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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시간 - 13년의 별거를 졸업하고 은퇴한 아내의 집에서 다시 동거를 시작합니다
이안수 지음 / 남해의봄날 / 2021년 11월
평점 :
전몽각 선생의 <윤미네 집>과 컨셉이 닮은 이 책은 초점이 딸이 아닌 ‘아내’에게 맞춰졌다는 점에서 더욱 내 흥미를 끌었다.
그리고 이런 책은 필연적으로 내 남편을 비교하게 만.든.다…
나의 남편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내 사진을 찍는 일에 별로 흥미가 없고, 찍는다고 해도 안티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싶은 것들만 내놓아서, 꽤 오랫동안 나에게 원망과 욕을 들어야 했다.
한 때 나는 이 놈의 사진 때문에 나를 향한 그의 사랑을 진지하게 의심했다. 연정훈 같은 남편을 기대했나보다.
사진 때문에 어디 여행만 갔다하면 한 번은 꼭 싸움이 났다. 나의 일방적인 분노 폭발이었다는 게 더 맞는 말이지만.
오랜 훈련 끝에 그는 이제 인물 사진을 제법 잘 찍게 되었고, 이제는 어딜 가든 부탁하지 않아도 알아서, 먼저, 사진을 찍는 수준이 되었지만 이 책의 저자인 이안수 님 같은 열정은 물론 없다.
그런데도 애쓰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 이제는 내 쪽에서 먼저 멋쩍은 웃음이 나온다. 정말로 그는 그저 사진에 관심이 없는 1인일 뿐인데. 자신이 찍히는 것은 물론이고, 찍는 일도 관심이 없는 사람일 뿐인데…
인플루언서인 남편의 사진을 매일 찍는 게 힘들다고 호소하는 여자를 만난 적이 있다. 한 방 먹은 느낌이 지금도 기억난다.
남편은 나에게 왜 자기 사진을 안 찍냐고 투정부린 적이 없다. 그런 걸로 자신을 향한 내 사랑을 의심한 적도 없고. 이걸 깨닫는데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했다니…!
이 책을 읽는 내내 부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나는 <남편의 시간>을 기록할 자신이 없다. 그러니 그에게도 그런 걸 요구할 수 없다. 설사 내게 그럴 능력과 의지가 있다고 해도, 그에게 똑같은 걸 강요할 수는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이 아름다운 책은 긴 세월을 같이 살면서 또한 서로의 시간을 살아간 부부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 내용 자체도 재미있고 감동적이지만, 어쩌면 그걸 거울삼아 나의 결혼생활을 돌아보고, 또 내다보게 하는데 더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