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여행
다나베 세이코 지음, 신유희 옮김 / 북스토리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아주 사적인 시간'의 작가 다나베 세이코의 단편소설집이다.

 

1964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감상 여행'과 '당신이 대장', '시클라멘이 놓인 창가'라는 제목이 이야기가 실려있다.

 

'감상여행'은 청춘이란 돈과 같은 거라며 얼마남지 않았다고 생각되면 마구 쓰고 싶어지는 법이라고 말하는

 

서른 일곱의 방송작가 유이코와 그녀의 남자친구, 그리고 그들의 연애와 실연을 지켜보는 15살 연하의 동료 작가 히로시가

 

그려내는 뒷맛이 씁쓸하기 짝이 없는 사랑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다.

 

다나베 세이코가 정의한 '감상'은 사전적 정의와 다르다는 것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소설의 후반부로 갈수록 참 쓸쓸하고 공허한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에 점점 더 강도가 실린다.

 

타인의 로맨스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울 수 있는지, 허접하고 어설프게 보일 수 있는지 끊임없이 말해주는데,

 

사람들이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얼마만큼 객관적이라는 허울을 쓰고 냉정해 질 수 있는지 이 책을 보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당신이 대장'은 결혼 15년차 부부의 이야기다.

 

순종적이고, 남편의 허락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아내가 '화장대' 사건을 계기로 뿔이 난다.

 

그리고 항상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을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아내가 커리어우먼이 되겠다고 선언한다.

 

저러다 말겠지했던 남편은 시시각각 달라지는 아내의 모습에 무덤덤한 척 하지만 

 

사실은 미미하게나마 마음의 동요가 시작된다.

 

'아내가 부끄러움을 모르기 때문에 저렇게 변할 수 있는거다,

 

사회 생활이란 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닌거다,

 

원래 자기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없는거다'

 

라고 말하는 남편의 모습에서  과거의 대장으로서의 위신과 체면을 사수하려는

 

몸부림이 느껴지는 걸 왜일까.

 

어쨌든 아내는 끊임없이 변해가며, 남편을 향한 일격을 준비한다.

 

'시클라멘이 놓인 창가'는 중년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남자는 쓰고 버리는 존재라는 신념하에 애초부터 혼자 지낼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던 루리 앞에

 

어느날 하얀색 시클라멘 꽃화분과 함께 한 남자가 찾아온다.

 

시대의 추억을 공감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나서 그녀는 꽁꽁 감추어 두었던 마음 한켠을 내보일 수도 있게 된다. 

 

도란도란 나누는 그들의 이야기를 책을 통해 엿보며

 

중년에 찾아온 사랑의 은근한 멋스러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책 속에는 드라마에서처럼

 

잘생기고 성격좋고 어느 하나 부족한 게 없는데, 그는 왜 그녀를 좋아할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하는 왕자님도 없고

 

외로워도 슬퍼도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는, 씩씩하고 용감한데 착하기까지한 -실재로는 한번도 본 적 없는- 캔디도 없다.

 

다만 사랑받고 싶은데 사랑받지 못해서 슬픈 사람과

 

사랑하고 받기에 자신에 대한 사랑이 더 깊은 사람이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왠지 현실에 꼭 있을 것 같아서 그저 소설 속의 이야기로만 머물러 있기를 바래보는

 

사랑 이야기가 '감상소설'에 실려있다.

 

"오로지 인간의 마음을 생각해왔다.

 

우선 모두가 관심을 갖는 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 문학의 원점은 바로 거기에 있다"

 

라고 다나베 세이코가 말했다고 한다.

 

다나베 세이코의 사랑 이야기가

 

지극히 현실반영적이지만 처절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녀의 문학의 원점에 대한 정의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나베 세이코의 사랑 이야기는 끈적이지 않는 강함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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