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들의 대한민국 - 한국 사회, 속도.성장.개발의 딜레마에 빠지다
우석훈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요즘 부쩍 경제 관련 서적, 그것도 우석훈의 책을 많이 읽고 있다. 편향된 독서는 그 방향이 어떻든 결코 좋지 않지만, 그동안 내 시각 자체가 약간 편향되어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교정으로 우석훈의 저작을 많이 읽는다면 결코 나쁜 독서방향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직선들의 대한민국'이라는 제목이 본문의 내용과 꽤 어울린다. 그렇지만 우석훈이라는 글쓴이의 평소 성향을 모르는 이가 제목만 보고 책을 골랐다면 당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표지에는 제목과 함께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 속도·성장·개발의 딜레마에 빠지다'  이 문구만 본다면 한국 사회, 그것도 경제에 대한 '경제학적 혹은 사회학적' 일갈이 담긴 책이라 생각할만 하다. 그러나 내가 읽은 이 책은 철저히 '미학'적인 책이다. 즉 '아름다움'을 다루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름다움에도 당연히 종류가 여럿 있는데, 글쓴이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개발과 도시의 아름다움에서 벗어나 생태적 아름다움을 찾아나서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 경제적, 사회적 현황과 정책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5쪽)동아일보사 옆의 수도꼭지를 틀어 물을 흘리고 이 물에 물고기를 풀어놓는다. 이 수도꼭지에 물을 트는 행사를 '통수식'이라고 불렀다. 비가 올 때마다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는 이 청계천은 환경운동가 사이에서는 어항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데, '청계 인공 하천'이라는 정확한 이름을 찾아주어야 한다는 논의가 일각에서 제기되었다. 청계천은 실제 하천이 자연형으로 복원된 양재천과는 다르고, 중랑천과 다르고, 복원 중인 탄천과도 다르다. 지금의 청계 인공하천을 보고 가슴이 설레거나 아름답다고 느껴진다면, 아마 도시 미학에 심하게 중독된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위와 같이 글쓴이는 서문에서부터 이 책이 '도시 미학'에 반대하는 책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도시 문명과 경제개발 전반에 대한 '경제적'인 논의가 아니라, '미학'적 논의가 주축이 될 것이라는 예고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알아둘 사실이 있다. 출판된 시기를 보면 짐작할 수 있겠지만, 이 책의 주요 비판대상은 출판 당시부터 지금까지 한국에서 도시 미학 혹은 개발 미학의 최대 발현이라 할 수 있는 '(당시) 한반도 대운하' 사업이다. 경부운하에서 한반도 대운하를 거쳐 현재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거의 이름만 바꿔 이루어지고 있는 이 거대한 '삽질'은 결코 이명박 정부만의 독창적인 정책이 아니다. 개발 논리에 함몰된 대한민국이 십수 년 전부터 꿈꿔온 '숙원' 사업이다. 이에 대해 우리가 알아둘 사실이 이 책에는 많이 나오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28쪽) 경부운하의 원형에 해당하는 운하 계획을 나는 현대건설에 다니던 시절인 10년 전에도 본 적이 있고, 중간에도 다른 경로로 이 계획에 대해 여러 번 더 검토한 적이 있다. 여론의 힘으로 한국 사회에서 불도저를 잠깐 세울 수는 있겠지만 영원히 세울 수는 없다. 장담하건데 이 대운하 혹은 그를 대체하는 유사한 계획은 오고, 또 오고, 또 올 것이다. 왜냐하면 대운하는 단순히 이명박이 지나치게 토목선설을 지향하는 사람이라서 벌어진 일도 아니고, 통합민주당에 비해 한나라당이 건설자본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정당이라서 벌어진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자세히 알고싶다면, 3장「대한민국 개발 오감도」부분을 읽어보면 될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글쓴이의 '미학'적 탐구를 따라가보자. 2장「청계천은 어항이다」에서는 사람들의 행위의 근거로 '경제이성'과 '상식' 두 가지를 설명한다. 그 다음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다. 

81쪽)청계천 복원 사업은, 어쨌든 아름다운 조경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 그래서 일단 가시적 아름다움이 있으면 많은 한국인은 "그것이 옳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 삶 속의 많은 것은 이렇게 아름다움 위에 서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만들어내는 2008년 한국에서의 삶이라는 것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사람의 행위를 결정하는 요소 중에서 적어도 한국인들에게는 경제이성이나 상식만큼 미학이라는 범주가 중요하게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집단의 차원이 되면, 그 힘은 강력하다.

글쓴이는 우리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미학, 즉 '아름다운 것에 대한 기준'을 의사결정의 중요한 원인으로 분명하게 제시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뉴타운 공약이나 청계 인공하천 조성사업 등이 칭찬받을리가 없으며, 난지 생태공원이 골프장으로 타락하는 것을 막아낸 이유도 하늘공원에서 바라보는 석양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91쪽) 시대 미학, 그것이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이다. 물론 우리가 공유하는 2008년 대한민국의 미학은 정상적이거나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미의 세계에서도 만약 '전도'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면, 우리가 공유하는 미학은 전도되고 왜곡된 형태의 것이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존재하지 않는 대한민국만의 주도적인 미학은 '건설 미학'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원래 있던 것을 없애고 그 위에 무엇인가를 짓는 바로 그 행위를 '위대한' , 그래서 '아름다운' 행위로 간주한다. 사실 이런 책을 읽고 있는 나조차조 오늘 낮 신도림역 앞을 지나다 건설중인 디큐브시티의 외관에 깜짝 놀랐다. 그 순간 나도 어쩔 수 없이 건설 미학에 빠져있다는 자가진단을 내렸다. 그런데 이렇듯 건설 미학에 비판적 칼날을 들이대는 책을 읽은 나조차도 그런 커다란 건물에 놀라고 멋지다는 생각을 하는데, 보통의 대한민국 사람들이야 어떨까..  

이러한 미적 감각은 정치권에서 좌우를 막론하고 어디서나 나타난다. 노무현 정부 시절 새만금을 옹호했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이나,(대표주자로 유시민 전 복지부장관이 언급되는데.. 솔직히 불편했다. 기분이 나쁘다기 보다, 아직까지도 노무현과 유시민을 '우리 편'으로 생각하는 내 마음때문에..)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던 강금실 전 법무장관이나 마찬가지다. 그중에서도 글쓴이가 특히나 공들여서 '까는' 사람은 바로 참여정부 시절 문화재관리청장이었던 '유홍준'씨다. (사정을 알고 싶다면 93쪽을 읽어보면 된다.) 

121쪽)정말로 시대 미학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한국의 최근 10년은 민주화·정의·인권과 같은 단어가 움직인 것이 아니라 두 가지 결합된 단어에 의해 움직인 것인데, 하나는 '도시 미학'이고 그 뒤에 숨은 힘은 '건설 미학'이다. 이 두 개의 힘이 화학적으로 결합되어 만들어진 것이 바로 조감도이다.

다시 한 번 '도시 미학'에 대해 언급하며, 글쓴이는 '조감도'의 위력을 설명한다. 한국 사회에서 그동안 대규모 사업을 관철시키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이 바로 시각적으로 대중을 압도해버리는 조감도이다. 위에서 내가 잠깐 말한 디큐브시티 또한 마찬가지로 조감도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이 압도적인 크기와 '땅값이 올라가면 더 잘살게 될 것이다'라는 허황된 명제가 결합되면서 무시무시한 힘을 과시하는 '도시 미학'은 점점 기세를 더 확장해간다. 글쓴이는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124쪽)불도저는 이성과 상식으로 달리는 것이 아니라 미학의 힘으로 달리고, 이 시대 미학은 여전히 '도시적 감성'이 절정을 달한다. 한국에서 정말 강하고 무서운 것은 물리력이나 경제력이 아니라 미학이고, 이 미학이 투기 심리와 결합되면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대마왕이 된다. 그리고 그것을 이명박은 안다. 그게 중요하다. (...) 그는 문화가 뭔지 잘 알고, 예술이 뭔지 잘 알고, 시대 미학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잘 알고 있다.

이정도까지 글쓴이의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하는데?'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따라나오게 마련이다. 이에 대해 글쓴이는 솔직하게 그게 어렵다는 점을 인정한다. 

174쪽) "과연 이렇게 하면 세상이 나아질까?" 이 질문은 생태주의가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불이익 혹은 불리함이다. (...) 이 지역에 아파트를 지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해 건축 미학의 광적인 지지자는 땅값 상승에서 시작하여 국민경제와 국민의 삶 혹은 민족의 영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말고 보존하자고 말하는 생태 미학의 예술가는 막연하게 이렇게 하면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식으로밖에 말할 수 없다. 아니, 무슨 이런 바보 같은 전선이 다 있어? 물론 이런 일은 역사 속에 수없이 존재했다.

사실 이는 생태주의 미학 진영에서만 나타나는 문제점은 아니다. 거칠게 재단한다면 한국의 정치지형을 보수와 진보로 나눌 수 있을테고, 또 그들의 특성을 거칠게 포착한다면 보수는 '물질'을, 진보는 '가치'를 내세우게 마련이다. 이 점에서 모든 진보주의자들은 약점을 지닐 수밖에 없다. 먹고사니즘에 빠져 허우적대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가치'를 지향하는 정치인들은 뜬구름 잡는 몽상가로 보이거나, 심하면 '그래도 잘 굴러가고 있는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질서'를 교란하려는 빨갱이로 보이기 십상이다. (이에 대해서 조국 교수는 분명 진보가 '밥 먹여줄 수 있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이 기대되는 이유 중 하나이다.)   

그래도 글쓴이는 책의 후반부에 이르러 나름의 대안과 기준을 제시한다. 5장의 175쪽에서 시작해 6장 마지막까지 제시되는 대안과 기준들은, 아직 생태 미학에 대한 입장이 거의 전무한 나로서는 그저 별말 없이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글쓴이는 생태 미학이 갔으면 하는 방향 다섯 가지로 1.지속 가능성 2.공동체 3.자치 4.소통 5.다원성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가지 말았으면 하는 방향 세 가지로 1.우월적 계몽주의 2.선험적 패권주의 3.근엄성을 제시한다. 그리고 5장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다음과 같은 말로서 마지막까지 미학적 가치를 논하고자 하는 자세를 유지한다.

181쪽)경제학자가 미학이라는 주제넘은 이야기를 계속하는 김에 이제는 각 분야별로 생태 미학이 어떻게 전개되면 좋을지에 대해 간략하게라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그렇게 마지막 장인 「생태 미학 상상도:세상을 바꾸는 것은 아름다움이다」가 펼쳐진다. 한국적인 상황에서 건축의 생태 미학이라는 관점에 맞춰 '복원','보존','공존','골목길'이라는 네 가지 키워드를 제시하고 예술과 스포츠, 그리고 마케팅 분야에 이르기까지 생태 미학적 태도를 갖출 것을 요구한다.  

 

다 읽고나면, 정말이지 이놈의 대한민국은 어디 하나 똑바로 굴러가는 데가 없는 천덕꾸러기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에 다 일장일단이 있고, 모든 현상은 한 측면에서만 바라보면 안 된다. 대한민국은 통시적으로 보나 공시적으로 보나 유례 없이 빠른 성장을 보이면서 정말 초단기간에 나름 '세계적'인 국가가 되었다. 갑자기 키가 크면 성장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런 책이 많이 나온다는 사실은 그만큼 성장통을 치료할 약이 많아졌다는 뜻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생태 미학적 경제개발이 이루어지는 대한민국이 된다면 좋겠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고민 분야가 하나 더 늘었는데, 이게 좋은건지 나쁜건지 항상 애매하다. 

읽은 기간 : 2011 01 18 ~ 2011 01 19 

정리 날짜 : 2011 01 19

 

 더 읽어볼 책 :

  요새형 주택이 출현하면서 부의 분배와 더불어 공간이 분리되는 현상에 대한 책 

   한국의 독특하면서도 기형적인 문화에 대한 프랑스 학자의 연구

생태요괴전 생태페다고지 글쓴이 우석훈의 '생태경제학 시리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