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hallonin > 한국만화, 어떻게 살아나야 하는가.
화제의 와인만화 '신의 물방울' 만나다
이 기사가 신선했던 것은, 한 편의 만화가 일으킨 현상을 추적하기 위해 일본 현지에서 만화의 스토리 작가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시켰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온전히 와인 얘기만을 위해서. 와인이라는 소주에 비해 꽤 비싼 기호품과 중앙일보라는 매체의 성격이 일으키는 화학효과를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발 빠른 기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신의 물방울]이란 만화의 이슈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이겠고, 또한 앞으로의 이슈화 또한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양반이 보통 양반이 아니었던 것이다....
김전일=신의 물방울=겟백커스 작가가 동일인이라니!
사실 [에지]와 [쿠니미츠의 정치], [겟백커스], [신의 물방울]로 이어지는 고단샤 라인은 여러 모로 상당히 흡사한 이미지들이라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같은 인물의 스토리, 혹은 같은 인물의 기획의 결과가 아닌가 싶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우와, 짱이다! 라고 외칠 법한 작품은 없지만, 적어도 대중의 기호를 완벽하게 노리고 있다는 점에선 탁월한 작품군이라고나 할까.
이 작품군들의 성공의 뒷배경엔 한가지 조건이 있다. 바로 전문적인 지식을 통한 탄탄한 바탕과 트렌드에의 추구라는 점. 그중에서 특히 물건너 온 [신의 물방울]의 성공은 허영만의 작품세계 변화와 더불어 진퇴양난에 빠진 한국만화계에 있어서 중요한 시사점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기능성 만화의 필요다.
우선 흔히 만화의 기본축이라고 암묵적으로 얘기되는 소년만화쪽을 보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단순히 소년만화라고 해서 소년만화 에스컬레이터 법칙 동료동료동료 등등 주루룩 넣어서 만화 만들어봤자, 그게 주소비층인 애들은 더 잘 짜인 일본 소년만화를 보지 어설픈 한국 거 안 본다. [원피스]와 [크로키팝] 사이엔 깊고도 깊은 강이 있다.
또한 [헌터X헌터]에서의 넨 정도로 강력한 개념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그쪽 장르에서의 경쟁력엔 필연적으로 한계가 있다. 그리고 이정도 창의성은 일본에서조차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그네들의 '보통', '그저그런' 소년만화가 작가가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 소비되는 건 결국 소년만화의 법칙들을 줄줄 따른 결과물인데도 불구하고 소비층이 확고하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린 안 그렇다. 우리의 소년만화 소비층 대다수는 그네들 소비에 일익을 더해줄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만화로 돈을 짜낼려면 애들이 아니라 어른, 성인층을 노려야 한다. 우리가 봐야할 건 돈줄을 쥐고 있으며 스캔본으로 보는 건 눈 아파 하고 전문적인 만화, 참고하고 소장가치가 있는 만화엔 돈을 아끼지 않는 청년-성인 소비층이다. 이제 만화 자체의 힘으로 살아남는 건 불가능한 시대가 됐다. 이것은 이미 다방향 컨텐츠 활용이 전통이 된 일본도 그렇거니와 만화를 전달하는 매체 자체가 바닥난 우리나라에선 더욱더 절박한 문제가 됐다. 그렇기 때문에 만화는 만화 자체를 추구함에 있어 사회의 트렌드, 스위치가 되는 길을 노려야 한다.
그런 고로 우리 출판사가 참고해야 할 것은 [러브히나]나 [원피스]가 아니라 [맛의 달인]과 [마스터 키튼]의 세계다. 단적으로 이건 허영만의 성공으로도 증명되고 있다. 바로 그 소비자들의 취향을 자극하는 진짜배기 전문성 만화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진리. [신의 물방울], 다수의 요리만화들, 요시나가 후미의 철저하게 성인스러운 정서, [마스터 키튼]의 전문성.
이와 비슷하게, 허영만 만화가 쌍팔년도 대본소 장르의 법칙들을 벗어던지고 빠르게 전문적인 기능성을 가진 만화, 전문가들의 세계를 보여주는 만화들로 전환하여 대박을 치고 있는 걸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이게 철저한 기획성이 되야 한다는 점인데 그럴라면 허영만 정도의 짬밥이 아닌 한엔, 만화가 혼자선 절대 불가능한 얘기다([신의 물방울] 아기 타다시는 편집장 경력이 있는 베테랑중의 베테랑이며 개인소장의 와인창고를 가지고 있을 정도고 [마스터 키튼]의 가쓰시카 호쿠세이에겐 밀리터리 정보 어시가 세명이 붙어있었다). 그런 고로 출판사의 체계적 지원, 돈, 전문가 그룹과의 연계, 그리고 트렌드에의 직시가 필요하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한국만화계의 네오가 가질 법한 조건이다.
물론 말은 좋다고 할지 모르겠다. 강도하의 말에 따르자면 출판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출판사 사장 한 명뿐이라는, 이 주먹구구적 폐쇄세계에서의 일이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법칙은 세워둘 필요가 있다.
매체는 인터넷만화와 신문....이 우선 생각되겠지만, 인터넷만화의 경박성이 전문적인 만화의 깊이를 담아낼 수 있을지는 좀 의심스럽고, 대본소풍 작가들이 주름잡고 있는 깽판이거나 재활용, 또는 단발적인 재치에 의존하는 '싼' 작가들을 쓰고 있는 신문만화시장은 그나마 현재 운용되는 매체 중에선 가장 확실한 영향력을 보장함에도 불구하고 좀 힘들어보인다. 부수저하로 인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신문사와의 파격적인 협상이 있으면 가능하겠지만.
그리고 이번에 창간될 지하철 공략용인 씨네21 부속 만화잡지. 나는 이 만화잡지가 순수 한국만화로 채워야 한답시고 쓰잘데기 없는 실험만화들, 소수의 우울증 감수성이나 자극할 법한 그렇고 그런 센티멘탈한 만화들, 작가적 만화들로 가득 채워질까 걱정된다. 물론 그 작품들은 뛰어날 수도 있고 개별로 보면 훌륭할 수도 있다. 그런 감수성, 또한 소중하다. 그러나 동시에 매너리즘의 함정이 기다리고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정말 탁월한 작품이 아닌 한엔, 인터넷만화 좀만 둘러보면 온통 그렇고 그런 류시화 시에서나 쓰일 법한 싸구려 경구로 가득한 만화들이 툭툭 튀어 나온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겐 확실하고도 소중한 만화 연재의 매체가 필요하며 어쩌면 다 망해가는 이 시점에서 거의 시대착오에 가깝게 이번에 나올 새 만화잡지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 부분의 성격 규정은 절박할 정도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