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행복한 이유 워프 시리즈 1
그렉 이건 지음, 김상훈 옮김 / 허블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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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더 이상 하드 SF가 불모지가 아닌 시대다. 영화 <극한직업> 덕분에 테드 창(반쯤은 농담 같은 이유지만)이 유명해지고 SF 신간들이 줄줄이 출판되며 한국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SF소설들이 출판되는 시대다. 그렉 이건은 SF팬들 사이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작가로 하드, 소프트를 떠나서 현세대 최고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작가다. 하지만 대표작인 <쿼런턴>이 오래전에 출판된 이후로 그의 작품은 잘 번역되지 않았는데 허블에서 워프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옛 SF고전들을 출판하기 시작했다. SF팬으로서 굉장히 반가운 일이다.

 

이 소설집은 굉장히 두껍다. 오랫동안 소개되지 않은 작가의 대표작들을 모아 놓으니 거의 500페이지에 달한다. 가장 좋은 건 수록된 소설의 질이 균일하게 좋다는 것이다. 특히 좋았던 두 작품을 간단하게 소개해보겠다.

 

<적절한 사랑>은 사랑하는 이의 뇌를 자신의 자궁에 보관하게 된 여자의 기구한 이야기다. 그러니깐 자기 아이처럼 남편을 품게 되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이것이 가능할지는 둘째 치더라도 이 설정과 가정 자체가 너무 잔인하고 끔찍하면서도 매혹적이다. 주인공 본인도 자신의 처지를 역겹게 생각하지만, 결코 사랑하는 이를 포기할 수 없었다. 약탈자 같은 자본의 속성과 아플 때 의료보험이 태클을 거는 미국 같은 나라에선 정말 크게 와 닿을 내용이라 생각한다. 이 소설도 쓰인지 20년은 넘은 소설임에도 현실의 냉혹함을 정말 잘 설명했다. 결말 부분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자궁에 보관한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이 이성으로서 사랑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식으로서 사랑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워한다.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는 상황과 마음을 그려나감에도 인간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작가의 역량을 제대로 보여주는 소설이다.

 

표제작인 <내가 행복한 이유>는 인간의 감정을 이루는 토대가 결국 몸. 그중에서 뇌의 일정 부분이라는 사실을 통렬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는 어린 시절에 뇌에 생긴 종양으로 오랫동안 비정상적인 행복감에 빠져든다. 그리고 그 종양을 제공하자 나는 만성적인 우울감에 빠져든다. ‘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지며 이를 극복하려 여러 의료 실험에 동원되고 인공적인 방식(설명하기에는 매우 복잡하다)으로 이를 극복한다. 인간은 보통 인간의 의식과 몸이 따로 구분된다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이 소설을 이러한 구분이 틀린 것이며 우리의 감정, 의식, 생각은 결과적으로 우리의 몸, 그중에서 뇌의 상태에 종속된다는 것을 아주 흥미롭게 그려내는 소설이다. 그렉 이건의 특징이랄까. 어떤 소설적 설정에 따른 현상을 잘 구현하며 이를 잘 장면화한다. 주인공 가 갓 의료 실험을 마치고 모든 인간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하필이면 이 소설이 앞머리에 있는 탓에 뒤에 소설도 이만큼 좋을 거로 생각을 했다. 당연히 아니었고 약간 실망을 하는 부당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아 번역자도 빼놓을 뻔했다. SF소설은 유독 번역자 빨을 많이 타는 분야다. 번역자인 김상훈 씨는 국내에 소개된 테드 창의 책들을 번역한 작가라는 점에서 단연 믿음을 가지고 소설을 읽게 되었다. 모두 이 책을 읽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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