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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위의 작업실
김갑수 지음, 김상민 그림, 김선규 사진 / 푸른숲 / 2009년 6월
평점 :
'지구 위의 작업실'은 빛과 소리 한 줌 들어오지 않는 지하 37평의 공간, 그의 작업실에 대한 책이다.
그는 그 작업실에서 커피콩을 볶고, 에스프레소를 만들어 마시고, 오디오와 씨름하고, 클래식에 심취한다.
별다른 작업을 하지 않는 작업실이라니...멋지다!
책에는 커피, 오디오, 클래식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런 점에서 그의 책과 작업실은 서로 닮아있지 않을까?
잘 모르는 오디오에 대한 글도 재미있게 읽었다.
오디오는 발을 들이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다고 하던가, 살림을 녹여낸다던가라는 말을 어디서 얼핏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이 책을 읽고나서 정말일지도 몰라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오디오의 매력이 아스란히 피어오르는 걸 본 듯도 하니까 말이다.
커피로스터를 장만할 여력이 없어서 볶은 커피콩이나 그때그때 사다먹는 현재로서 오디오는 무리일세라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줄라이홀-작업실 이름이다-이 지하실이래서 설마했었는데, 정말 거기서 커피콩을 볶고 있었다.
놀라움과 감탄의 느낌표가 두 개정도 땅땅 찍힌다.
단조로운 핸드픽, 일주일치 커피콩을 정성스럽게 볶는 일, 매일 자신에게 맛있는 커피를 대접하는 일이 일상이라니.
이러저러 번거롭기도 하고, 마음으로 점찍어둔 로스터기의 가격은 뒷걸음치게 만들기도 하고, 몇 일 신났다가 귀찮아하면서 창고 속으로 유배를 보내버리는 만행을 저지를지도 몰라서 로스터기를 향해 질주하는 욕심을 봉인해두었었다. 그런데 책을 읽고나서 봉인이 해제된 것 같다.
생두가 볶아져 원두커피가 되면 당장 값이 열 배로 뛰니까. 날마다 커피를 즐긴다면 어째서 직접 로스팅을 안 하는지 모르겠다. 그 비싼 원두 값이 부담스럽지도 않나?
이 문장 읽고 주먹 불끈 쥐고 갖고야 말겠어를 외치고 말았으니까.
당연히 커피콩값이 부담스럽다. 직접 볶아 먹으면 맛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우선 귀찮음과 게으름이라는 친구에게 결별을 고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어쨌든 지금은 커피콩을 사먹고 있고, 시간이 지나서 향이 옅어지면 아이스크림, 초콜렛, 시럽 따위로 위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과일을 넣어서 커피음료도 만들어 마시고 있다. 그리고 커피콩대신 불안으로 영혼을 볶아대고 있으니까 당분간은 좀 더 생각해봐야 겠다.
'이래도 될까?'가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로 됐다가 '지금 이대로는 안되는거야?'로 바뀌곤 한다.
때로는 옆사람을 힐끔거리다가 '저래야 하는걸까?'라고 의문이 들기 시작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저들처럼 반듯하게 놓여있는 길을 밟아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밀려오고 급기야는 '지금 나 탈선하고 있는거야?'라는 생각도 가뭄에 콩나듯 들기도 한다.
그런 식으로 스스로를 조금씩 괴롭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꽤 에너지 소모가 컸다. 비효율적인 자기 연소를 언제까지 반복해야 할까 생각하면서도 쉽게 벗어나지 못했었다.
그런데 줄라이홀을 살짝 들여다보면서 '그래도 괜찮을 거 같다'라고 결론 내렸다.
그냥 지금 이대로의 내 모습을 인정하기로 말이다. 쓸데없이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예전부터 아지트란 걸 갖고 싶어했다는 걸 떠올렸다. '지구 위의 작업실'을 읽으며 내 아지트는 무엇으로 채울까 궁리해보았다.
그리고 상상 속의 아지트를 꾸미고 깨달았다. 건물 같은 게 필요하겠구나.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