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캐비닛'과 마찬가지로 '설계자들'도 가독성이 참 좋았다. 잠깐 잠깐 시간을 내서 읽었기에  

책을 읽는 중간에 길고 짧은 공백이 빈번하게 있었음에도 책을 다시 집어드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전 내용이 생각나지 않아서 도저히 읽을 수 없다던가,

흐름이 끊겨서 책 속의 분위기를 따라가지 못하겠다던가...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말이다. 읽는 동안에는 무척이나 흥미로웠는데, 이 소설의 어떤 점이 인상적이었냐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

마치 이 소설 속 등장 인물 정안의 삶의 방식, 지향점이 문득 떠오를 뿐이다. 기억이 희미하다...

어쩐다, 페이지를 덮은지 3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무언가를 떠올리기 위해, 희미해지는 인상을 또렷하게 만들기 위해 기를 쓰다가  

뜬금없이 작가는 맥주를 참 좋아하는구나 싶었다.'캐비닛'에서도 캔맥주만을 주야장천 마시더니,  

'설계자들'에서는 '맥주 주간'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는 게 떠올랐다.  

두 권의 소설에서 등장한 비슷한 음주 습관...

실제로 작가 본인이 해본 게 아닐까 슬핏 의심이 든다. 실은 확신에 가깝다.  

세 번의 구토가 필수불가결하고, 안주로 땅콩과 멸치가 등장하는 것을 보며  

맥주 주간의 실존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별로 체험해보고 싶지는 않구나...

 

주인공 래생은 킬러다. 그리고 킬러라는 직업이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또다른 직업군들이  

이 책에는 무수히 등장한다. 우선 설계자가 있어야 할 것이고, 중개인도 있어야 하고,  

정보를 모으는 사람도 필요하며, 시체를 처리해주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특수한 직업군에 속해 있는 인물들이 다수 등장하는 소설이다보니 무기들도 많이 나오고,  

등장인물들은 수시로 죽임을 당한다.

죽이고 죽임을 당하고...무슨 생태계의 먹이사슬도 아니고 끝없이 이어진다.  

그 사슬 속에서 몸을 담고 살아가는 인물들이 이 소설 속에서 살아가며 죽어가고 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고, 때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등을 돌리고, 처음부터 악한이라고

꼬리표를 달아놓기도 하는데...이 책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왜 밉지 않은걸까.  

그게 참 신기했었던 것 같다. 그건 아마도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문장들의 영향이 아니었나 싶다.  

가끔 되돌아가서 한 번 더 읽게 되었던 문단들이 여러개 있었는데, 그 문단들 때문에  

등장인물에게 부여된 삶이랄까 할당된 역할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 인물 그대로를 그저 용인할 수 있었다고 해야하나?  

그래서 섣부른 비난도 어설픈 판단도 뒤로 미루게 되고, 나만의 잣대로 재단하는 짓도  

별로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작가의 다음 소설이 나오면 기다렸다는듯이 읽게 될 것 같다.  

그게 이 책에 대한 인상으로 충분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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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저는 늘 스펙만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경쟁력 없이 살 수밖에 없는 대다수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삼미 슈퍼스타즈가 남자들을 위한 소설이었다면,  

이번 소설은 여자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라고 작가가 사석에서 말했다고 한다. 인터넷 서점에서 본 출판사 제공 책소개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글쎄, 딱히 위로받았다는 느낌은 없었는데...위로의 포인트는 어디였을까?  

나도 눈치 채지 못한걸까, 나만 알아채지 못한걸까?

 

못생긴 여자, 너무나도 못생긴 여자라고 페이지 속에서 무수히 강조되고 있는  

주인공이라기에 무엇하고 비중있는 조연이라기에 서운한 그런 여자가 있다.  

책 속에 있는 문장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인데...그녀를 본 순간 남자주인공이 이런 말을  

했을거다. 예쁜 여자 아이돌들이 쭉 서있는데 난데없이 알프스 소녀가 튀어나와  

요들송을 부르는 것과 같았단다. 

(비슷하려나...? 아닌가..? 책 찾아보고 확인해볼까...귀찮다...)

그녀를 보고 그런 정도의 충격을 받았단다. 쳇...그러는 주인공은 잘생겼다.  

아버지가 탤런트이기도 하다. 물론 도망갔지만...

외모가 그다지 아름답지 못했던 어머니는 버림을 받았고, 그런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외모가  

어지간히 한스러웠나보다. 동정인지, 희귀함에 대한 호기심인지 몰라도 주인공은  

못생긴 여자에게 접근한다. 그리고 사랑하게 된다...사랑하는 거 맞지?

이것조차 조금 의심스러웠었다.. 이 청년, 제대로 상담 한번 받아봐야 하는 거 아닐까  

책을 읽으며 때때로 생각했었다. 아버지의 배신, 그로 인해 달라진 어머니와의 관계,  

아버지와 똑닮은 자신의 외모의 삼중주가 그에게 어떤 트라우마를 남겼는지... 

그것을 극복한 상태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어도 관심을 가졌을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녀, 그녀의 태도는 너무나도 답답했다. 80년대에는 그랬다...라고 한다면 할 말없다.

주인공에게서 사랑이라는 걸 받고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상처를 극복했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을 뿐더러, 주눅들어 있고, 왠지 움크리고 있는 듯한 모습이 싫었다.  

못생겼다는 이유로 돌을 던지는 나쁜 것들이 무수히 존재한다는 전제하에 그녀는  

그런 성격으로 성장할 수 밖에 없었다라는 설정도 그다지... 

차라리 그 나쁜 것들에 짱돌을 던질 수 있는 못되고 비뚤어지고 강단있는 성격으로  

자랐으면 좋았겠다 싶었다. '젠장, 이런 나라에서 안 살아'라며 욕이나 한바가지 해주고

훌쩍 트렁크 하나 끌고 내일 새벽 비행기를 타러 떠나는 사람이었으면  

이 책을 읽으며 괜한 불만을 토로하지 않아도 되었을수도...

그녀가 마지막 페이지까지 답답했기에, 읽는 내가 대신 화라도 내주고 싶었졌었던 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

태어난지 얼마 안 된, 두 돌이 안 된 어린애들도 예쁜 여자를 알아보더라...

다수의 잘생긴 남자는 예쁜 여자를 좋아하고, 거의 대부분의 못생긴 남자도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

그래서 못생긴 여자를 내세워서 여성을 위로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을 듣고 조금은 기대했었다.

그런데 트라우마에 헤어나지 못한 잘생긴 남자에게 사랑받는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도대체 어디로 위로받으란 말일까? 그것이 알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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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교실 - 제48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소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침묵의 교실'은 아오바가오카 중학교 3학년 A반의 담임이  

그가 맡은 반에 붙여준 별명이다.

물론 누구에게도 그 별명을 말할 순 없었을 것이다. 학생에게도 동료 선생에게도...

'침묵의 교실'이라는 이름을 지었을 정도로 3학년 A반의 분위기는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조용하지만 낮은 웅성거림이 존재했고, 차분하지만 악의와 공포로 술렁거리고 있었다.  

그런 학급이기에 그 작은 교실에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무시무시한 사건들이 일어났고,  

동급생들도 알게 모르게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다.  

누구에게는 말할 수 없이 끔찍했던, 누군가에게는 유쾌하지 않았던 시간들이  

졸업이라는 이름으로 끝이 난다. 그리고 그들은 교정 한 켠에 있는 벚나무에 타임캡슐을 묻고  

20년이 지나면 다함께 꺼내보자고 약속한다. 그런 약속을 할만큼 그들이 보낸 1년이  

정겹지도 아름답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다. 그리고 아오바가오카 중학교 3학년 A반도 동창회라는 걸  

하게 된다. 하지만 그 동창회는 누구에게나 반가움의 대상이 되는 건 아니었다.  

20년 전에 그 교실에서 일어났던 사건들로 큰 상처를 입고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는 이도 있었고,  

그 녀석들이 동창회라는 걸 한다는 자체를 용서할 수 없는 이도 있었으니까.  

그런 움직임을 아는지 모르는지 동창회 준비는 착착 진행되어 간다.  

그리고 동창회에 대한 계획이 제법 구체성을 갖추었을 즈음에 드디어 심상치 않은  

복수의 움직임이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무척 긴 소설이었다. '오리하라 이치'라는 이름을 믿고 그 긴 페이지를  

읽어내려갔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끝까지 믿었었다. 무언가 있을거야, 뭔가 깜짝 놀랄 뭔가가 내가 아직 읽지 않은 페이지에  

숨어있을거야...스스로를 달래가며 650페이지를 읽었다. 그리고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

완전히 재미없는 건 아니고, 적당하게 괜찮은 읽은거리이기도 하고, 읽는 도중에 몰입도도  

떨어지는 편은 아니었으나!

결정적으로 기대했던 뭔가가 없어서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었다.  

600페이지 넘게 읽었는데, 어쩌면 이럴 수가 있어...라는 생각이 안 든 것도 아니었고.  

그러니까 이 책을 읽기 전에 너무 큰 기대는 낮추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틀림없이 이 소설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테니까.  

'설마...여기서 끝나는 건 아니지? 아닐거야...'라며 얼마 남지 않은 페이지를  

초조하게 넘기다보면 읽는 사람이 다 피곤해져버리니까.

     

이 책을 읽고나서 '맞은 사람은 발 뻗고 자도, 때린 사람은 편하게 잘 수 없다'라는  

속담인지 권장교훈인지 모를 문장이 생각났었다.  

'침묵의 교실'에서 이 문장은 완벽하게 들어맞지 않는다.  

맞은 사람은 그 상처와 흉터를 결코 잊지도 못하고, 트라우마에 빠져 끝내 인생을 망쳐버리고... 

때린 사람은 시간이 지났으니 추억이 되었을거라는 낙관적 사고를 하고 있다.

'...맞지 않으려면 때려라'라는 건 안될 말이지만 _ 이런 태도로 살아가는 캐릭터가  

소설 속에서 등장한다 _ 결코 누군가가 때리게 그대로 둬서는 안된다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이게 이 책의 교훈이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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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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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여교사 유코의 딸이 그녀가 근무하던 중학교 수영장에서 숨진 채로 발견된다.  

처음에는 사고인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건 불행한 사고가 아니었다. 그것을 알고 있는 건 범인들과 유코 뿐이었다.

그리고 종업식날 유코는 교단에서 학생들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공포한다.

자신의 딸은 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 살해당한 것이라고... 

그리고 그 범인은 바로 이 반에 있다고...

그녀는 사건의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학생들에게 들려준다.  

하지만 정작 그녀가 하고 싶었던 말은 따로 있었다.

그 말이야말로 복수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교단을 떠나버린다.

그녀가 던져두었던 복수의 씨앗은 그 학급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해나간다.  

그게 그녀가 원했던 복수의 형태였을까?

거기에서 복수가 끝나버렸다면 화려한 수상경력을 지닌 소설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복수는 계속될 것이다. 그녀가 '이제 그만!'이라고 선언하는 순간까지.  

어쩌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영화로도 나왔다. 영화 예고편을 보다가 '초특급 베스트셀러 원작'이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 초특급 베스트셀러는 어떤 책일까 궁금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던 것 같다.

소년범에 대한 적절하지 못하다고 주장되는 처벌, 여교사의 어린 학생에 대한 개인적인 보복이  

과연 괜찮은 것인가...기타등등을 고려하면 무척 복잡해지고 심란해지기 마련이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라고 문제거리가 될만한 것들을 보아넘긴다면...

조금은 섬뜩한 분위기를 지니고 여러가지 반전을 준비해 놓았을 뿐더러,  

정교한 장면배치가 인상적인,

데뷔작인데 데뷔작스러운 느낌이 들지 않는 소설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부담스러운 페이지 수가 아니라서 금방 읽을 수 있고, 어떤 내용이 이어질까 궁금해서라도  

책장은 잘 넘어간다.

다만 개운하고 유쾌한 기분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라는 것.

책을 읽은 그 날 낮잠을 자다가 나쁜 꿈을 꾸었을 정도로 개운하지도 유쾌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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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도조 겐야 시리즈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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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산골 마을, 그리고 그 지역의 유력한 히가미 가에서 벌어지는 연속 살인사건이  

이 소설의 주요 소재라고 할 수 있다. '연쇄' 대신에 '연속'이란 단어를 선택한 건  

사건들 사이에 십년이라는 텀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랄까.

그 사건들은 히가미 가에서 벌어지는 후계자 계승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으나,  

그 사건이 계획되고 발생하고 미궁속으로 이끌고 있는 데에는  

그 지역만의 고유한 괴담이 기여한 바가 크다.

히가미 가에는 독특한 참배 의식이 전해지고 있다. 히가미 가, 특히 그 중 제일 가문인  

이치가미 가의 아들들은 병약하기 짝이 없었다. 튼튼하게 자라나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죽거나,  

살아남아도 허약함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 이유라고 지목되는 데에는 괴담과 저주가

존재하고 있었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삼삼야라는 참배의식을 꼬박꼬박 치르고 있는 것이다.

히가미 가에서 아들이 태어나면 삼일째 밤, 십 삼년째 밤, 이십삼 년째 밤에 그 의식을  

치르게 되는데, 이치가미 가의 아들은 특별히 삼십삼 년째 밤의 의식까지 거행하게 된다.  

사건은 바로 십 삼년째 밤, 그러니까 십삼야 참배에서 발생하게 된다.  

이치가미 가의 쌍둥이 남매 중 여동생인 히메코가 우물에 빠져 죽은 것이다.  

사고인지 사건인지 명확하게 밝혀지기도 전에 이치가미 가에서는 무언가에 쫓기듯이  

장례를 치러버리고, 지역에서 유력한 가문의 입김이 작용한 탓인지는 몰라도  

그 사건은 명확한 설명도 해명도 필요없이 서서히 잊혀져간다.

하지만 십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이십삼야 참배가 치러졌다. 참배 자체는 무사히 그리고  

안전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 직후 이치가미 가의 장손 조주로의 신부감을 찾기 위한  

맞선 자리에서 기필코 사건이 일어나고야 만다. 거기에서 신부감 후보였던 한 여성과  

조주로로 추정되는 남자가 목이 잘린 시체로 발견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건의 전초에 불과했는데...

이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사람은 소설가이자 이 사건이 일어나던 당시에 주재소에서  

근무했던 경찰 다카야시키 하지메의 부인이다.

그녀가 들려주고 있는 그 이야기는 잡지에 연재중에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다시금 옛 사건을 차분하게 집필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잡지 연재분이 늘어날수록, 사건의 실체가 아슬아슬하게 드러나려고 할수록  

아직 사건은 진행중이라는 강력한 예감이 들어버린다. 그리고 그 예감은 그다지 틀린 게 아니었다.
작가가 준비한 치밀한 반전 그리고 또 반전을 기대해봐도 좋을 책이었다.  

작은 마을 자체가 주는 폐쇄감, 그리고 그 마을을 장악하고 있는 괴담은 이 소설의 분위기를  

고즈넉하고 스산하게 만들면서 소설 속으로 더욱 빠져들게 만드는 것 같다.

흥미롭게 읽었다. 조금 길다 싶기도 하고, 지나칠 수 없는 헛점도 있었고,  

배경이나 인물을 설명하는 부분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지만...

이 소설이 준비해 놓은 반전이라던지, 사건을 교모하게 괴담과 엮어놓은 부분만큼은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제목만 보고는 으스스할지도 모르겠다 싶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작가가 흩어놓은 사건의 실마리와 단서들을 발견하면서 이리저리 짜맞춰가는 과정이  

꽤 즐거웠던 것 같다. 잠 안 오는 밤에 읽어보면 좋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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