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
우다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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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개인적으로 흠모하는 여러 작가가 있는데 우다영 작가도 그중 하나이다. 작가의 첫 소설집을 퇴직 선물로 고른 뒤, 작가가 출간하는 작품을 하나도 빠짐없이 구매하는 편이다. 이번에 출간한 <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는 뭔가 프랑스 소설을 연상시키는 제목의 소설이지만, SF 소설집이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출판계에서 SF붐이 일어났을 때 너도나도 SF를 썼고, 클리셰를 극복하지 못한 뻔하디 뻔한 SF소설들을 읽으며 혀를 찼던 기억이 있었다. 이제는 다들 자기가 써도 잘 안 된다는 걸 깨달았는지 기존의 문단 출신에서 SF를 쓰는 작가 중에 의미있는 작업을 하는 것은 정지돈 작가 아니면 이렇게 우다영 작가가 있지 않나 싶다.

 

<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SF 소설집이다. 그중에는 한국의 대표적이니 SF문학상인 SF어워드에서 수상한 단편(긴예지)도 수록되어 있다.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이 별 의미 없다지만 작가의 작품 세계가 변화한 것은 그만큼 그 작가가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고민했다는 흔적일 것이다.

 

소설집의 모든 단편은 다들 빼어난 완성도를 자랑한다. SF소설로서도 새로우며 다른 SF작가들과 비교해도 충분히 새롭고 뛰어난 이야기들이다. 이 소설집 이전의 작품들은 서사가 흐릿한 김이 있어서 작가에 대한 흠모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말하면 내 취향과는 결이 좀 달랐다. 하지만 SF라는 장르의 여러 장점을 흡수한 끝에 서사가 더 선명해졌으며 따라서 나는 작가의 소설 중 이 소설집의 소설들이 가장 좋았다.

 

단편 중에 가장 좋았던 소설은 <우리 사이엔 칼이 놓여 있었네>, <기도는 기적의 일부> 들이다. <우리 사이엔 칼이 놓여 있었네>는 한 사람이 알파와 오메가라는 분리된 자아로 존재하다가 성인이 되기 전에 합쳐진다는 이야기다. 평행세계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라는 설정의 소설은 많지만 이런 설정의 소설은 또 처음이었고 존재할 수 없는 알파와 오메가라는 존재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는 것이 이 소설의 정수였다. 소설의 주인공인 그 둘이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 궁금해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롱테이크처럼 펼쳐지는 마지막 장면이 참 가슴을 울렸다.

<기도는 기적의 일부>는 기후변화라는 환경 재난을 맞이한 미래에 펼쳐지는 일종의 구원자 서사이다. 나는 어느 종교의 신자도 아니지만 이러한 구원자 서사에 마음에 쏠린다. 이유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구원자는 실패하는 구원자로 무언가 빼어난 구석은 없으며 그저 실패하고 실패하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서 성공하는 존재다. 이 소설도 마지막 장면이 참 좋았다.

 

우다영 작가는 항상 더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되는데 그것까지는 아니어서 항상 아쉽게만 느껴진다. 그래도 나는 그 작가가 절필을 선언할 때까지 작가의 책을 살 것이고 절필을 선언하면 좀 많이 아쉬울 듯하다. 그냥 계속 이렇게만 글을 써 주시길. 잠은 잘 자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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