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 사람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3
제임스 조이스 지음, 진선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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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더블린 사람들>을 처음 읽었던 것은 군인 시절이었다. 군대에 적응하려고 분투는 시기를 지나고 나자 내가 뭘 하던 간에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시기가 찾아왔다. 어마어마하게 지루한 시기였다. 군인에게 가장 필요한 재능은 어떻게든 시간을 잘 보내는 것일 것이다. 지루하고 심심한 나날의 연속이다. 나는 주로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자면서 시간을 보냈다. 휴가에 나갔을 때 산 책이나 진중 문고니 선임들의 책을 물려받아서 읽고는 했다. 심심풀이로 읽은 것도 많았지만 이때가 아니면 읽기 힘든 고전들도 여럿 읽기도 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안나 카레니나>, <무기여 잘 있거라> 같은 책들을 그때 읽었다.

 

제임스 조이스는 <율리시스>의 명성(세계 최고의 소설이지만 아무도 완독한 적은 없다는 악명)을 통해서 잘 알고 있던 작가였다. <더블린 사람들>을 어떻게 구해서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앞에 적은 세 가지 경로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때 읽은 것이 벌써 6년 전의 일이라 흐릿한 감상만이 남았었는데 어둡고 음습한 도시의 풍경을 상상했다. 그리고 6년이 지나서 여드름이 숭숭했던 20대 초의 군인은 팔자주름이 선명한 20대 후반의 남자가 되었다. 지난 세월이 밥만 먹고 똥만 싼 건 아니어서 그동안 사고의 흐름이나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그렇게 소망한다)

 

<더블린 사람들>은 말 그대로 더블린 사람들을 메인으로 한 연작 소설집이다. 더블린시의 시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다양한 이야기의 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영국의 식민지라는 어두운 시대적 배경은 우리나라 구한말~일제강점기 시절의 배경의 소설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많았다. 가난한 노동자, 식민지 현실에 분열하는 지식인, 무거운 사회와 가부장제라는 억압에 고통받는 여성들, 북적이지만 어두운 도시의 풍경. <더블린 사람들><경성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바꾸고 지명과 등장인물의 이름을 번안하면 과연 그럴듯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제임스 조이스의 특징은 이러한 어두운 시대적 배경과 불행한 인간사를 어두운 톤으로 칠해 놓지만 그들의 불행을 메인으로 그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점이 조이스 후에 등장하는 리얼리즘 사조와는 다른 경향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리얼리즘 소설의 특징은 인민의 고통을 적시해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한다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다. 제임스 조이스는 이러한 목적에 반대한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인생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한 목적에 충실했기 때문일까. 긴 소설집의 분량에 수록된 단편의 개수는 열 편이 넘고 호흡은 짧지만 다양한 인간군상을 그려낸다. 그러한 인간군상이 모여서 살아가는 도시인 더블린’. 그렇기에 이 소설집의 주인공은 도시 더블린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집의 모든 소설의 질이 뛰어나 어느 소설이 더 좋다 아니다. 라고 함부로 평가하기에 에매한 작품집이었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단편은 <작은 구름><선거 사무실에서 맞은 페넬의 기일> 이렇게 두 편이다. <작은 구름>은 법률 서기로 근무하는 리틀 챈들러가 오래전에 영국으로 떠났고 그곳에서 성공해 금의환향한 친구인 갤러허와 만나기로 하면서 시작되는 작품이다. 그 둘은 서로 비슷한 나잇대고 더블린에서 사귀었을 때는 비슷한 사회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몇 년 만에 만난 갤러허는 성공해 이른바 속물이 되어 있었다. 미숙한 작가라면 챈들러가 변화한 갤러허에 위화감을 느끼게 하고 경멸하게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소설의 저자는 제임스 조이스다. 가정을 이루고 다른 형태의 성공을 쥐었다고도 할 수 있는 챈들러는 오히려 갤러허의 성공에 매료되어 자신도 저렇게 성공하고 싶다는 환상에 매료된다. 물론 챈들러에겐 육아라는 강력한 현실이 존재한다. 서재에서 아이를 돌보다 우는 아이에게 버럭 화를 낸 챈들러는 아내에게 구박을 받으며 현실에 돌아온다. 이러한 현실의 장면을 조이스는 작가나 다른 화자의 시선이 아닌 철저하게 챈들러의 시선으로 이 모든 장면을 보여준다. 작가가 등장인물의 삶을 존중하고 그의 삶을 표현하려고 할 때 핍진성은 달성되고 리얼리즘은 완성된다.

 

<선거 사무실에서 맞은 페넬의 기일>은 아일랜드의 비극적인 역사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다. 아일랜드의 역사적 상황은 일본에게 혹독한 식민지배를 받은 우리나라의 역사와도 비슷하다. 제임스 조이스가 활동하던 19-20세기의 시기에 아일랜드는 영국과 미국에서 하층민으로 혐오 받고 핍밥 받는 존재였다. 당시 아일랜드의 별명은 하얀 흑인영국인은 그보다 더 전에 많은 아일랜드인을 계약 하인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에 노예로 판매하기도 했다. 그 굴욕적인 역사는 이 소설 안에서 수다스러운 등장인물들의 대화 안에 녹여내 진다. 제목에 등장하는 페넬은 아일랜드의 독립운동가로 선거를 통해서 당선되나 사생활로 인해서 실각하고 몰락하는 인물이다. 현재의 우리 사회에서도 사회운동가들은 도덕적으로 완벽할 것을 요구받으며 작은 잘못에도 큰 지탄을 받는다. 반대로 영국의 국왕인 에드워드 7세는 방종한 성생활에도 불구하고 사내답다라는 말로 포장되기도 한다. 위선자들은 강한 권력을 가진 이를 맹목적으로 추종하지만, 반대로 그에 도전하는 이는 아주 쉽게 공격하고 비난한다. 이 소설의 백미는 소설의 말미에 등장하는 페넬에게 바치는 추모시다. 비가 와 북적이는 사무실 한참 수다스럽던 사람들은 송시에 등장하고 허무하게 잃은 영웅을 추모한다. 심지어는 그를 욕하던 이도 은은한 감동에 젖어있다. 그런 장면이 그려지며 소설은 끝이 난다.

 

제임스 조이스가 영문학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나는 잘 모른다. 그러나 이 소설집 <더블린 사람들>은 인간에 의해 쓰여지고, 인간의 삶이 쓰였으며, 인간에 의해 읽히기 위해 쓰여졌다는 것은 충분히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이 예술에 인생을 바치는 것을 숭고하게 여기고는 한다. 그러나 나는 인간에게 바쳐지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더블린 사람들>은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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