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잡영 - 이황, 토계마을에서 시를 쓰다
이황 지음, 이장우.장세후 옮김 / 연암서가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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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시를 좋아하면서도 한시를 제대로 읽어보긴 처음이다.

한시는 제대로 배워서 좀 아는 사람들만이 즐길 수 있는 분야가 아닐까 싶었던 마음에 그동안 쉽게 접근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었지만 이번에 퇴계잡영은 이황선생의 한시를 읽기 쉽게 한문 원시의 한글 번역과 또 그 내용을 다시 산문으로 풀어 설명해놓은 책이라 딱딱하거나 부담스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꼭 읽어봐야겠다 마음먹고 집어든 책이다.




잡영의 사전적 의미는 생겨나는 일에 따라 읊조리는 것인데 시의 제목으로 상용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비슷한 말로 잡시라는 것도 있는데 이러저러한 흥취가 생겨날 때, 특정한 내용이나 체제에 구애를 받지 않고, 어떤 일이나 사물을 만나면 즉흥적으로 지어내는 시를 말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퇴계잡영의 시들은 퇴계 선생이 벼슬에 대한 생각을 미련없이 버리고 퇴계마을에 머무르면서 언제나 마주하는 맑은 시냇물과, 푸른 산, 조용히 음미하며 읽었던 책이나 철따라 바뀌어 피는 꽃들을 소재로 저절로 흥이 나서 쓴 즉흥시들이라고 할 수 있다.




퇴계잡영에 담겨져 있는 한시들은 모두 이황선생이 40대 이후에 토계라는 마을에 정착하면서 자신의 호를 퇴계라 고치고, 그 토계마을에서만 지은 시를 모아 해설과 함께 엮어낸 시집이기도 하다. 한시란 한문학중에서도 운문으로 이루어진 시를 말한다. 어려기만 했던 한문 고전을 이번에는 꼭 도전해보리라 마음먹게 만들었던 또 한가지 이유는 어렵고,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은 저자들이 모두 쉬운 말로 다시 바꿔 옮겼기 때문에 읽는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이것만큼 반가운 일이 없었으니 말이다.




안동의 토계동에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조그만 실개천이 있는데 이 실개천의 원래 이름은 토계였다. 이퇴계 선생이 이 토계를 퇴계로 고쳐 부르면서 자신의 호로 삼으셨는데, 퇴계라는 시를 읽어보며 퇴계선생의 됨됨이에 대해 다시 한 번 존경의 마음을 품게 된다. 속세를 벗어나 벼슬에 연연하지 않은 채,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으셨던 그 분의 성품을 다시 보면서 각박한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그 깊은 뜻을 배우고 따라야 할 점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 책 속의 시들을 하나하나 읽다보면 퇴계 선생이 한가롭고 조용하게 자연 만물을 보고 느끼며, 대자연과 자신이 하나됨을 느껴 흥에 겨워 적어내려갔던 시들이란 인상을 받게 되는데 퇴계 선생은 잡영이야말로 자연과 소통하는 방법이었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원문만 보았다면 쉽게 이해하지 못했을테지만 시에 대해 얽힌 일화나 구체적으로 쉽게 읽을 수 있는 해설, 그리고 어려운 단어에 대한 설명으로 인해 한시를 처음 접한 내가 봐도 결코 어렵거나 부담스럽지 않았다는 부분이다.




퇴계잡영을 통해 학문을 닦아 성현의 길에 이르고자 했던 퇴계 선생의 전원 생활이나 향토에서 삶을 이해하고자 했던 마음을 되새겨 볼 수 있었다. 퇴계 선생이 후세에 남긴 수많은 책들 중에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었던 이 책을 선택했다는 것에 대해 전혀 후회되지 않았고, 그동안 한시라면 별 관심이 없었던 나였지만 앞으로는 한시에 대해서도 좀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될 것만 같다는 것이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가장 크게 올린 수확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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