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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닿을 수 없는 너의 세상일지라도
미아키 스가루 지음, 이기웅 옮김 / 팩토리나인 / 2023년 3월
평점 :
대다수 사람들은 기억에 대한 이기심을 갖고 있지 않을까 싶다. 몽들몽글 따뜻하고 행복했던 기억은 잊고 싶지 않고, 시리도록 차갑고 불행했던 기억은 어서 빨리 사라져 버렸으면하는 보통 사람의 마음. 그런 의미에서 '기억'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이기적이라 하겠다.
미아키 스가루의 '비록, 닿을 수 없는 너의 세상일지라도'라는 기억을 원하는 대로 만드는 것도, 지워버리는 것도 가능하다는 기억을 대하는 사람의 이기심을 그대로 담고 있다. 기억을 소재로 하는 소설을 아주 새롭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일시적인 기억상실이나 다소 특별한 능력으로의 기억이 아닌 원하는 모든 사람이 기억을 재구성할 수 있다는 다소 파격적인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사람의 기억이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부모와 자식으로, 친구로, 연인으로 스스로에게 주어진 모든 순간을 추억으로 채워가는 것이 기억이것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이들은 언제든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가며 스스로에게 주어진 시간을 무감하게 채워간다.
"이 세상 어딘가에 나의 운명의 상대가 있다"
만들어진 기억 "의억"에 의존하는 성향을 가진 부모님으로 인해 부모로부터의 사랑은 물론이거니와 친구조차 하나 없는 외로운 유년 시절을 보낸 치히로는 안갯속을 헤매는 것 같이 희뿌연 어린 시절의 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드디어 잊고 싶은 어린 시절을 지우기 위한 레테를 손에 넣은 치히로, 그러나 운명의 장난처럼 치히로가 기억을 지우기 위해 마신 레테는 가공의 기억을 만들어주는 그린그린이었고... 아무것도 모른 채 그린그린을 마신 치히로는 오래전부터 선망의 대상이었던 소꿉친구의 기억을 갖게 된다.
오랜 염원이었지만 의억에 의존하게 되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었던 치히로는 의억을 지우기로 결심하지만, 의억을 지우고 싶지 않았던 본심이 치히로를 막는 것처럼 번번이 레테를 마실 기회를 놓치던 어느 날, 그의 눈앞에 의억으로 만들어진 소꿉친구 나쓰나기 도카가 나타나고, 치히로는 그녀의 등장과 함께 또다시 흔들리기 시작한다.
한편, 치히로와 다른 이유로 어린 시절 추억이 없는 도카. 촉망받는 의억기공사로 활동하던 도카는 갑자기 맞닥뜨린 불행을 의억과 함께 마주하기로 한다. 예정되어있던 운명처럼 혼자 견디던 외로운 삶 속에서는 서로 닿을 수 없었던 치히로와 도카는 아이러니하게도 의억이라는 가공의 삶이 인연이되어 함께하게 된다. 진짜가 아닌 만들어진 기억으로 함께하게 된 어린연인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결말을 염원하게 된다.
"그리고 만난 적 없는 두 사람이 재회했다. 한 번은 스쳐 지났으나 몇 걸음 뒤 돌아보고는 서로의 모습을 확실히 인식했다. 내 세계의 톱니바퀴가 마침내 맞물린 밤이었다."
어쩌면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는 '의억'이라는 특별한 소재로 갈수록 서로에게 소원해지는 우리들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하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책이었다. 혼자가 익숙하다고 느끼면서도 우리는 항상 사람의 온기를 그리워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 도카의 인생은 고독했는지도 몰라."
나는 수긍했다.
"하지만 결코 무의미하지는 않았어. 그러니까 내가 여기 이렇게 있는 거야. 넌 나의 '히로인'이고 난 너의 '히어로'니까." (p.353)
[ 네이버카페 몽실북클럽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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