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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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북큐레이터일 전 대통령의 소개로 주목을 받고 베스트샐러가 된 소설이었다. 보통 베스트 샐러가 되는 건 마케팅을 잘 하거나 정말 어떤 행운의 힘이 더해져야 가능한 경우가 많다. 개인적으로 요즘 소설의 트렌드라고 할 수 있는 힐링코드는 정말 싫어하기에 그런 내용이 아니라는 것만으로 이 소설은 별 고민 없이 구매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이후에는 전대통령이 왜 이 책을 추천해줬는지 알 수 있었다. 요즘 시대에 빨치산이야기라니 태백산맥 이후로 처음 읽는 빨치산 소설이었다.

 

빨치산이라는 용어는 2차대전 시기 유고슬라비아에서 활약한 게릴라 부대인 파르티잔에서 유래했다. 한국의 경우에는 6.25전쟁을 전후로 남한에서 활약한 좌익 게릴라를 가리킨다. 그리고 이 소설의 주인공의 아버지가 바로 이런 빨치산 출신의 사회주의자였다. 그리고 소설은 그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부딪쳐 죽는 것으로 시작한다.

 

소설의 풍경은 아버지의 장례식장을 중심으로 이어진다. 생전의 아버지는 딸에게는 참 답답한 모습으로 보였다. 경제적으로 그리 유능한 것 같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다가 자기가 얻는 건 하나도 없는 그런 가장이었다. 자식과 유대관계를 쌓아야 할 시점에 교도소에 수감 되어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없었고 그런 관계의 균열은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메우지 못한다. 딸의 평가도 가혹했었다. 그러나 장례식이 진행되면서 아버지의 빨치산 동료, 옛 지인, 친구, 가족들이 찾아오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어 간다.

아버지의 굴곡진 인생은 아버지 개인의 잘못이 아닌 역사의 굴곡 때문에 생긴 것이었고 그 사실을 아버지의 동료와 지인들로부터 확인해나간다. 딸의 입장에선 아버지의 인생이 답답하기만 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그 아버지는 가부장을 초월해서 누구보다도 딸인 자신을 사랑한 사람이기도 했다.

 

이 소설에는 굉장히 많은 인물이 등장하며 그들의 입으로 아버지의 삶을 형상화해나간다. 과거와 현재가 겹쳐나가는데 그런 구성을 굉장히 정교하게 해나간다. 장면과 장면의 연계는 요즘 접한 소설가 중에선 가장 훌륭한 수준이다. 최근 읽은 소설 중에서는 <파친코>외에는 이 정도까지 잘 쓰인 작품이 별로 없었다. 이 정도 실력의 작가가 왜 이제야 주목받나 싶었는데 작가의 전작인 <빨치산의 딸>90년대에 정부 당국에 고발을 당하면서 작품을 발표하지 못하는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작품도 작품인데 작가의 삶마저도 심상치가 않다... 이 작품을 계기로 작가의 전작도 주목을 받고 있으니 작가의 차기작도 활발히 발표될 것이라는 기대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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