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좋은 사람
줌파 라히리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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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파 라히리는 예전에도 익숙하게 읽어온 작가다. 개인적으로 한국 소설 좋아하는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작가이다. <축복 받은 집>은 인도계 이주자로서의 자신의 삶을 말하는 이야기라면 이 소설집 <그저 좋은 사람>은 그러한 문화적 정체성보다는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길들지 않은 땅>은 아내를 잃은 남편과 엄마를 잃은 딸의 불협화음으로 가득한 이해에 대한 이야기다. 아빠와 딸이 죽은 어머니의 방식이 아닌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이해해나간다는 것이 흥미롭던 이야기였다. 늙은 아버지가 담담하게 다음 삶을 준비한다는 대목도 굉장히 흥미롭던 이야기였다. 그걸 받아들이는 딸의 모습도.

 

<지옥-천국>은 말하자면 한 남-녀의 이어지지 않는 사랑 이야기이며, 가족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내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던 가족의 전혀 낯선 일면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이 소설집에 수록된 작가의 다른 소설들하고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어머니가 남편이 아닌 다른 남성에게 일종의 연정을 품는다는 설정은 한국의 고전 소설인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연상시키고 실제로 그 화자가 딸이라는 설정도 비슷해서 흥미로웠다. 줌파 라히리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여성 작가가 주류인 현재 한국 소설들을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어쩐지 뾰족하고 둔탁하며 우울하기까지 하는 이야기들을 보다가 인간과 가족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끝내 가족을 인정하고 공존을 한다는 이야기들이 깊이 마음을 울렸다고 할까.

 

<머물지 않은 방>은 부부가 과거에 만났던 인연과 맺어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로맨틱 코미디 소재로 쓰일 법한 이야기를 하는 소설이다. 하지만 줌파 라히리 답게 너무 잘 쓴 소설이다. 부부 각자가 서로 모르던 부분이 있으며 그 비밀이 소설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일종의 서스펜스로 느껴진다. 각자가 감춘 부분을 들춰내고 싶은 욕망이 생긴달까? 하여간 아주 재미있던 소설이었다.

 

미국 문학은 결정적으로 이주자 문학이기도 하기에 다양한 이야기가 끝도 없이 생겨나고 작가들도 자신의 출신이나 정체성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이 미국 문화의 힘이 아닐까 싶었다. 한국 소설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사는 모습이나 둘러싼 문화, 정체성의 동질성이 크기에 큰 개성을 지니지 않은 소설은 다 똑같은 이야기로 들릴 때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소설들, 이야기를 볼 때마다 그 다양성에 자연스럽게 감탄하게 된다. 최근 픽사의 에니메이션인 <엘리멘탈>이 역주행 한 것도 그런 다양성의 힘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줌파 라히리가 다양성만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참 대단한 작가이다. 물론 그 대단함 때문에 이 소설을 읽는 것이 굉장히 피곤하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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