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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깊은 곳 ㅣ 묘보설림 5
하오징팡 지음, 강초아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12월
평점 :
하오징팡은 중국의 SF 작가로 일명 SF계의 노벨상이라고 일컬어지는 휴고상을 수상한 두 번째 중국 작가다. 이상을 첫 번째로 수상한 중국 작품은 류츠신의 <삼체>다. 휴고상은 미국 중심의 SF상으로 외국작가가 수상한 이후로 다른 외국 작가가 이 상을 수상한 사례는 전무 하다. 물론 SF 장르가 가장 활성화되고 발전한 게 미국이니 그런 것도 있지만.
나는 하오징팡 작가의 근작인 <인간의 피안>을 먼저 읽고 나서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고독 깊은 곳>을 읽어 봤다. 인간의 피안이 근미래에 발달할 AI가 사회와 인간에게 줄 영향을 메인 테마로 했다면 고독 깊은 곳은 전체적으로 SF에서 다뤄지는 소품이나 소재를 사용한 소설들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기술이 발달한 미래에 발생할 인간 소외라는 문제를 다루는 것은 마찬가지다.
<접는 도시>는 하오징팡 작가가 휴고상을 받게 해준 대표작으로 읽고 나서 이런 명작! 하며 감탄하며 읽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도시의 경계를 구분하고 그곳의 인간들은 주어진 시간안에서 살아간다. 각 구역별로 볼 수 있는 하늘의 풍경도 다르며 사는 풍경도 다르다. 주인공 라오다오는 제3구역에서 사는 쓰레기 분리수거 공이며 일을 끝내고 일종의 브로커라고 할 수 있는 펑리를 만나러 간다. 2구역에서 편지를 받아 1구역까지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다. 도시는 3구역으로 분리되었고 일종의 하층민이 사는 3구역의 물가는 싸지만 동시에 인간이 간신히 살아갈 수 있을 수준의 임금만을 받으며 살아간다. 2구역, 1구역과의 물가 차이는 아주 크며 그렇기에 겨우 편지를 전달하는 간단한 임무만으로도 큰돈을 벌 수 있다. 물론 각 구역을 허가 없이 넘어가는 것은 불법이므로 위험은 있었지만 라오다오는 그 정도쯤은 감수할만하다고 생각한다.
경계를 넘어 다른 구역에 도착한 라오다오는 2구역과 1구역을 차례대로 방문한다. 2구역은 말하자면 중간층이 거주하는 곳이다. 그곳의 젊은이들은 마치 80,90년대의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처럼 자신은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라는 낙관을 가지고 있다. 1구역은 부유층이 거주하는 장소로 가장 넓은 공간, 밝은 빛을 향유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들을 보는 라오다오는 질투 하지 않는다. 1구역은 가장 좋은 것들을 누리지만 동시에 텅빈 위선의 가면을 쓰는 것 또한 사실이다. 라오다오가 전달하는 편지의 수신인인 이옌은 자신이 유부녀라는 사실을 숨기고 2구역의 청년과 만나며 그를 적극적으로 기만한다. 또한 1구역의 사람들은 이 도시의 밝은 면만을 밖으로 공개하고 이 도시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가장 더러운 곳인 제3구역을 숨기기도 한다. 라오다오의 시선은 담담하게 그 사실을 적시한다.
라오다오는 같은 3구역 출신인 라오거의 도움을 얻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기회를 얻고 동시에 접는 도시의 비밀을 접하게 된다. 접는 도시는 철저하게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세워져 있으며 인간의 환경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중 하나인 순환경제를 실현하기 위한 실험 중 하나였다. 1구역엔 500만명, 2구역엔 2000만명, 3구역엔 5000만명이 산다는 인구구성은 상,중,하의 경제 구조를 삼등분해 격리하는 방안으로 도시엔 필수적이지만 더럽다고 여겨지는 하층민들을 격리함으로써 상승하는 GDP의 부산물인 물가의 인플레이션을 방지하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한마디로 국가가 인간 전체의 삶을 책임지지 않겠다는 자본주의의 논리이며 철저한 계급제의 실현이다. 완벽한 인간 소외의 결과물이 바로 접는 도시인 것이다. 접는 도시 안에선 자신의 출생 이후로 펼쳐진 운명을 극복할 수 없으며 각 인간들은 사회가 지정하는 위치에 맞게 살아야 하는 극단적인 디스토피아의 초상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것만으로 정의되는 존재인가 인간은 희망없이도 스스로 존엄할 수 있는 존재라고 작가는 말하기도 한다. 인간 스스로 정의하는 존엄을 작가는 이 책의 여러 소설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1구역에서 쓰레기통에 버려진 아이를 줍고 기뻐하는 라오다오의 모습은 사회와 세계가 규정하는 인간의 위치를 초월해 인간 존엄을 스스로 실현한 영웅의 모습 그 자체이다. 인간은 세계에 귀속되지만 동시에 초월하기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