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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마음동호회
윤이형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8월
평점 :
2020년에는 유독 화나는 일이 많았데, 그해 초에 나를 가장 화나게 했던 건 문학사상에서 이상문학상 수상자의 저작권을 날로 먹으려고 했던 일명 ‘문학사상’사태 때였다. 문학 적폐, 문단 권력은 틈틈이 지적받는 문제였지만 문학사상 사태의 결말이 문학사상 출판사의 책임감 있는 사과와 사후대처가 아닌 전년도 대상 수상자인 윤이형 작가의 절필로 끝나서 어떻게 문학사상을 불태울까? 고민했었다. 출판사 관련된 괴담은 유감스럽게도 거의 사실인 경우가 많다. 아무튼, 내가 그렇게 화가 났었던 이유는 이 사태가 일어나기 바로 전에 윤이형 작가의 단편집인 <작은 마음 동호회>를 읽었기 때문이었다. 상승세를 탄 작가들은 놀라울 정도로 좋은 단편집을 남기는 경우가 있다. 이게 그 소설집이다. 거의 절정에 오른 작가의 솜씨인데 어처구니없이 꺾여 버린 것이다. 하 열 받는다. 윤이형 작가의 복귀를 간절하게 원한다.
윤이형 작가의 특징은 엔솔로지에서 유독 잘 보인다는 것이다. 어떤 소재의 소설을 쓰더라도 좋은 소설을 뽑아내는 정말 좋은 작가라는 소리다. 페미니즘, SF, 판타지, 로봇, 퀴어 소재의 다양함은 윤이형 작가의 다양한 관심사를 표상한다. 소설의 질 또한 좋다.
<작은 마음 동호회>, <피클>은 중년의 기혼자 여성인 ‘작가’ 본인의 상황을 맹렬하게 인식하는 소설들이다. 작가의 가장 최신작인 <붕대 감기>는 이러한 페미니즘에 관한 다양한 시점과 관점을 담은 소설이다. 페미니즘엔 정답이 없으며 다양한 사정과 시점을 가진 천차만별의 관점이 ‘페미니즘’이라고 한 대 묶인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기혼자-중년’의 시점에서 새로 태동한 20-30대의 여성과의 연대를 얘기하나 동시에 그러한 자신의 태도가 위선이라고 여겨 질까봐 걱정한다. 실제로 <붕대감기>의 리뷰 중 하나는 ‘한녀’소설 잘 읽었다는 비아냥이었다. 이렇듯이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소설도 작가의 상황에 영향을 받는다. <피클>은 이러한 기혼자-중년의 사회적 상황과 역학 관계에서 성폭행 피해자와의 연대를 그리는 소설이다. 소설의 결말이 시대가 눈을 감던 범죄가 반복되는 현실이 폭로를 통해서 수면으로 그리는 장면은 우리 사회의 여러 성범죄를 수면으로 끌어올린 ‘미투’운동을 떠올리게 한다. 누군가는 시끄럽다고 손가락질하더라도 고요히 썩어가는 웅덩이보다는 혼탁해도 유유히 흐르는 강이 유익한 건 당연한 일이다.
SF, 판타지 소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작가는 <이웃의 선한 사람>, <하줄라프>, <수아> 같은 소설을 써오기도 했다. 그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은 <이웃의 선한 사람>이다. 이 소설에선 미래를 볼 수 있는 초능력자가 등장하지만, 정해진 미래를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고뇌하고 절망한다. 타임머신처럼 익숙한 SF 소재도 없을 것이다. <백투 더 퓨처>시리즈나 <도라에몽>, 주전자 로봇이 나오는 <시간 탐험대> 같은 영화, 애니메이션은 과거로 간 주인공들이 과거를 더 나은 미래로 바꾸는 스토리가 이어진다. 현대 물리학이 반영된 SF는 이러한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SF가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와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이다. 소설 속 초능력자가 미래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 미친 척한다는 것도 흥미로운 설정이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에게 발언권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발언권이 없기에 예언자의 말은 무시된다. 트로이의 공주인 카산드라의 예언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는 신화가 반복된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결말은 무엇인가. 우리는 선해야 하며 선함을 보호해야 하고 선하기에 사람이 죽는 그런 세상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것. 일상에서 입 밖으로 내보내면 진부하고 진부한 이 말을 작가는 끝없이 계속하는 것이다.
<하줄라프 1,2>는 흥미로운 설정에도 불구하고 2편까지 나와서 실패한 소설이다. 판타지, SF의 설정 서사는 한 작품 안에서 독자가 그 설정이나 서사를 온전히 이해해야만 한다. 1편의 용과 용의 기수가 IS에 의해서 아이를 빼앗긴 어머니를 상징한다는 설정은 1편만 읽고서는 이해되지 않는다. 2편에서 그 의미가 해석되는데 아마 작가분도 이 서사를 한편으로 끝내는 게 아쉽기 때문이었을까 추측한다. 이래서 판타지는 단편으로 쓰기 어렵다.
이 글을 쓰면서 문학사상 출판사의 주소를 검색하고 있었다. 근처에 있는 주유소의 위치도 찾아본다(농담이다). 이 말도 안 되는 양아치 짓에서 한국 문단이 잃은 손실은 무엇일까. 단순히 소설 잘 쓰던 작가를 잃은 걸까? 문단, 출판계에서 중심적으로 다뤄지는 여러 이슈를 살펴보면 출판계와, 문단은 소비자인 독자를 무시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대표적인 경우가 도서 정가제인데 도서 정가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독자를 고려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내가 들은 의견중 가장 어이가 없는 건 독서 모임이 활성화 되는 건 인간의 영혼이 책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거여서 사람들이 책을 찾는다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이었다. 예술의 보호를 명분으로 (그들은 자신의 행동이 예술을 보호하는 궁여지책 정도로 여길 것이다.)날강도 짓을 일삼는 출판사는 없어져야 마땅하다. 출판사가 책임을 져야지 왜 윤이형이 책임을 지냐 이말이다. 한참 날아오르는 작가가 왜! 휴…. 굉장히 열 받는다. 두서없는 글의 결론은 윤이형 작가의 신작이 발표되길 기대한다. 이것이다. 그러면 나는 눈물을 흘리며 책을 읽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