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라는 생활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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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작가가 2021년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을 수상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그러려니 했다. 받을 만한 사람이 받았구나. 그런데 생각보다는 너무 늦게 받았네. 하긴 작년 2020년 젊은 작가상은 전형적으로 스타, 인기 작가 위주의 수상자를 선정함으로써 스스로 배스트 샐러가 되려고 했다. 문학상 수상집이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그 문학상의 권위는 상승하니 어찌보면 일종의 투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왜 아직도 이 작가가 못 받았지? 하는 경우도 생긴다. 잡담이 길었지만, 결론은 받을 만한 작가가 받았다는 점이다.

 

나는 한마디로 김혜진 작가의 팬이다. 작가가 낸 책은 거의 다 읽었다고 해도 좋다. 첫 소설집인 <어비>, 장편 소설인 <중앙역>, <9번의 일>, <딸에 대하여>. 중편 소설인 <불과 나의 자서전>을 읽었다. 작가님 너무 좋아합니다. 하악하악 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신간이 나올 때마다 꼬박꼬박 책을 사면서 읽고는 한다. 글을 모두 읽은 이의 소감은 한마디로 힘들다’. 책이 어렵다거나 못 쓴다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글이 아니다. 현실적인 사회 문제를 소설의 주요한 소재로 삼았다. 아니 정확히는 문제 적 상황 복판에 서 있는 인물들을 그렸다고 할까. <중앙역>은 노숙인의 삶을 묘사했고, <9번의 일>은 회사에 탄압받는 노동자의 일대기를 그렸다. <불과 나의 자서전>은 재개발 구역을 중심으로 한 거주자의 갈등을 다뤘다. 작가의 다른 단편들을 봐도 이런 사회적으로 골치 아픈상황인 등장인물들이 등장한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글들은 아니다.

그럼에도 김혜진의 글을 읽게 된다. 잘 썼다. 거기에다 마음을 울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김혜진 작가의 글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은 <9번의 일>이었는데 소설의 화자인 가 변화하는 상황에 쫓겨 끝내 도달하게 된 그 순간, 그 장면이 마음을 두드리게 했다. 그 페이지를 사진으로 찍어서 생각날 때마다 다시 읽는다. 여러분도 꼭 보시길 바란다. 또 작가의 놀라운 성실성, 차차 이름을 얻어 청탁이 늘어난 건지 최근에는 책도 많이 출간하신다. 잘 쓰는데 성실성도 있고 이제 점점 인정을 받기 시작한 작가다. 이번에 수상한 문학상이 작가에게 날개를 달아주기를 바란다.

 

<너라는 생활>은 작가 김혜진의 두 번째 소설집이며 비교적 최근에 발표된 단편 소설이 모아져 있다. 여기저기서 수상을 한 소설들인지 어쩐지 낯이 익은 소설이 많았다. 어디에선가 읽은 것 같은데 하며 다시 읽어나간다.

손으로 짚어나가며 보자면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여러 소설에서 공통적으로 발현 되는 나와 너의 관계이다. 보통은 이름으로 호명되지 않는 나와 너의 관계는 단순히 친구일수도 있고 우연히 만난 지인일 수도 있다. 애인이거나 혹은 파트너로 지칭되는 동거 애인일 수도 있다. 그 관계의 여러 양상은 어찌보면 무개성한 나와 너라는 등장인물들이 하나의 활력을 얻게 만든다. 관계의 양상이 계속 바뀌지 않는 나와 너의 관계라는 특징은 작가의 다른 소설들에서도 자주 보이는 특징이다. <딸에 대하여>에서도 이름이 불리는 등장인물은 거의 없다. <중앙역>도 없고 <9번의 일>도 마찬가지다. 이런 소설적 특징들은 소설 속 등장인물을 독립적인 개인으로 활동하게 하는 것이 아닌 사회적 상황 혹은 맥락적 상황에 정의되고 영향받는 인물로 만든다. 개인적으론 이런 스타일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데 김혜진이 쓴 거여서 그런지 계속 읽게 된다.

일반 독자들은 보통 개성있고, 통통튀는 인물들을 좋아한다. 이 소설 속의 인물들이 그런 캐릭터들은 아니다. 그런 묘사를 잘 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걸 감안하고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키려고 했는지. 보통은 그러한 과정에서 작가 고유의 문체나 스타일이 만들어진다. 작가 김혜진도 그러했으리라.

 

소설집의 두 번째 소설인 <다른 기억>은 대학 내 학보사에서 일어난 일종의 스캔들 혹은 추문을 바탕으로 한 교수가 징계당하는 과정에서 그 교수에게 좋은 감정을 가진 가 그에 분개하고 항의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도 나와 너가 등장하는데 여기서는 가까웠던 친구 관계로 보인다.

소설 속 상황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선생님과 공인으로서의 선생님의 분리를 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너는 처음에는 선생님에게 내려진 징계가 부당한 것이며 이에 항의하는 대자보를 붙이기도 한다. 그러나 징계받는 선생님에 대한 부풀려진 소문 중 일부는 맞는 것이었고 공인으로서의 선생님은 부패한 대학교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분리를 받아들이지 못한 는 결국 불협화음을 느낀다. 물론 이해되는 일이다. 개인적으로 친교를 나눈 사람이 어느 날 실망스러운 행동을 했을 때 우리는 배신당한 기분이 든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힘든 시기에 위로를 주었던 인디 밴드 그룹의 멤버 중 하나가 성범죄자로 수사를 받은 일이 있었다. 아이돌 그룹의 팬이라면 한두 번씩 겪는 일일 텐데 나는 최근에 한 번 겪게 되었다. 그 배신당한 기분 그 노래를 들으며 위로받는 경험이 순식간에 더럽혀진 그 기분. 인간은 사회적인 가면을 쓰며 그 가면에 따라서 다른 인격,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틀림없는 사실은 아무리 한 인간이 다양한 가면을 쓰고 있어도 그 가면을 쓴 인간은 모두 동일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한 집안의 다정한 남편이 범죄자가 되는 것? 충분히 가능하다. 아버지로서의 나와 범죄자로서의 나를 분리한다면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윤리가 필요한 것이다. 윤리는 삶의 지침을 내려주며 윤리에 따를 때 인간은 어느 순간에나 올바른 선택을 옳은 선택을 하도록 강요받는다. 소설 속 가 선생님에게 묻는, 원망, 분노는 결국 당신은 왜 윤리적이지 않았느냐는 질문과 다름없다. ‘가 그 사실을 이해하길 바랐으나 끝내 너는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한때 너의 돌출 행동으로 당황하면서도 너를 감싸던 나와 너의 관계는 결국엔 인간 생애의 수많은 인간관계 들이 그러하듯이 무화되고 흩어져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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