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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까지 가자
장류진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7년 겨울. 난 내 인생이 망했다고 생각했다. 코인 때문이었다. 사실 2017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던 한 해였다. 처음으로 애인을 사귀었고 학교에선 상당히 넓은 교우 관계를 형성해 소위 ‘인싸’의 삶을 살았다. 원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교우 관계가 확장되는 과정에서 행복감을 느낀다. 그때의 내가 그랬다. 인생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재밌게 살다가도 한순간에는 불안감에 휩싸였는데,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삼촌 집에 얹혀살았기에 집세 걱정은 안 했지만, 항상 생활비에 쪼들렸다. 그러다가 2017년 겨울 코인 광풍이 몰아쳤다.
소설 <달까지 가자>는 그 코인 광풍이 시작되기 11개월 전인 2017년 1월에 시작된다. 2017년 코인의 흐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나는 이즈음에서 이 소설의 결말이 해피엔딩 아니면 엉망진창인 배드 엔딩 둘 중 하나라고 추측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그 추측이 맞았던 것에서 깊은 만족감을 느낀다. 소설의 주인공인 다해는 스낵 회사의 2년 차 회사원이다. 공채출신이 아닌 다해는 같은 부서 사람들과는 약간 겉돌고 비슷하게 공채출신이 아닌 지송, 은상과 더 친하게 지내며 회사 생활을 이어나간다. 그 셋의 공통점은 공채출신이란 거 외에도 스스로 ‘흙수저’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셋 다 현재의 회사 생활을 계속해봤자 미래가 없다는 답답한 현실에 절망하는 우리 시대의 젊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의 메인 스토리를 이끌 코인 ‘이더리얼’이 등장한다. 이더리얼을 세 사람 앞에 가져온 건 평소에도 이윤에 민감한 은상이었고 나는 이 은상의 맞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혹은 은상이 불린 액수에 혹한, 다해도 은상을 따라서 코인 투자를 시작한다. 어찌보면 간단한 스토리인데 장류진 작가는 이 과정을 위트있게 또 디테일하게 그려낸다. 다년간의 회사 생활로 다져나간 디테일은 장류진 작가만의 아이덴티티다. 또 순식간에 읽히는 문장은 어떤가. 페이지 터너라는 말은 너무 흔하고 난 꿀 바른 문장이라고 말하고 싶다. 목구멍에 부드럽게 넘어가는 맛있는 음료를 마시는 기분이었다. 뒷맛 없이 깔끔하다.
소설의 서사는 상승하고 하강하는 이더리얼의 시세에 따라서 달라진다. 그 모습이 마치 롤러코스터 같은데 세 중요한 등장인물이 각자의 입장에서 코인을 대하는 것에서 서사의 갈등을 일으킨다. 세속적인 은상,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다해, 현재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지송. 이 셋은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이 코인을 대하는 모습을 충실히 대변한다. 이들 셋은 다들 모난 곳 없이 평범한 인물로 그려지지만, 코인에 대한 태도는 결국엔 이 셋에게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제주도에서 일어난 사건은 이 갈등이 폭발하는 지점이다. 자꾸 코인 시세를 확인하는 은상, 다해를 보고 지송이 불만을 토로하자 마찬가지로 폭발한 은상이 지송에게 ‘펙트폭력’이라고 쏟아내는 말들은 말 그대로 현실적인 말이었고 그렇기에 아팠다. 지송에게서 내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소설 속 세 사람은 해피엔딩을 맞이하지만, 2017년의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만 바보가 된 것 같았다. 코인을 해서 손해를 본 사람보다 돈을 번 사람이 더 많을 때였다. 코인 광풍의 절정이었고 끝물이기도 했다. 나는 몰랐지만, 이걸 안 하면 바보가 되는 기분을 느꼈다. <달까지 가자>는 코인 광풍을 취재하는 르포가 아닌 일종의 성공담이기에 코인 광풍의 이면에 대해서는 제대로 묘사하지 않는다. 제주도에서의 갈등이 짤막하게 그 광풍의 이면을 다룰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