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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당신을 찾아갈 것이다
김홍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4월
평점 :
김홍 작가의 소설을 처음 본 건 요즘 매 호를 꼬박꼬박 사서 읽는 <에픽>에서였다. 제목부터가 보통이 아니다. <이인제의 나라>가 제목이었다. 대선에 나올 정도로 영향력 있는 거물급 정치인이었지만 애매한 경쟁력으로 대선 예선이나 본선에서 번번이 쓴잔을 마시던 정치인…. 뭐 아무튼 간에 제목부터 풍기는 웃기겠다는 느낌에 광대 승천하며 읽었지만, 생각보다 웃기지는 않았다. 아 이인제라는 동명 이인들을 모아서 뭐 <이인제의 나라>를 건국하는 느낌이었다.
원래 단편을 읽고 난 다음에는 소설의 디테일이 잘 떠오르지 않는 유형의 인간이지만 이인제의 나라는 이인제의 나라인지라 기억이 잘 났고 이번에 김홍 작가의 소설집을 읽게 되면서 왠지 반가웠고 웃겼다. 그리고 뭔가 상황이랑 인물들이 우스웠는데 이상하게 웃기지는 않았다.
일본 만화를 보다 보면 황당한 사건이 일어나면 그 상황 속에서 정상인 포지션으로 해설을 해주는 일명 ‘츳코미’캐릭터가 있다. 개그 콩트나 만담 속에서 이게 이상한 일이라고 지적을 해주는 것이다. 관객들은 그 츳코미 캐릭터 덕분에 그 상황이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는 걸 환기하고 그 환기에서 웃음을 유발한다. 내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김홍 작가의 소설 속에는 그러한 ‘츳코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일어나는 황당한 사건들이 일어나는데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 세계 속에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일어 난다. 모두가 그 상황에 그저 그러려니 해버리니 읽는 독자들도 그저 그러려니 해버린다. 상황이 웃기고 등장인물들의 대화도 웃기다. 근데 소설을 읽는 나는 어느 순간 그 상황을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웃기지 않는다.
첫 소설인 <실화>는 사기 피해자인 ‘정기’가 사기꾼인 ‘현수’의 개를 공원 나무에 버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셰퍼드 견종의 ‘도비’를 떠맡은 현수는 한국 소설이 의례 그러듯이 점점더 상황이 나빠지기만 한다. 물론 마지막 부분에 셰퍼드 도비가 공무원 시험을 보더니 갑자기 경찰 공무원이 되어서 도비의 보호자인 현수도 생활이 좀 나아진다. 문제는 그런 소설의 서사도 맨 처음 장면 때문에 정기가 대마를 해서 환상을 보는 건가 싶다는 것이다. 소설은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데 그 과정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어디가 이상한지도 모르게 끝난다.
두 번째 소설인 <우리가 당신을 찾아갈 것이다.>는 트럼펫 연주자인 크리스 아저씨가 실제로 트럼펫 연주자였는지 아니었는지를 확인한다. 근데 뭐 미국 협회에서 찾아오고 뭐... 내용은 정말 알 수가 없고 주인공은 나중에 크리스 아저씨만큼 나이를 먹어서 재즈클럽을 연다. 당연히 장사는 안 될 것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재즈 음악에 미친 할머니. 손자한테 공부하라는 것만큼 재즈를 들으라고 윽박지르는 건 정말 독보적인 할머니 캐릭터였다. 마지막 장면도 정말 좋았다. 김홍 작가의 소설은 서사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데 이 소설에서 만큼은 그 혼란이 마지막 장면으로 갈무리 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 부분이 좋아서 따로 표시해 남겨두었다. 기회가 되면 필사를 할 생각이다.
<신년하례>는 이 소설집에서 제일 웃기는 소설이었다. 다른 소설들이 이해 불가능한 웃김이었다면 이 소설에 한에서만은 내가 아는 웃김이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주옥같은 문장들이 많았다.
“아이스크림이 뭐라고 생각하나.”
“영하에 피는 꽃입니다.”
“합격 합격이야. 자넨 이미 출근해 있다!”
아주 좋아하는 장면이다.
김홍 작가의 <우리가 당신을 찾아갈 것이다>는 뭐랄까. 한국 소설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것 같은 소설집이었다. 이야 이런 소설도 쓸 수 있구나. 한국 문학은 스펙트럼이 아주 넓은 곳이 한국 문학이구나 싶었다. 물론 이 소설집은 이게 어떤 의미인가 생각하며 읽으면 아주 머리가 아픈 소설이었다. 그만큼 가능성이랄까 한국 문학의 패기에 놀랍기도 했다. 이런 소설도 나올 수 있구나. 싶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