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헤어지는 하루
서유미 지음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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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다시 엔트로피 서사인가? 서유미 작가의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의 첫 소설인 <에트르>를 읽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이다. 엔트로피 서사는 권여선 작가의 소설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이다. 20, 30대의 가난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그들의 상황이 끝없이 나빠지는 서사를 나는 엔트로피 서사로 규정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도 모르지만 <에트르>는 확실히 그런 경향에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젊을 때는 생활하기 위해서 부지런하게 일했지만 지나가는 시간의 흐름을 인간이 어떻게 저항하겠는가. 아르바이트나 비정규직은 30대 여성에게 도움이 되는 직장이 아니다. 배운 것도 경력도 짧은 그녀에겐 어떤 삶의 대안도 등장하지 않는다. 삶은 끝없이 나빠지는 법이다.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사는 건 힘든 일이고 많은 여성 작가들이 그러한 현실에 대해서 토로하기 위해서 이런 유의 서사를 많이 쓰는 것 같다. 비슷한 유형의 소설을 많이 본 듯해서 <에트르>는 많이 상투적인 소설로 느껴졌다.

 

<개의 나날>N번방 사건이 이슈가 되는 요즘엔 적절치 않은 소재를 사용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주인공이 직접 소설 속 여성을 착취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공동종범으로 범행에 동조하고 있고 그에 따라 떨어지는 부산물을 얻는 것으로 묘사된다. 많은 소설이 불행한 삶 속에서 위안을 주는 문학이나 과거의 추억 같은 것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러한 위안은 지극히 상대적이므로 독자에게까지 감흥을 주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서유미 작가가 취한 전략은 막장 중의 막장을 묘사하는 것으로 때운 것이 아닐까 싶다. 여태까지 많은 막장 상황을 봐왔지만 이걸 이기는 막장은 기억나지 않는다. 완벽한 막장으로 토대를 쌓고 이라는 인물을 등장시킴으로써 소설은 강력한 설득력을 가진다. ‘는 변호사가 장의 유품을 준다고 하자 장의 유품을 다른 생활로 향하는 탈출구 정도로 생각하는데 그것이 물질적 가치는 아니더라도 탈출구가 된 것은 확실하다. ‘는 결말부분에서 조의 사무실로 돌아가지만 자신이 먹도 초코바(조가 주는 물질적 가치)를 개(,와 연)에게 주고 도망치게 풀어주는 장면은 나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이 물질적 가치만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뒷모습의 발견>은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속초로 여행을 떠난 부부가 남편이 실종되고 아내만 돌아옴으로써 시작된다. 남편의 이유 없는 실종에 아내는 불안함을 느끼지만, 삶의 무게(직장, 할 일 등등)에 남편을 신경쓰면서도 적극적으로 찾지는 않는다. 남편의 직장에서도 남편이 실종되었다는데 당혹감을 느끼기 보다는 당장 바쁜데 일할 사람이 없다는 데에 더 당혹감을 느끼는 듯하다. 이런 듯 서유미 작가는 인간을 수단으로 다루는 사회 혹은 악인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일가견 있는 듯하다. 남편이 실종된 이유는 끝내 밟혀지지 않는데 그럼에도 세상은 무사히 돌아가고 심지어 아내인 자신마저도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데 심한 무력감을 느끼는 것으로 결말짓는다.

 

서유미 작가의 소설들은 공통적으로 를 중심으로 현재와 과거의 사건이 번갈아 가면서 등장하고 작가는 이를 효과적으로 섞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섞임은 우리가 현재만을 사는 인간이 아닌 과거의 어떤 사건에 끝없이 영향받는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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