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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면 유쾌한 할머니가 되겠어 - 트랜스젠더 박에디 이야기
박에디 지음, 최예훈 감수 / 창비 / 2023년 6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3/0709/pimg_7158381403924637.jpg)
잘하면 유쾌한 할머니가 되겠어/박에디/창비
무엇보다도 이 자신감은 트랜스젠터의 길을 걷겠다고 온열이가 에디가 된 순간부터 생겨났던 것 같다. 나의 삶을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는 성소수자들을 주변에 많이 두기 시작하면서 내 삶에는 어느덧 든든한 울타리가 생겼다. (중략) 삶의 굳은살이 생긴 지금은 안다.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걸. 지금의 나에게는 내 정체성에 대한 자긍심이 있다. (p.59)
나는 성소수자 커뮤니티 안에서도 너무나 많은 혐오의 말을 들었고, 그 말들을 내면화했다. 세상이 너희는 혐오스런 존재라고 지속적으로 가스라이팅을 했기 때문일까.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안의 자기혐오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p.141)
트렌스젠더의 우울증 문제를 호르몬의 부작용으로만 치부하다니. 사실은 트랜스젠더를 혐오하는 세상이 더 문제인 것 아닌가? 세상에 대고 혐오를 멈추라고 외쳐야 하는 게 맞지 않나? (p.143)
온전한 나로 살기 위해선 사회가 내게 강요하는 것을 의심하고 거부할 줄 알아야 한다. (p.150)
“무엇이 가장 불편하세요?”
일단 내 몸과 계속해서 싸우고 있고, 내가 표현하는 성별과 주민등록상의 성별이 일치하지 않아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분을 확인받아야 하는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남들보다 더 많은 설명을 해야 하고, 의료진단서를 갖고 다니면서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일이 힘겹다. 덧붙여 나의 존재를 혐오하는 이들과 마주칠까 봐 늘 일상에서 긴장감을 느끼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러시군요. 어려우실 것 같습니다. ”(p.211)
내게 잘사는 삶의 기준은 늘 최저 수준으로 잡혀있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잘 살고 있다는 것. 너무나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남들이 찾으라는 보물 말고 내가 정한 보물을 찾는 게 더 의미 있다. 나는 앞으로도 삶에서 찾은 반짝이는 보물을 사람들 앞에 자긍을 담아, 애정을 담아 자랑하며 살아갈 것이다. (p235)
나이가 들어 꼬부랑 할머니 트랜스젠더가 된다면 어떨까. ‘라떼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삶, 그러니까 일종의 ‘증언자’가 되어 보고 싶다. ‘옛날옛날에~트랜스젠더들이 화장실도 못 갔던 시절에~’로 말문을 열거나 ‘그땐 진단서를 꼭 받아야 호르몬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니까요’ ‘수술을 안 하면 성별정정도 안해주던 시대였어요’‘트랜스젠더란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되거나 가정폭력을 당하는 사람도 있었죠’라고, 내가 호들갑스럽게 옛날이야기를 늘어놓으면 사람들이 ‘정말 그런 때도 있었어요?’라며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봐주면 좋겠다. 내가 바라는 미래는 이런 일들을 겪지 않아도 되는 희망찬 미래니까. 모질고 답답한 삶의 여정이 역사의 한줄로만 읽히는 날이 온다면 나이 듦도 나쁘지 않겠지. (p240)
우리는 우리의 안전과 당연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시끄럽게 소란을 피우며 견뎌야 한다. (p241)
3색5선의 트랜스젠더 커뮤니티를 상징하는 깃발을 모티브로 책은 옆면에서 보았을 때 그 깃발의 모습을 하고 있다. 남들과 다른 나를 인식하고 끊임없이 ‘나’로 나아가는 사람 ‘박에디’의 이야기. 성별 고민을 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공익활동가로서, 트랜스젠더 당사자로서 에디의 이야기는 거침없이 솔직하다. 우울하고 방황하는 모습, 정체성의 혼란, 사회의 따가운 시선, 가족 안에서의 커밍아웃, 든든한 공동체를 만들고 트랜스젠더로 수술하기는 이야기까지.
트랜스젠더로 사회의 날카로운 시선과 혐오 속에서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현재 진행형 성장드라마이기도 한 에디의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에디와 앨리스>로 제작되고 있다고 하니 곧 극장에서 만날 에디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우리는 우리의 안전과 당연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시끄럽게 소란을 피우며 견뎌야 한다.’는 에디의 표현이 마음에 콕 와 닿았다. 사회가 규범 지어 놓은 것이 아니면 정상성을 부여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여기에서 우리는 소란을 피우고 끝없이 항의하고 견딘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옛날에는 말이야~’ 하면서 얘기 하는 유쾌한 라떼 할머니 에디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창비출판사로부터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간혹 사람들은 나에게 이렇게 사는 게 너무 힘들지 않느냐고 묻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인생은 언제나 미래가 두려운 삶이다. 참고할 수 있는 롤모델도 거의 없고,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내가 처음으로 이 길을 걷는 사람이 된 것만 같다.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열심히 둥글둥글하게 살면 괜찮겠지 싶다가도, 그게 마냥 쉽지만은 않다. 트랜스젠더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는 칼날처럼 날카로우면서도 한없이 가볍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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