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 난징대학살, 그 야만적 진실의 기록
아이리스 장 지음, 윤지환 옮김 / 미다스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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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그 역사가 영광의 역사이든, 패배의 역사이든, 그 역사로부터 배울려고 한 민족, 또는 나라는 부흥하였고, 반대로 과거의 영광에 머물러 있거나, 과거의 패배에 사로잡힌 민족이나 나라는 멸망하거나 지도에서 사라졌다. 대표적으로 '로마'를 들 수 있겠다. 로마는 자신들의 역사로부터 어떻게든 배울려고 하였고, 지금 당장 패배하더라도 오히려 그것을 계기로 다음 번 승리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면서,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다. 그 만큼, 역사는 그 나라의 미래와 운명을 쥐고 있는 과거의 유산이자, 미래로 향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난징대학살. 30만명이 넘는 무고한 민간인들이 '학살'을 당한, 어쩌면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잔혹한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될 지도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거나, 안다고 하더라도 철저하게 왜곡된 거짓을 사실로 인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짧은 기간동안 30만명이 넘는 민간인이 죽었던 사건은 그 어떤 때도 없었다. 이들의 만행은 유태인을, 그야말로 '인종청소'라는 말을 써야할 정도로 많은 사람을 잔혹하게 죽였던 나치의 것과 비견될 정도로, 아주 처참하고 비참한 사건 이었다. 단순히 민간인을 죽였다는 것 이상으로, 이들이 저지른 말도 안되는 강간, 생체 실험, 각종 범죄들은, 과연 인간이 한 행동이 맞는가 라는 아주 근본적인 의문이 들 정도이다. 결국 책에서 나온 것 처럼, 그들은 중국인은 자신과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았고, 그 결과, 이런 말도 안되는 대학살이 실제 사건으로 일어나버린 것 이다.

분명 역사는 과거의 것이다. 과거의 일본인들이 말도 안되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해서, 지금의 일본인과 동일시 할 수는 없다. 중국인에게도, 그들이 추구해야 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청산보다는, 그런 과거를 통해 무엇을 배웠고, 앞으로 그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이다. 오히려 이 책은, 중국인이 아닌 '일본인'을 위한 책이 되어야 되지 않을까. 어떻게든 과거를 조작하려는 태도를 줄곧 보여왔던 일본인들은, 그야말로 역사를 완전히 잊었다. 이것은 단순히 배상 문제도 아니고, 사과를 하고 안하고의 문제도 아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지만, 그런 한낱 '과거' 조차도 인정하려 하지 않으려는 것은, 곧 그런 과거를 되풀이를 할지도 모른다는 미지의 가능성을 표현한 것 이다.

1990년 이후로 경제가 폭싹 주저 앉기는 했지만, 일본은 분명 선진국에, 여전히 높은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지위에 알맞는 정신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 보인다. 같은 악행을 저질렀지만, 과거를 솔직히 인정하고, 다시금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한 독일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독일이 일본보다 훨씬 선진국이란 얘기를 하고 싶은게 아니다. 다만, 역사를 통해 배우려는 민족과, 역사를 조작하고 부정하려는 민족, 이 두 민족의 대조적인 모습이, 훗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에 대해 한번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것 이다. 역사적으로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었다.

난징 대학살. 이 잔혹한 역사가 잊혀지는 순간, 제2의 난징 대학살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책에서 나온 것과 같이, 이 역사를 잊는 것 자체가, 바로 제2의 난징 대학살이다. 결론적으론, 지금까지는, 역사는 일본의 편에 섰고, 이 말도 안되는 역사는 철저하게 조작되고, 잊혀져 갔다.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로, 역사는 강대국의 편이 되버린 것 이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 책과 같이 조작되고 잊혀지는 역사를 되살리려는 시도가 남아있는 한, 일본은 결코, 역사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을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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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원이 알려주지 않는 진실
강태호 지음 / 고려원북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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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인터넷의 목적은 전 세계가 거리. 시간의 개념을 넘어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나타난 것 이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인터넷의 모습을 보면, 그런 본래의 목적에서 꽤나 많이 벗어놓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물론 아직도 '주기능'은 정보의 공유이지만, 요즘에는 그런 주기능이, 그저 보조기능이었던 것들에 의해 전도되고 있다. 그 이유인 즉, 인터넷에 '자본'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유학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우리 옛 선조들도, 비록 빈도수는 드물었지만 그들에게도 '유학'이라는 개념이 존재했다. 선진국에 가서, 그들의 문화와 기술을 배워와, 우리나라에 전해주는 것. 그들에게 유학은 '개인의 부귀' 보다는 '국가의 부흥'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그러다보니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유학을 가곤 했다. 이것이 본래의 목적에 좀 더 가깝고, 유학이라는 개념이 그 어떤 것에도 물들여지지 않은, 순수한 그 자체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 이런 '유학'에 '자본'이 침투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사회인만큼, 돈이라는 수단을 통해 유학을 가야하는데, 이것이 뒤바뀌어서, 돈을 벌기 위해서 유학을 활용하는 경우가 급격히 늘어버린 것 이다. 그러다보니 애초에 그 본래의 목적이 점점 오염되고, 그러다보니 적지 않은 피해자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 이다. 그리고 결국엔, 지금의 유학은 상당히 부정적으로 비춰지고 말았다. 저자가 '브로커'라고 거듭 일컫는자들이 유학원 시장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 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자본'에 물들대로 물든 유학에 대해, 우리가 이제까지 알고 있던 잘못된 정보나 편견들을 깨뜨려 주고 있다. 모르는 것 보다 더 위험한 게 바로 잘못 알고 있는 것 인 만큼, 자본이 침투할대로 침투해 그야말로 돈에 '미쳐버린' 지금의 유학시장에서, 어떻게 하면 본래의 의미를 그나마 살리면서, 애초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목표를 이룰지에 대해서, 하나 하나 조목이 따지며 알려준다.

꼭 유학 말고라도, 앞에 말했던 인터넷도 있고, 어쩌면 출판시장까지. 그 아무리 순수한 목적에 생긴 것들도, 어느새 자본이 침투하면서 그 색깔이 바뀌고 있다. 하지만 무조건 사회만을 탓할 수는 없다. 어쨋든 이런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건 그 누구도 아닌 우리들이고, 그렇다면 이런 사회를 그나마 더 낫게 만드는 것 역시 우리들이 해야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색안경을 벗게 해주며, 지금의 현실을 자각하고, 문제점을 진단해주는 이런 책은 좀 더 가치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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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무원이 되고 싶다 - 공무원을 꿈꾸는 당신이 알아야 할 진짜 공무원 이야기
이인재 지음 / 책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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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IMF 외한 위기 이후로, 우리는 호황하던 경제와 시장도 한 순간에 폭싹 주저 앉을 수 있다는 사실을 뼈아픈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그와 함께, 우리는 어쩌면 지나칠 만큼 '안정'을 추구해 왔다. 불과 10~20년 전만 하더라도 적당한 봉급을 받으며 안정된 생활을 하는 공무원보다는, 좀 더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전문직이나 사업을 하는 것이 더 선호되었던 것과는 달리, 요즘은 그 무엇보다 '공무원'이 모두의 바람이자, 꿈이다. 물론, 시대에 따라서 어떤 직장이 선호되거나 비인기 직장이 되는 건, 비단 근.현대에 들어서만 나타난 현상은 아니긴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사회가 오로지 '공무원'만을 부르짖고 있는 지금의 모습은 분명 문제가 있고, 이에 따른 진단이 필요 하다.

저자는 오랜 공무원 생활 경험을 통해, 공무원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과 각종 오해에 대해, 좀 더 진솔하게 해명을 하거나 설명을 해 주고 있다. 그 누구나 선호하고, 그 누구나 '꿈의 직장'이라고 일컫는 공무원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 이다. 저자가 공무원에 대해 설명하는데 쓰인 많은 이야기들과 표현들 중, 가장 인상 깊고, 저자가 공무원에 대해서 느끼는 느낌을 가장 그럴듯하게 설명해 주는 문구는, 바로 '초식남'이 아닐까. 원래는 새로운 형태의 삶을 살아가는 현대의 남자를 한 분류로 나눈 신조어이긴 하지만, 여기서 '남자'의 의미를 제거하여, 좀 더 구체적인 의미를 부가한다면 '초식 동물'이라는 표현이 가장 알맞을 것 이다.

초식 동물은 풀만 먹고 산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온순하고, 느긋하다. 이들에게 새로운 도전 정신이란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대로, 들판에 얼마든지 많이 널려있는 풀을 뜯어먹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습성 때문에 육식둥물의 먹이가 되기도 하고, 이런 위험이 닥치면 결코 맞서 싸울 수 없다. 이것이 초식동물의 특징이자, 어쩌면 운명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초식동물의 습성이야말로, 공무원에게 '강요된' 모습이기도 하다. '안정'이라는 가치 아래에 자신의 도전심과 모험심, 호기심을 억눌러야 하고, 뭔가 새로운 것 보다는 익숙한 것만을 추구해야 하는. 저자가 예로 든 많은 지인들 중 대부분은, 육식동물의 습성임에도 초식동물의 습성을 가진 공무원의 옷을 입고 있어 일어나는 일이었다.

어쩌면 어느정도는 알고 있는 사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알고 있으면서도, 그 누구나 '안정하다'라는 장점 아래에, 이러한 모든 것들을 덮어버리고, 오로지 공무원의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노력한다. 분명 이러한 현상 덕에 유능한 많은 인재들이 공직의 자리에 오른다는 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분야에서 충분히 두각을 보일 수 있는 사람들 마저 공무원이 되버리는, 국가적으로 보았을 때는 분명히 커다란 손해인 현상이 너무 자주 일어나고 있다는 것 이고, 저자 역시 이 점에 대해 안타까워 한다. 

'과연 '안정'만이 직업에 있어서 최우선의 가치이고, 그것이 다른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가.' 

 이 책을 모두 읽고, 한번쯤은 생각해볼만한 주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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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진화론 - 공학도가 바라본 자본주의 위기
김송호 지음 / 태웅출판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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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인간에게 있어서 '부'가 언제 탄생했던 걸까. 정확한 시점을 알 수는 없지만, 우리의 먼 선조가 '수렵사회'에서 '농경사회'로 넘어가는 그 시점 어딘가에서부터, 인류는 음식물을 '축적'하는 법을 배웠고, 오로지 자신의 생존만을 위한 '축적'을 넘어서는 그 순간, 바로 '부'가 탄생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한 부는, 인류의 역사와 항상 함께 해 왔다. 옛날에는 기껏해야 곡식, 과일 등이 '부' 였다면, 지금은 '부동산' '주식' 등이 새로운 '부'가 되어버렸다. 인류가 발전한 만큼, 부 역시 발전을 한 것 이다.

저자는 부의 역사를 곧 '화폐의 역사'라고 정의한다. 곡식, 과일이 부의 상징이었을 때 까지만 해도, 그래도 아직은 '생존'의 문제였다. 부가 있다는 것은 자신이 먹고 살 양식이 있다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지만, 이 '화폐'라는 것이 등장하자 일이 복잡해지기 시작한 것 이다. 더 축적하기 쉬워지고, 화폐라는 것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인간의 심리를 오묘하게 활용한 것 이다.

현대의 '부'는, 여러 요소가 있을 수 있겠지만, 단연 돋보이는 것은 바로 '금융' 이다. 겨우 쇳덩어리에, 혹은 겨우 종이 쪼가리에 인간이 제멋대로 휘둘렸던 것도 모자라, 이제는 '가상'의 것이 인간의 부를 차지하고, 인간의 부를 차지하고 있는 것 이다. 그런 '가상'의 것에 지나치게 경제를 의존하다보니, 결국에는 대공황을 겪고, 최근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까지 겪으면서 그 대가를 혹독히 치루고 있는 것 이다.

저자는 이 뿐만 아니라, '화석 원료의 고갈'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경각심을 주고 있다. 어쩌면 이런 거품경제의 몰락이나, 화석 연료의 고갈로 인한 위기는, 우리가 금융을 만들어내고, 화석 연료를 이용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미리 예고가 된 일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위험 속에서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모든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영원할 것 처럼 행동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아닌, 어쩌면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도 충분히 잘 알고 있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망각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 다시금 일깨워 주고 있다. 문제를 진단하는 것 만으로 해결이 되지는 않겠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문제를 진단 조차 하지 않으려 하는 순간, 우리의 부는 눈 깜짝할 새에 무너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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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해야 청춘 - 서툴지만 포기하기엔 이른 당신을 향한 독설
김용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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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레밍'이라는 북유럽의 한 쥐 떼 이야기와 함께 시작한다. 어떤 레밍 한마리가 달리면, 주위에 있던 애들은 왜 달리는지 이유도 모른채, 그 쥐의 꽁무니를 쫒아간다. 그러다 낭떠러지가 나오면 결국 브레이크를 잡지 못해, 모두 죽고 만다. 참으로 한심한 동물일 수 없다. 자신이 절벽으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왜 달리는지도 모르는 채 그저 남이 가는 대로만 따라가는 동물의 행동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 역시 이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한 걸음만 물러서서, 지금의 20대들을 바라보면,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취업, 스펙, 이런게 나쁘다는게 아니라, 우리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어떤 대열에 합류해서 달려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이 레밍 이야기를 통해 한번쯤은 통찰을 해볼만 하다는 것 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거듭 강조하는 것은, 바로 '野' 이다. 거친 들판을 떠올리게 하는 이 글자는, 이 시대의 많은 청춘들에게 결핍되어 있는 요소이기도 하다. 이 시대의 청춘의 모습에서 거친 것들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오로지 남들이 정해준 길만 따라가고, 모든 초점을 오로지 '안정'에만 맞추어, 무언가에 도전할기를 좀처럼 꺼려한다. 생각만 너무 많고, 정작 행동하는 건 거의 없다. 무척이나 건강하고, 육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가장 왕성해서, 늘 무언가에 궁금해하고, 도전하길 좋아하고, 낯선 것에 뛰어들기를 좋아하는 20대의 이미지는,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는 완전히 사라졌다. 

이런 청춘들에게, 저자는 뭔가 복잡하고 어려운 걸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野'라는 한 글자로, 우리가 진정으로 지녀야 할 가치를 제시해준다. 역사적으로, 혹은 이 시대에 성공한 사람들이 어째서 남다른 삶을 살며 커다란 성취를 이룰 수 있었는지, 그 이유 역시 '野'라는 한 글자에서 찾고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딱 한 가지 질문만 스스로에게 할 수 있으면, 이 책을 제대로 읽었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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