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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 천년, 탄금 60년 - 가야금 명인 황병기의 남기고 싶은 이야기
황병기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오동 천년, 탄금 60년'
처음에는 제목에 매료되었다. 60년간 한길을!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 자체가 쉽지 않고, 그 일이 재능이 있으라는 법은 더더욱 없고, 탁월한 재주가 있다고 해도 오랫 시간 동안 끈기와 인내를 지속하는 일이 가능한 것일까는 내 오랜 의문이다.
그래서인지 머리말에서 '가야금 인생'이었노라는 문장을 읽고, 어떻게 해서 자신의 인생에서 숙명같은 일을 만날 수 있게 되었는지, 그리고 첫눈에 그 일을 알아볼 수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더불어 가야금에 대한 열정과 애정의 원동력도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러면 다분히 소모적인 겉돌기를 마무리 짓고, 씩씩하고 멋지게 한걸음을 크게 내딛을 수 있는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를 하면서 한장한장 읽어나갔다.
평소에 가야금 음율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도 그의 이름은 낯설지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미궁괴담의 기여로 청소년층에서도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고 있는 듯 하다. 인터넷에서 그의 이름을 치면 관련검색어로 등장하는 미궁은 이 책에서도 그 곡을 만들게 된 계기와 간략한 소개가 언급되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음반 중 가장 안 팔리는 게 이 곡이라고 한다. 음반을 사서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곡이 아니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커피광고로도 기억하는 분이 있지 않을까 한다. 1980년대에 명사 시리즈에서 출연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런 그가 기억하는 삶의 부분들로 채워져 있다. 그가 만났고 기억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공부에 흥미를 갖게 해 준 친척 아저씨, 기인이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괴짜 아저씨부터 가야금과 함께 하면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찾아볼 수 있다. 그 속에는 백남준의 쓰레기 무단 투기도 있고, 천둥처럼 대가에게 받은 한 마디의 가르침도 있다.
그리고 가야금과 함께 해 온 시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들 사이사이에는 작곡의 순간부터 남북 음악 교류까지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빼곡히 자리잡고 있다. 피란 중의 국립국악원, 초기의 국악과, 협소했던 공연시설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었다. 60년대 영화음악제작 환경을 엿볼 수 있는 장면도 있다. 가야금과 만난 이후의 이야기에서 가야금이 등장하지 않는 부분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책을 읽으면 가야금이 그의 삶의 큰 부분이었음이 느껴진다.
일찍이 가야금에 매료되었지만 음악으로 먹고 살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진 적도 있었단다. 음악 한 가지에만 매진해야 겠다는 결심을 한 것은 38세 때, 그리고 전문 음악인으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순간도 가야금과 떨어져 지낸 적이 없었고, 행간 어디에서도 권태를 발견할 수 없었다. 마음을 사로잡혀 그 매력에서 헤어나오고 싶지 않은 일은 정말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일을 갖게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얼마만큼의 만족감을 느끼게 되는 것인지 궁금하지만 그 의문을 풀기위해서는 엄격한 자격조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좋아해서 집중하는 것이 잘할 수 있는 첫번째 조건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게 된다. 이전에 품었던 모든 의문은 결국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찾아내면 되면 한순간에 풀리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선 조급함을 한쪽으로 밀어두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야 겠다. 그동안 마음만 바빠서 침착함을 잃고 허둥지둥했던게 아니었나, 숫자에 강하지도 않으면서 이것저것 계산하느라 오히려 스스로를 혼동속으로 몰아넣지 않았나 되돌아보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