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25시

남자가 계속해서
주인 어디 있느냐고 다그쳐 묻기에
저는 일 봐주는 아르바이트생인데,
왜 그러세요?

그랬더니

다시
계속해서 주인 어디 갔느냐고
물어보기에아니 왜 그러시냐고요?
순간,
남자는 손에 커터 칼을 들고 있다.

무서워서,
정말 겁먹었는데

남자가 목소리를,







앞에 있는 종이 상자 가져가도 돼요?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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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모습

너를 좋아해서
너를 피해 다닌다

내가 겨우 바라보는 건
너의 옆모습

마음은 곁눈질에서 시작되나 봐

반달의 가려진 반쪽을 바라보듯
너의 나머지 표정을 상상해

쳐다봐 줬으면 하다가도
눈 마주치면 화들짝
고개를 돌리지

공책 귀퉁이에 그렸다가 얼른 지우는
너의 옆모습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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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의 요강

세계에서 가장 유명세를 탄 변기는
마르셀 뒤샹(1887~1968)의 변기일 것이다
그는 남성용 소변기에다 ‘샘‘이란 제목을 붙임으로
현대 미술을 그 이전과 이후로 갈랐다
1917년의 일이다

그해 윤이상이 태어났다
서양 음악에 우리 사상과 우리 소리를 결합해
이전에 없던 음악을 작곡하자
콧대 높은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후예들이
그를 현대 음악의 5대 거장으로 꼽았다

통영에는 윤이상을 기념하는 공원이 만들어졌고
(윤이상이란 이름을 쓸 수 없어 공식 명칭은 ‘도천테마공원‘인데 공원 안 건물 이층에 유품도 전시하고 있다
찾아가기 어려우니 멀리서도 잘 보이는 ‘테마 24시 사우나‘를 이정표 삼으면 된다)

유품 중에는 어린 윤이상이 쓰던
조그만 놋쇠 요강도 전시돼 있다
동글동글 온음표를 닮은 듯
달항아리를 닮은 듯
조명을 받아 어여쁘기도 하다

고 앙증맞은 요강 뚜껑을 열고
쫄쫄쫄, 볼일을 보던 꼬마는
그러나 영영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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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은 너무 무서워서 의자에 앉아 위스키를 단숨에 들이켰다. 무서운 것은 인생의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자신이 누군지, 혹시 뭘 하는지 모른 채 살아왔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것이 그의 내면에전율을 일으켰고, 그는 그것을 자신이 느낀 대로 정확히 표현할단어조차-스스로 잘 찾아낼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방식에 대해 스스로 모르고 있었다고 느꼈다. 그것은 바로 눈앞에 큰 맹점이 존재했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그를어떻게 보는지 모르고 있었다는, 정말로 전혀 몰랐다는 사실을의미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모른다는 뜻이기도 했다.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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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이 웃음을 터뜨리려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땅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개미떼가 보였다. 개미들은그의 차가 남긴 바큇자국 때문에 갈피를 잃은 것 같았다. 그는 개미들이 차 타이어에 숱하게 짓뭉개진 그곳에서 모래를 한 알씩 한 알씩 들고 포장도로에 생긴 균열을 따라 기어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간다면 어디로 가는가? 새로운 장소로?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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