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들이 잠들지 않는 그곳에서
조나탕 베르베르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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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음침한 분위기가 감도는 무표정한 세 여인이 "심령들이 잠들지 않는 그곳에서"라는 제목과 사뭇 어울린다. 개미의 거장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떠올리게 하는 신인작가 조나탕 베르베르의 600페이지에 달하는 첫 장편소설을 묵직한 무게감과 함께 읽기 시작한다. 1888년 뉴욕을 배경으로 생계형 마술사 제니의 모험담은 19세기 심령주의를 이끌었던 폭스 자매의 실화를 소재로 흥미롭게 이어진다.

죽은 이의 영혼을 불러내는 영매가 비단 외국에서만 존재하지는 않았다. 우리네 무속에서도 심심하지 않게 등장하는 것이 영매일뿐더러 그렇게 등장한 심령들은 거짓과 사실의 경계를 오가며 남은 이의 마음을 흔들어 놓곤 한다. 죽은 이를 그리는 마음을 그리는 산자들의 마음이야말로 심령주의가 활활 불타오르게 하는 매개라 하겠다.

가난한 마술사 제니는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마술공연을 하며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명한 탐정회사 핑커턴의 로버트가 제니를 찾아와 매력적인 제안을 한다. 거액의 보수와 함께 제안된 폭스 자매의 비밀을 찾고 있다는 로버트의 제안은 제니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충분히 의심이 생길만한 정황이만, 생활고와 호기심에 못 이겨 로버트의 제안을 받아들인 제니는 핑커턴의 요원이 되어 폭스 자매의 비밀을 찾아 나선다.

"가면을 조심해라. 가면을 너무 오래 쓰다 보면 가면 이 우리의 얼굴에 영원히 새겨지고 만다. 그러면 우리는 가면을 쓰기 이전의 우리가 누구였는지를 잊게 된다." (p.190)

제니가 비밀을 밝혀야 하는 폭스 자매는 죽은 이들과 소통하는 영매의 능력을 내세우며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랑하는 사람과 마지막 대화를 나누고 싶은 사람들의 폭발적 지지를 등에 업고 심령주의의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영혼과 대화하기 전 들리는 소리 "딱" 소리에 대한 비밀이야말로 폭스 자매의 비밀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그들을 향해 거침없이 몸을 날리는 마술사 제니! 위험천만한 고비가 생길 때마다 침착하게 위기를 극복하며 폭스 자매의 비밀을 향해 다가가고, 제니의 끈질긴 집착은 마침내 안갯속에서 좀처럼 드러나지 않던 폭스 자매의 조금은 허무한 비밀을 밝혀내기에 이른다.

점잖은 종교활동으로 중무장한 교회는 그들의 신자들을 빼앗으며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폭스 자매의 심령술에 대한 비밀을 밝히기 위해 거액을 내걸고 탐정까지 고용한 걸 보면, 자신들의 권력을 잃고 싶지 않은 집단은 자신들의 세력에 반하는 이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 일상인가 보다.

마술사와 탐정회사의 비밀 요원을 오가는 제니의 당찬 성장기가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더불어 핑커턴 요원 제니의 활동 사이사이 등장하는 마술에 심취했던 제니의 아버지 구스타프 마턴의 마술사의 길과 완벽한 요원을 키우기 위한 앨런 핑커턴의 핑커턴 지침서가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며 제니가 핑커턴 요원으로 쑥쑥 성장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해준다.

[ 네이버카페 몽실북클럽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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