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가 날 대신해 소설, 잇다 5
김명순.박민정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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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사람들>

최씨가문의 네 남매의 이야기로 정혼자가 있는 사회주의자 정택과 사랑의 도피를 했다가 그곳에서 또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 돌아온 순희, 어릴 적 할머니의 뜻으로 조혼하였으나 청국의 왕녀인 순영에게 마음이 가는 순철의 이야기가 주로 그려진다.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고 고통받는 이들의 모습이다.

 

김명순의 소설 <외로운 사람들>은 독일의 극작가 하우푸트만의 희곡<외로운 사람들>에 형상화된 불행한 결혼으로 야기된 비극적이고 절망적인 가정생활로 고통받는 인간 내면의 심리적 갈등을 문화번역했다고 한다. 조혼제도가 가져오는 결혼의 문제가 남녀 모두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외로운 사람들>에서 순철이 내뱉는 -조혼의 페여.’라는 부분에서 당시 젊은이들이 생각을 들여다보게 된다.

 

책에 실린 3편의 소설이 김명순의 이야기이기도 당대를 살았던 여성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소설은 흥미롭다. 자유롭게 사랑하지 못했던 당시의 모습을 여러 소설에서 보여주었던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적 문제였음을 작가는 계속 외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천사가 날 대신해>

의 오랜 친구인 세윤이 죽었다. 불행했던 결혼생활을 끝내고 새로운 직장생활을 하며 나와 ‘JLPT’시험을 준비 중이었다. 갑자기 날아든 친구의 부고에 충격을 받고 친구의 생활을 들여다본다. 세윤의 직장에는 나의 대학 후배였고 껄끄러운 사이였던 로사가 있었다. 나는 새로운 직장에서 잘 적응하려던 세윤이 로사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의심을 하게 된다.

 

무엇이 세윤을 죽음으로 몰아갔던 것일까 궁금한데 작가는 끝내 명쾌한 답을 주지 않고 질문한다. 범인, 이유, 원인은 하나가 아니고 그 답은 우리 안에 있음을. 김명순의 소설 속 여성과 현대 지금의 여성의 모습이 닮았음과 또 다름을 <소설, 잇다> 시리즈를 통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그때의 공포와 지금의 공포는 과연 어떻게 다른가. 우리는 매번 새로운 공포에 맞닿아 있는데 이것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이야기 나눠보고 싶게 한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에선 선역도 악역도 여자야. 우리가 남자들이랑 깊은 관계 맺을 일 있어? 너나 나나 조심해야 하는 건 이제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고.”(p.292)

 

술술 읽히는 소설들은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 여성의 삶을 들여다보고 함께 나눌 것들이 많음을 다시 인지시켜 준다. 해설이 없었다면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읽은 이들과 대화하고 싶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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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아가 들려주는 이토록 아름다운 권정생 이야기
정지아 지음, 박정은 그림 / 마이디어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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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고달프다는 것을, 가난이 사람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는 것인가를, 정생은 그 누구보다 뼈져린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가난해도 아름답게 살고 싶었다. 자기 몸을 떼어 가난한 사람을 도운 저 행복한 왕자처럼. (p.80)

 

동화작가 권정생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굶주리고, 가족과 이별하고, 해방된 나라에서는 폐결핵에 걸려 평생을 고통받으며 살았다. 그러나 그는 어려운 삶 속에서 항상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 희망은 바로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가난이 주는 것들을 겪어내면서도 대가 없는 다정한 손길들이 그를 살게 했고 그는 그것을 평생에 걸쳐 아이들을 위한 동화로 세상을 따스하게 했다.

 

정생의 머릿속에는 오만가지 이야기가 거미줄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고구마 가게에서 남들을 속이고 있을 때 물건값을 주지 않았다며 기어이 돈을 주고 갔던 순박한 시골 아주머니며, 나무를 닮았다는 목생이 형이며, 주인에게 늘 맞고 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도쿄 혼마치의 경순 누나며, 지금까지 만난 숱한 사람들이 정생의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났다. (p.87)

 

정생은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몸이 아무리 힘들어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동안 헤매고 다닌 세상과 거기서 만난 사람들이 정생의 마음속에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었다. 돈 오십 원과 고구마 몇 개에 몇 번이고 머리를 조아리던 문둥이 청년, 열흘 동안 매일 아침 찾아갔지만 한 번도 얼굴 찌푸리지 않고 깡통에 밥을 꾹꾹 눌러 담아 준 점촌의 자그마한 식당 아주머니, 가로수 밑에 쓰러져 있을 때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헐레벌떡 달려와 먹여준 할머니, 뱃삯도 안 받고 강을 건네준 뱃사공, 자기가 빌어 온 밥을 기꺼이 먹여 준 외팔이 사내, 그 고마운 사람들이 외롭디외로운 정생의 마음속에서 등불인 양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pp.119~120)

 

권정생의 머릿속, 가슴 깊은 곳에 함께 하는 이들이 그를 일으켜 세우고 또 손잡아 주었던 것일까.

 

받은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 그것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는 것, 그리고 받은 그것을 진심으로 행하는 것. 자신의 슬픔에 매몰되지 않고 더 슬픈 것을 바라보며 깊이 아파하고 다정한 손길을 내밀어주는 아름다운 사람 권정생의 일생을 읽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책을 덮으면 나는 또 잊고 나를 위해 살아갈 테지만 지금 이 순간 뜨거워진 감정을 기억하고 싶다. 그 감정을 기억함으로써 다시금 정생을 떠올리는 시간을 가져야 하기에. 작은 시간들이 쌓여 결국 더 넓고 깊은 마음으로 갈 수 있는 첫 발걸음이 되길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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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국가의 배신 - 김학의 사건이 예고한 파국, 검찰정권은 공정과 상식을 어떻게 무너뜨리는가
이춘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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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자기 조직에 대한 도전을 응징하는 방식은 매우 독특하다. 합리적 토론은 아예 배제하고, 상대를 문제아조직 부적응자로 만들어 따돌림을 당하게 만든다 이런 방식으로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상대는 악마화하여 척결해야 할 대상으로 만든다. (p.127)

 

지금 우리는 어떤 정권에서 살고 있을까. ‘촛불 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권이 촛불 정신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데 대한 실망감이 크게 작용해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을 일삼는 검찰 국가를 맞게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공정과 상식을 앞세운 정부는 전혀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아 우리나라는 눈 떠보니 후진국으로 가고 있다고.

 

김학의 사건을 통해 검찰과 정치 권력의 관계와 다양한 정치적 이해관계들의 개입을 세세하고 꼼꼼하게 저자는 보여준다. 검찰의 제 식구 챙기기에 억지 수사, 듣도 보도 못한 식의 어거지 논리로 검찰 국가를 지나 검찰 공화국으로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검찰은 윤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언론은 마구잡이로 수사하고, 전 정권 인사들에게는 보복 수사,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사 조작 사건’, ‘김건희 명품백 수수의혹 등에는 꿈적하지도 않는다. 공정과 상식이 무너진 나라, 우리나라의 현주소이다. 시민들을 바보로 아는지 정말 답답하기 그지없다.

 

민주화를 위한 뜨거운 운동들이 있었던 우리나라가 다시 무서운 시대로 돌아가지 않도록. 민주주의를 향한 꺽이지 않는 마음을 다시 되새겨 봐야 할 때이다.

 

저자는 기자 정신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사건을 기록하고자 책을 썼다고 한다. 너무나도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hanibook 한겨레출판의 하니포터8기로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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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딜과 신자유주의 - 새로운 정치 질서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Philos 시리즈 28
게리 거스틀 지음, 홍기빈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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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인종, 계급 등을 중심으로 미국의 정치와 사회의 구조를 해명하는 작업을 오랫동안 해 오던 저자는 정치질서라는 독특한 개념을 통해 반세기에 가까운 기간 동안 미국 사회 전체를 지배한 정치경제 및 문화적 질서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해명하는 방법론을 이제 신자유주의 질서의 흥망이라는 주제로 옮겨 확장했다.

 

평소 알던 신자유주의라는 것은 시장이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 정도였는데, 뉴딜 질서의 흥망부터 신자유주의의 흥망까지 역사적으로 공부해볼 수 있는 책이다. 다소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오랜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읽어봄으로써 한 나라의 정치경제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또한 그것이 세계 질서에 미친 영향까지도 볼 수 있어 한 권의 역사책을 보는 느낌이었다. 또한, 새로운 정치 질서가 탄생하는 과정들에 있어 모든 것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신자유주의가 없어진 지금 세계를 움직일 새로운 정치 질서가 나타날 것인가에 대한 저자의 질문이 묵직하게 기억된다.

 

신자유주의를 정치 질서로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이 궁금하다면 꼭 일독해 보기를 권한다. 독서모임에서 진행했던 <도넛 경제학/케이트 레이워스 지음.홍기빈 옮김/학고재 >을 흥미롭게 읽었기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2020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바이든 후보가 승리한 직후에 역자는 트럼프는 4년 후에 반드시 돌아온다고 예언한 바 있었다. 올해 정말로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미국의 권위주의 정치의 시작이자 미국식 대의 민주주의의 종말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미국 내의 정치 변동을 넘어서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의 후퇴와 극우파 권위주의 체제의 확장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역자는 우려한다. 이러한 내일을 원하지 않는 이들은 이 책을 읽어보시길.

 

@21_arte 아르테출판사의 북서퍼2기로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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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두고 온 100가지 유실물 - 아날로그 시대의 일상과 낭만
패멀라 폴 지음, 이다혜 옮김 / 생각의힘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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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기억하기>

우리가 어렸을 때, 모든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전화기의 번호판을 돌릴 수 있었다. 엄마 사무실, 소아과 의사. 학교. 좋아하는 피자집. 물론, 이제 우리가 아는 전화번호는 없다. 내 말은, 기억하는 번호가 없다. 내 전화번호는 물론이고 아이들의 전화번호도 거의 알지 못하며, 심지어 두 아이에게 각자의 전화번호가 있다는 사실조차 믿을 수 없다. (p.134)

 

나는 우리 가족의 주민 번호, 계좌 번호, 각종 온라인 비번 등을 외운다. 심지어 카드번호도 외워서 쓰던 때가 있었다. 자주 사용하다 보니 외워진 것. 그러나 지금은 둘째의 전화번호가 우리 가족의 연번이 아니라서 외우지 못한다. 휴대폰에 즐겨찾기로 되어 있으니 굳이 기록하거나 외울 필요를 못 느꼈다. 그런데 아이를 생각하면서 외워보고 싶어졌다. 한자 한자 꾹꾹 눌러 전화해 보고 싶어진다. 그러면 목소리를 듣고 싶은 내 진심이 더 가닿지 않을까.


<도서관 서지 카드>

해독 불가능한 일련의 숫자와 우스꽝스러운 줄거리 요약으로 이루어진 도서관 서지 카드는 필요한 책을 찾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길을 잃기도 했다. (...)

도서관에 가서 서지 카드를 살펴본 다음 책더미에 들어가 책이 실제로 있는지 확인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온라인으로 책을 예약하고 대기자 명단에 이름이 올라갈 때 이메일 알림을 박는다. 원하는 책을 찾지 못할 수도 있지만 더 좋은 책을 찾을 수도 있었던 서가에서의 모험을 더는 할 수 없다. (p.265)

 

고등학교 시절 학교 지하에 엄청 큰 도서관이 있었다. 그곳으로 숨어들어 다양한 책들을 구경하던 때가 생각난다. 그러다가 만난 영웅문, 태백산맥 등 한창 공부해야 할 때 소설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왜 할리퀸이 아니라 무협지와 대하소설에 빠져 있었을까. 그곳에서 나는 무심코 펼쳐 든 책에 빠졌고 지금도 그때 그 공간에서 읽었던 책을 잊지 못한다. 소중한 기억. 이것도 저장.

 

끊임없이 연결된 지금, 끊임없이 연결된 세상에서 우리는 연락이 끊기거나 물리적, 정서적으로 멀어질 수 없다. (p.319)

 

촘촘히 연결된 지금, 오히려 혼자 있기가 더 어렵다. 헬스장에 들어갈 때부터 앱으로 출석 체크하고, 스마트워치를 차고 운동을 하며 매 순간 심박수를 재고 몇 칼로리를 소모하는지 얼마나 걷는지 나는 공유된다. 운동하고 나오면서 사는 음료나 음식들은 카드로 계산되니 또 나의 데이터는 공유되고 집으로 걸어오는 길조차 GPS에 연결되어 나의 길은 공유된다. 지금도 이렇게 리뷰를 쓰고 SNS에 올리는 순간 또 공유되겠지.

 

오프라인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시간뿐이 아닌 온라인에서 만난 이들과의 만남도 나는 기록하고 싶다. 책으로 만나서 서로의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성장하고 치유되고 웃음 짓고 눈물이 나기도 한다.

 

매 순간을 기억하는 것.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이 책은 기억의 소중함을 내게 말해준다. 잠시 휴대폰을 내려놓고 눈을 맞추는 시간도 소중하고 온라인상에서의 만남도 소중한 것이 지금의 시대이다. 내 소중함을 차근차근 쌓아가는 기쁨을 나는 즐길 테다. 그러다가 잠시 옛 기억에 소환되기도 하겠지만 지금이 하루만 지나도 그리워질 터이니 지금을 더 소중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하루 기록하고 또 기록하려면 많이 바빠지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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