 경이, 우정이라는 삶과 긴밀한 주제 여섯 가지를 철학을 공부하는 여성의 시선으로 풀어낸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줄리엔 반 룬은 각각의 주제마다 로라 키프니스, 시리 허스트베트, 낸시 홈스트롬 등 여덟 명의 여성철학자를 공부하고 인터뷰하여 책을 엮었다. 우선 백인 남성 중심인 철학이라는 학문을 여성의 시선에서 일상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다.

 

책 제목의 생각하는 여자는 이 철학자들 자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 반전이었다. 생각하는 것이 여성이 당연히 가지지 못하는 권리이고 그 생각이라는 것을 했을 때, 소위 나댄다라는 말을 듣기 일쑤인 사회적 분위기에 저항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하는 여자는 어떻게 살아남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다루고 있다. 또한, 여덟 명의 철학자들이 생각만 하는 여자가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이라 그 점이 더 신뢰감을 주었다.

 

모두 재밌게 읽었다. 재밌다기보다는 정말 많이 생각해야 했고, 그래서 진도가 더디었다. 나한테 새롭게 느껴졌던 파트는 사랑과 우정이었는데, 사랑에 대한 시선을 확장시켜 주었다. 철학자의 사유도 훌륭했지만, 사랑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저자의 시선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사랑이 건강한 마음과 삶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들뢰즈와 라깡에게 영향을 받은 로지 브라이도티의 이론적 개념이 흥미로웠다. 우리는 모두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주체이지만, 타인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받고 얽히고 의존하며 끊임없이 형성된다. 이를 통해 상호작용이 이루어지고 상호작용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데 이와 같은 형태를 우정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브라이도티가 이야기하는 우정은 차이를 이해하는 복잡성의 놀이와 같은 것인데, 나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관계를 지속하는 것을 놀이로 표현한 것이 참신하게 느껴졌다.

 

이 책의 옮긴이가 한 말을 옮겨 적는다. ‘생각이란 삶이 불편한 사람들의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워서 마주치는 모든 것이 곧 질문거리가 되는 어린아이가 그렇다.’.

평소에 생각이 많아 편하게 살 수 없어 그만 생각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마음 편히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생각이 누군가의 삶의 어딘가에 닿아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젠 생각을 멈추고 싶다는 생각을 그만할 것 같다. 자신을 위해 지구의 만물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지구의 만물을 위해 도움이 되고자 존재한다고 생각하라는 품위 있는 그녀가 한 말처럼 더 생각하고 더 나대야겠다.

(p.29) 점차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덧없는 일들과 사소한 짜증들 외에 이 관계에 남은 것이 거의 없게 된다. 핵심이 사라진다.

둘은 사랑에서 빠져나온다.

 

(p.172) 예를 들어 많은 여성들은 공공장소의 성별화된 구성으로 인해 도시에서의 야외 여가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곤 한다. 그런 식의 구성은 우리로 하여금 공공장소를 남성은 언제든 자유로이 접근가능하지만 여성은 특수한 조건 하에서만, 혹은 비난이나 위험이라는 요소와 함께하면서만 접근가능한 곳으로 읽게 만든다.

(p.29) 점차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덧없는 일들과 사소한 짜증들 외에 이 관계에 남은 것이 거의 없게 된다. 핵심이 사라진다.

둘은 사랑에서 빠져나온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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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피안
하오징팡 지음, 강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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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에 기반한 상상력은 늘 반갑다. 특히나 SF소설은 소설이 과학에 기반했다는 사실만으로 설레게 한다. 하오징팡이라는 작가의 세계에 처음 입장했지만, 꽤 오래 머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이 소설은 무척 친절해서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쉽게 읽을 수 있다.

여섯 편의 단편 중 가장 완성도가 높았던 작품은 <영생 병원>이다. 소설에 푹 빠져 읽었다. <영생 병원>은 죽어가는 어머니가 병원에서 퇴원하면서 다른 사람 같이 행동한다. 분명 아들이나 남편에 대해 잘 알면서도 전만큼 서운해하지 않아서 가정의 평화 또한 지키기 쉽다. 무언가 석연치 않았던 아들은 이에 대해 사설탐정인 친구를 이용하여 조사해본다. 미심쩍으면서도 가끔 무섭기도 한 어머니를 둘러싼 비밀, 그보다 더 큰 반전까지 있다.

가장 시의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작품은 <건곤과 알렉>이었다. 글로벌 AI인 건곤은 세상에 구석구석에 관여하는 똑똑한 인공지능이다. 하지만 설계자로부터 어린 아이에게 배우라고 요구받고는 세 살 반짜리 아이, 알렉의 곁에 머문다. 건곤은 알렉의 모든 것에 ‘이해하기 어려움’이라고 표시한다. 자신의 일에 대해 설명해도 정작 엉뚱한 것에 관심을 가지고, ‘좋은 친구 훈장’을 줘도 우리가 친한 친구냐고 건곤이 자신만의 친구냐고 묻는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 투성이지만, 결국 건곤은 알렉에 대해 이해하려고 한다. ‘이해하기 어려움’에서 ‘이해가 필요함’이라고 표시를 바꾼다. 관계에 대한 노력이 필요함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이야기 속 인공지능과 사람이 자꾸 사람과 사람으로 읽혔다. 감성과 공감이라는 것은 인간과 인공지능이 구별되는 지점인데, 우리 모두 인공지능이 되어가고만 있는 것은 아닐까. 타인에 대해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전염병이 창궐한 현재, 우리는 접촉이 아닌 접속으로 소통한다. 상황뿐만 아니라 공감의 부재 또한 어쩔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소설이 내게 던진 질문은 두 가지였다. 인공지능이 도래한 세상 속에서 너는 어떤 다름을 지니고 살아갈 것인지, 인간의 세계에서 제대로 된 소통을 하려면 서로의 다름을 어떤 방식으로 인정하고 살아갈 것인지 말이다.

우리는 다 다른 존재다. 생명이나 존엄성이 다다른 존재인 것이 아니라. 개별성을 존중 받으려면 내가 나라는 사실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이 세상에서 나를,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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