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사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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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 로맨스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책을 읽기 시작하지만 마지막 장을 읽을 때즈음 시대를 앞서간 작품이라는 한 문장이 오롯이 이해되는 작품이다. 600여 페이지가 절데 길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역시 엄지척하게 되는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이다!

완전한 남자도, 완전한 여자도 없는 뫼비우스의 띠 그어디쯤에 서 있는 불완전한 인간의 심리가 심리스릴러처럼 얽혀있다. 여성과 남성을 나누는 생물학적 개념을 넘어 논쟁이 되고 있는 사회적 성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근간에 시작된 논쟁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근래에 들어 활발하게, 적극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소재를 1999년, 지금으로부터 23년 전 이렇게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는 점 또한 놀라울 따름이다.

같은 듯 다른 의미를 품고 있는 짝사랑과 외사랑. 마음을 감추고 있는 짝사랑과 달리, 마음을 들킨 채 사랑을 이어가는 외사랑의 힘겨운 마음으로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이들을 대변한다. 시대를 앞서간 타고난 이야기꾼 히가시노 게이고의 젠더는 대표적인 남성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미식축구 포지션과 살인사건을 연결한 흥미로운 미스터리 속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매년 11월 세 번째 금요일이면 대학시절을 함께 보낸 데이토대학 미식축구팀 친구들이 모여 한 해를 마무리하곤 한다. 해가 갈수록 참석하는 친구들이 줄어들고, 함께하는 시간이 짧아지고 있지만 11월 세 번째 금요일은 여전히 화양연화 같았던 그 시절을 추억하는 소중한 자리다.

대학 졸업을 앞둔 리그전 마지막 경기, 전설의 쿼터백 데쓰로의 어이없는 패스 미스로 우승을 놓친 실수를 안주 삼아 이어지던 동장회를 끝내고 집으로 가던 중 데쓰로는 미식축구팀의 매니저로 있었던 미쓰키를 만나고 함께 집으로 간 그는 미식축구 동창이자 아내인 리사코와 함께 미쓰키의 오랜 비밀과 마주하게 된다. 미쓰키와의 사이에 말 못 할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탓에 몹시 혼란스러운 데쓰로에게 미쓰키는 또다시 충격적인 사실을 고백하고,,,

"하지만 같이 생활하다 보니 미쓰키의 외모는 상관없다는 것을 깨달았어. 미쓰키의 애정을 절절하게 느꼈어. 그 사랑을 받으며 사는 게 정말 행복했어. 당신은 마음이 여자고 레즈비언이 아니면 남자의 육체를 가진 사람만 사랑하리라 생각하나 본데, 마음은 역시 마음에 반응해. 여자인 내 마음은 미쓰키의 남자 마음에 호응했지. 중요한 것은 마음을 여는 거야. 형태는 상관없어." (p.401)

생물학적 성이 아닌 사회적 성이라 분류되는 제3의, 제4의 성은 틀림이 아닌 다름을 지녔음에도 스스로를 들어내지 못하고 숨어있다. 그저 살기 위해 몸부림 지치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을 감춰주기 위해 나카오가 대신한 선택이 최선일지도 모르겠다. 권태로운 부부 앞에 나타난 아내를 사랑하는 여자의 몸을 가진 남자, 남자의 마음을 가진 엄마, 두 개의 성을 한 몸에 지닌 반음양인까지,,, 남성과 여성으로만 구분되던 '성'은 그간의 고정관념을 비웃는 것처럼, 지금껏 생각지도 못했던 비밀이 되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동전의 앞과 뒤가 아닌, 손바닥의 앞과 뒤가 아닌 뫼비우스의 띠로 이어지는 양면이 되어 모두를 흔들어 놓는다.

"10여 년 넘게 품은 짝사랑. 정말 맞는 말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은 자신이 뫼비우스의 띠 위에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짝사랑을 계속하고 있다." (p.697)

서너 달 전 드래그 아티스트 모지민을 다룬 독립영화 '모어'를 봤었다. 발레리노가 아닌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던 남자의 이야기. 자신을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못한 존재지만 인간으로서의 끼를 부리고 싶다고 말하던 그의 독백을 이해하면서도 '만약 나에게 벌어진 일이었다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영화였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외사랑 또한 그들의 선택이 어쩔 수 없는, 살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마음으로 이해하지만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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