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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막걸리 이야기 - 살림지식총서 436 ㅣ 살림지식총서 436
정은숙 지음 / 살림 / 2012년 10월
평점 :

소주, 맥주에 이어 막걸리에 대한 이야기를 만났다. 같은 술이라 하더라도 어쩐지 소주와 맥주 보다 급이 떨어지는 듯 여겨졌던 막걸리가 사실은 소주, 맥주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막걸리에는 이런 사연이 숨겨져 있었구나 싶어서 신기하기도 했다. 사실 막걸리를 좋아하는 편이긴 하다. 물론 처음부터 좋아했던 건 아니다. 어느날부터인지 막걸리가 인기를 얻어 여러 막걸리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국순당에서 내놓은 '아이싱'이라는 막걸리를 캠핑 갔다가 처음 마셔본 이후 종종 맥주 대신 막걸리를 찾곤 했다. 칵테일 술처럼 달달한 맛의 막걸리가 내 입맛에 맞았던 것이다. 막걸리는 삼국 시대 이전 곡물농사가 이루어진 시기에 빚어졌을 거라는 추측이 있다고 한다. 긴 세월의 흐름만큼 막걸리를 부르는 별칭도 참 많았다. 탁주, 탁료, 백주, 박주, 재주, 회주, 삼도주, 농주, 국주, 서민주, 막걸레, 젓내기술, 뻑뻑주, 탁바리 등등. 그만큼 사랑을 받았다는 의미일 터였다.
술이 만들어내는 알코올 발효 과정, 즉 미생물들의 향연을 알지 못한 그들은 '물에서 난데없이 불이 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이 초자연적인 현상을 '수불(물을 의미하는 한자어 '수'에 '불'을 합성)'이라 하였다. 우리가 하루에도 몇번씩 쓰는 '술'이라는 말이 바로 이 수불에서 수울→수을→술로 변화되어 만들어졌다는 설도 있다. - P. 4
지금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술'이라는 말은 어쩌면 막걸리 탄생한 말인지도 모른다고 한다. 물에서 불이난다고 수불이라니. 어쩐지 귀여운 표현이라 슬쩍 웃음이 나왔다.
즉, 막걸리란 도수를 낮추고 양을 늘리기 위해 익은 술덧에 또는 청주를 뜬 후 남은 지게미에 물을 넣어가며 체에 거른 술이다. 일반적으로 탁주와 막걸리는 같은 의미로 혼용되나 탁주가 막걸리보다 범주가 더 넓다. 막걸리는 탁주류의 하나로 물을 쳐 가며 거른 술로 설명할 수 있다. 맑게 고인 술을 조심스레 뜨는 청주와 비교하면 투박하고 거침이 없다. 이름 또한 있는 그대로 '막(마구/거칠게)'+거르다' 하여 막걸리가 되었다. - P. 5
막 걸렀다고 해서 막걸리라니. 이름이 왜 막걸리인지 생각해본 적이 없긴 했지만, 이렇게 별다른 뜻이 없었을 줄이야. ^^;; 게다가 신기하게도 술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면 동동주, 탁주, 청주, 소주가 한 항아리에서 탄생함을 알 수 있단다. 같은 항아리에서 태어났다지만, 청주는 양반 또는 행사 좀 하는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술이었고 탁주(막걸리)는 상대적으로 농민들이 들일을 할 때나 점심이나 새참에 마시던 술이었다는 점은 다르지만.
막걸리를 가리켜 '오덕삼반의 술'이라 칭송을 하는데, 오덕이라 함은 하나, 취하되 인사불성일 만큼 취하지 않는다. 둘, 출출할 때 마시면 요기가 된다. 셋, 힘이 빠졌을 때 마시면 기운을 돋는다. 넷, 마시면서 넌지시 웃으면 안 되던 일도 된다. 다섯, 더불어 마시면 응어리진 앙금이 풀린다는 말이다.
삼반이라 함은 첫째 반유한적으로 근로지향적이다. 놀고먹는 사람이 막걸리를 마시면 배만 부르고 고약한 트림과 숙취를 부른다. 농주 또는 노동주라 불리는 막걸리가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의 술이라는 점을 강조함이다. 둘째, 반귀족적으로 서민지향적이다. 막걸리는 큰 사발에 넘실넘실 부어 마신다. 서양의 맥주와 같이 어떤 격식 없이 누구나 편히 마실 수 있는 대중성과 보편성을 갖는 서민적 정취를 강조합이다. 셋째, 반계급적으로 평등지향적이다. 막걸리는 계급의 잣대를 대지 않는다. 술잔의 크기만큼 대인의 기풍이 있어 모든 것을 아우른다. 군관민이 참여하는 제사나 대사 때 큰 바가지에 술을 담아 일심동체를 다질 때 돌려 마신 술이 바로 막걸리다. 이는 평등지향의 술임을 강조합니다. - P. 10~11
캬. 진짜 막걸리에 이런 의미가 숨어있었던가! 멋지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술을 빚었고, 각기 다른 술맛은 그 집의 자랑이기도 했단다. 하지만 돈에 눈이 먼 일제가 술 빚는 일에 법적 기준을 세우고 세금을 매기고 면허제를 실시하면서 점차 술을 빚는 집이 줄어들었고, 그렇게 조상대대로 가문마다 집집마다 내려오던 다양한 가양주 문화가 양조장 중심의 술 문화로 바뀌게 된 것이라고 한다. 만일.. 일제만 아니었더라면 우리나라는 지금도 대대로 전해내려오는 다양한 맛의 전통주를 맛볼 수 있지 않았을까? 또한 그 전통주들은 세계로 뻗어나갔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일제에 의해 무너진 우리의 문화가 얼마나 많은지.. 그저 통탄할 일이다.
막걸리 전성시대인 1960~1970년대에는 밀가루 막걸리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수요가 많으니 제대로 발효, 숙성시키지 않은 불량 막걸리가 시중에 많이 나돌았다. 그래서 밀막걸리를 마시고 나면 머리가 아프고 숙취로 고생한다는 말이 퍼지기 시작했고, 밀막걸리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만들어냈다. - P. 33
앗. 막걸리에 대한 편견은 이 때문이었구나.. 가만 생각해보니 난 막걸리로 인해 고생해 본적이 없음에도, 어느새 그 부정적인 편견이 내 머릿속에 고스란히 자리를 잡고 있었더랬다. 알고보면 막걸리 때문이 아니라 다양한 술을 섞어 마셔서 숙취로 고생하는 것이었을텐데, 그런 얘기만 듣고도 난 왜 막걸리를 그리 생각하고 있었을까? 이런 편견이 한때 막걸리가 대중에게서 멀어지게 만들었던 요인이었던가 보다.
시중에 나와 있는 80% 이상의 막걸리가 단맛을 내기 위해 인공감미료를 첨가하고 있다. 과거에는 사카린나트륨을 첨가해 단맛을 냈다. 그러다 사카린의 유해성이 대두하자 1990년대 사카린나트륨 사용이 금지된다. 이후 아스파탐(aspartame)이 막걸리의 인공감미료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 아스파탐은 페닐알라닌과 아스파르트산을 합성해 만든 인공감미료로 1982년 일본의 합성감미료 제조업체인 <아지노모토>가 개발했는데 단맛이 설탕의 200배에 이르는 감미료다. - P. 38
소주에도 사카린나트륨의 감미료가 첨가되었었다더니, 막걸리에도 단맛을 내는 감미료가 첨가되는구나..!! 그렇다면, 난 그 감미료의 맛에 중독되어 있는건가? 감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막걸리는 어떤 맛일까? 어쩐지.. 내 입맛에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들긴 하지만, 그 맛이 궁금하다. 아직 지역마다 많은 양조장이 있고, 맛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 지역마다 특성있는 막걸리가 생산되고 있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다. 언젠가 우리의 막걸리가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옛날처럼 집집마다는 아니더라도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주가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