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이제는 필수적인 대중 인문학책으로 내 생각에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급 위상을 얻은 것 같다. 물론 그 뚜껑을 까보자면 한 10년은 더 지나야겠지만,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충격은 <코스모스>를 처음 읽었을 때와 비등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피엔스>를 두 번에 걸쳐서 읽었다. 처음에는 학교 도서관에서 대출해 빌렸다가 한 50페이지를 읽고 덮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기존 역사할 책을 안 읽은 것도 아니고, 두꺼운 책을 읽지 않은 것도 아닌데 유독 읽기가 힘들었다. 왜냐면 이전에 읽었던 역사책들은 일종의 이야기로서 역사를 말하지만, <사피엔스>는 역사를 과학으로 설명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꽤 지나고 과학책 읽기에 익숙해진 다음에야 이 책을 그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기존의 상식과 통념을 뒤엎는 주장들이 이어지는데 그것이 유전자 분석 기술까지 도입된 현대 고고학의 업적 덕분도 있겠지만 그 업적을 효과적으로 설명해주는 유발 하라리의 글솜씨가 더욱 돋보이기도 했다.

유시민 작가는 자신의 책인 <역사의 역사>에서 <사피엔스>를 과학으로 역사를 설명한 책이라고 말한다. 그 말이 딱 맞다. 역사를 몇몇 지배자의 인생과 그들의 행적으로 설명하는 역사에서 벗어나 인간의 외적 조건인 환경, 생물학적 조건 등으로 설명하는 책을 빅 히스토리라고 칭한다. 이 분야의 조상님 격인 책은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인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가 있겠다. 유발 하라리 본인도 <사피엔스>를 저술하는 데에 <,,>가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밝힌다.

 

<사피엔스>에서 주장하는 많은 내용은 기존의 통념을 뒤엎는 내용이 많다. 예를 들자면 인간의 문명을 설명하는 데에 가장 먼저 거론되는 농업혁명에 대한 이야기다. 여태까지 농업은 문명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되며 문명의 원천으로 여겨지며 항상 긍정적인 일로 여겨졌다. 유발 하라리는 그 통념을 거꾸로 뒤 짚는다.

그보다 먼저 유발 하라리는 인간이 생각을 할 수 있는 인지 혁명이 먼저 있었음을 말한다. 인지 혁명이란 인간이 현실에서 존재하는 것을 넘어서 존재하지 않는 추상적인 존재 또한 존재한다고 믿을 수 있게 된 현상이다. 예를 들자면 신과 종교, 천국과 같은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 기초적인 음악과 예술에 대한 이해 같은 것 말이다. 유발 하라리는 인간이 이야기를 창작하는 능력이 그러한 인지 혁명의 기초가 되었을 거라고 주장한다. 그 부분을 읽었을 때 머리를 탁하는 충격을 받았다. 그랬다. 인간은 이야기를 좋아하며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간다. 내가 한국인임을 믿는 이유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이 땅에서 살아온 나의 조상들의 일들을 역사이자 내가 그들의 후손임을 믿기때문이다. 이야기에는 힘이 있다. 특히 문자 없던 고대에는 사람들은 이야기를 통해서 도덕과 윤리,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함을 이야기했을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인간이 그러한 이야기를 통해서 현실 너머의 세계를 상상하는 인간의 능력이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는 종으로 성장한 이유로 제시한다.

 

이제 하라리는 농업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는 상식의 쌈싸다구를 후려치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발달한 유전자 식별 기술 덕분에 수렵 채집인과 농부의 건강 상태를 비교했을 때 인간은 수렵 채집 시절에 더욱 잘 지냈다고 말한다. 농사를 짓기 전 인간은 하루에 짧은 시간을 일하며 식량을 모으고 나머지 시간은 놀았다고 한다. 농사를 짓기 시작한 후 인간은 하루에 10시간 넘게 일하며 한 군데에 모여 정착하게 됨으로써 다양한 문제를 양산한다. 전염병이 그랬고, 사회 계급의 분화로 권력을 독점한 존재라는 불필요한 존재가 태어났다. 그 이전의 몇십만 년 동안 인간에게 그러한 권력을 지닌 존재는 필요하지 않았음에도 인간이 한군데에 정착해 살아가는 것만으로 그러한 변화를 겪었다. 문제는 그렇게 변화했음에도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농사를 통해 늘어난 식량은 인구를 증가시켰다. 태어난 아이를 다 굶겨 죽이지 않은 이상은 수렵 생활로 돌아갈 방법이 없었다. 인간은 태어날 아이를 위해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것을 선택했다. 아이에 대한 사랑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영원한 노동의 굴레에 갇히게 했다.

 

유발 하라리의 이러한 논의는 역사적 사건을 하나도 논의하지 않은 채 현대 고고학과 과학만으로 설명한다. <사피엔스>에서 다루는 이야기를 유발 하라리 혼자서 연구하고 결론 내릴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많은 연구 자료를 취합하고 학계에서 나오는 여러 의견을 조합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충격적인 내용을 전개한 하라리의 글솜씨는 가히 천재적이다. 소설도 이렇게 재밌게 쓰기는 어려울 것 같은 데...


<사피엔스> 말미에 유발 하라리는 막강한 힘을 얻은 인류의 미래를 그려나간다. 이러한 논의는 후속작인 <호모 데우스>로 이어지지만, <사피엔스>보다는 살짝 떨어지는 것 같다. 미래라는 것은 항상 예측하기 어렵고 공상의 영역에 뻗어있기 때문이다. 하긴 실제 역사도 그렇다. 한 달 전에 어느 누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예상했겠는가. 미래는 알기 어렵고 많은 이가 상상하듯이 세계는 갑자기 멸망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먼 훗날 우리에게서 뻗어 나간 후손들이 21세기의 우리를 이해하려고 발버둥 칠 수도 있다.


인간의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은 달리 말하면, 진보하기 이전 즉 과거의 역사에서 인간은 무지몽매하고 뒤떨어지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최초로 인지혁명이 시작된 이후로 그다지 진화하지 않았고 그들은 우리와 같이 웃고, 떠들고, 슬퍼하며, 화를 내는 존재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조상이고, 우리였고, 그리고 나였다.


그들은 우리처럼 하얀 파도를 보며 기뻐하는 존재들이었고, 푸른 하늘을 보며 감탄하는 이들이었다. 꽃과 나무들, 눈과 시원한 바람. 지구에서 변하지 않는 것들을 보고 느끼며 기뻐하는 순간, 나는 내가 이 땅에 혼자 떨어진 단독자가 아닌 이 지구와 인류로 이어진 연속된 존재라는 확신이 생긴다. 나의 기쁨과 슬픔, 나의 모든 것은 별에서 유래해 수많은 지구의 생명체의 진화를 거처 나에게 도달한 현재라는 순간이 눈부시게 아름답고 기쁘다. 삶이란 그래서 축복 받은 것이며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그것이 이 지구가 이 땅에 살아 온 모든 존재에게 알려주는 진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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