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브
손원평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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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설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형식의 이야기가 있다. 요즘 유행하는 SF? 퀴어? 페미니즘? 다 아니다. 그건 바로 누가 망하고 실패하는 이야기다.

사업이 망하고, 사랑이 실패하고, 직장에서는 해고된다. 유감스럽게도 한국 소설에서는 망하는 과정이나 망한 이유의 소설이 많다. 유독 한국 소설에만 망하는 이야기가 많으냐면 그건 또 아니긴 하다. 사실 사람들은 망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오이디푸스왕 같은 그리스 비극에서부터 시작해서 연예인 가쉽까지. 사람들은 누가 망하는 이야기를 환장하게 좋아한다. 손원평 작가의 소설 <튜브>도 그렇게 누군가가 망하는 소설이다.

 

<튜브>는 한강에서 김성곤 안드레아가 자살하려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대놓고 망하게 시작한다는 이야기다. 한강 위에 서 있는 사람이 그러는 것처럼 주인공 김성곤도 인생이 망해서 죽으려고 한다. 김성곤은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 것인지를 고민하면서 2년 전에도 이렇게 한강 다리 위에 서 있던 적이 있음을 회상한다.

2년 전에 김성곤은 사업이 연달아 실패하고 그 여파로 가족이 해체당하는 아픔을 겪는다. 그 실패는 김성곤 자신이 자초한 것으로 사업이 잘 될지 고민하지 않고 들어갔다가 사업이 기울어서 망해 갈 때는 그만둘 결단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잘 나가던 시기는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오피스텔에 살면서 가족도,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중이다.

어쨌든 자살을 하지 않기로 결심 한 김성곤은 배달 라이더 일을 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우연히 본 CEO의 인터뷰 영상을 지침 삼아서 하루라도 더 나은 것을 선택한다는 자세로 살아간다. 그러다가 마음에 맞는 젊은 친구도 사귀고 이전과는 다르게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실감 속을 살아가면서 이전과는 다른 자세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혹시 이런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면 맞다. 바로 시중에서 유통되는 자기계발서에 많이 나오는 내용이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김성곤은 성공하게 된다. 이전에 잠깐 빛을 보듯이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 눈부시게 성공하게 되고. 망한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첫 장면은 마지막에 망해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 이후에 이어지는 장면은 직접 확인해 보시기를.

 

손원평 작가는 <아몬드> 이후에 여러 작품을 발표했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이질적인 작품이지 않았나 싶다. 소설로서 <튜브>는 뭔가 독특하다.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진 자기계발서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결론적으로 망하므로 한국 소설의 그것과 비슷한 느낌이 난다. 그래도 작가가 글을 잘 써서 읽는 것이 시원시원하게 느껴지기는 했다. 40, 50대의 성장 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추천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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