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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이야기 - 이슬과 불과 땀의 술 ㅣ 살림지식총서 533
이지형 지음 / 살림 / 2015년 10월
평점 :
평소 술과 썩 친하지 못한 내가 이번에 살림지식총서로 만난 책이 '소주 이야기'다. 소주..로도 이야기가 되나?! 소주와 관련된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신기하고 궁금했다. 그리고 역시나. 이번에도 은근 재미지게 읽었다. 소주에 이런 숨은 이야기가 있었구나 싶어서 진정 흥미진진 했더랬다. 이래서 아는게 힘이라고 하는건가? 소주에 대해 알고나니 새삼 소주가 다른 시각으로 봐진다. 그렇다고 소주를 마시고 싶다는 건 아니지만. (예전에 소주 한병 마시고 병원에 실려간 일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난 알코올 분해 능력이 떨어진단다. =-=;; 의사에게 술 마시지 말라는 구박을 받고 아무것도 먹지 못한채 2박 3일을 입원해 있었던 일이 있었더랬다. 그 뒤로 술 종류를 입에 잘 안대는 편이다. 근데.. 이상. 분명 그 전엔 어느정도 술을 마실 줄 알았는데..; 어째서 그땐 괜찮았을까? 암튼간에 나랑 술은 안 맞는 걸로.)
조선시대에 소주를 표기한 한자는 모두 '燒酒(소주)'였다. 그러나 요즘 술집에서 주문하는 '이슬'이나 '처음' 류(類)의 소주병에는 '燒酒' 아닌 '燒酎(소주)'라고 쓰여 있다. 물론 '酒(주)'나 '酎(주)' 모두 술이라는 뜻이지만, 어쨌든 다른 한자다. 요컨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소주의 표기는 '燒酎'이고, 요즘 우리가 알고 있는 소주의 표기는 '燒酎'인 것이다. 이걸 가지고 진짜/가짜에 관한 소모적인 논쟁은 애당초 불가능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燒酎'를 사칭한 적이 없는데, 무슨 진짜/가짜 얘기를 꺼내는가? 뭐, 이런 얘기가 되겠다. - P. 13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우리가 흔히 보고 마시는 그 소주가 실은 '가짜'란다. 이런 황당한 말이 어디있나?! 싶어서 읽다보니.. 일리가 있다. 예전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지는데다가 원재료도 다르다. 그렇다보니 본래의 전통방식으로 만든 소주와 지금의 소주는 확연히 다르다. 가짜 소주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었더랬다.
그러니까 소주, 아니 희석식 소주는 녹말이나 당분이 포함된 재료(그게 무엇이든 관계없다)를 발효시켜 만든 강력 알코올(대개 95퍼센트)에 물을 들이부은 뒤 다시 감미료를 넣어 만든 소주 맛의 술이다. - P. 18
주정은 화학적으로 말하면 에틸찰코올이다. 에탄올이라고도 부르는 에틸알코올은 소주뿐 아니라 모든 술의 핵심이다. 향, 색, 맛과 무관하게 이 세상의 모든 술은 에틸알코올 성분으로 사람을 취하게 한다. 사람의 중추신경을 마비시키는 성분은 바로 이 에틸알코올이다. 청주는 15~16퍼센트, 포도주는 7~14퍼센트, 맥주는 3~4퍼센트, 위스키, 브랜디는 35~55퍼센트의 에틸알코올을 함유한다고 한다. - P. 19
주정을 만드는 원재료의 절대 강자는 타피오카다. 동남아시아에서 대량으로 재배되는 작물인데, 지역에 따라 카사바(cassava)라 불리기도 한다. 좀 못생긴 감자라고 보면 된다. 타피오카의 뿌리에서 채취한 식용 전분이 바로 주정의 재료다. 타피오카는 원래 사료 용도로 많이 재배된다. 우리나라 소주업체들은 대개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태국에서 타피오카 칩을 수입해서 사용한다. 21세기 한국 소주의 원류는 그러니까 동남아의 농장 곳곳에서 대규모로 재배된 저가(低價)의 못생긴 감자들인 것이다. - P. 23
옛날 소주 맛은 사카린 맛, 요즘 소주 맛은 스테비오사이드 맛. - P. 26
우리가 그렇게 찾고 마시는 '소주'는 희석식 소주로 못생긴 감자인 타피오카와 소주 맛을 내는 감미료를 통해 만들어진 거였다. 이게 소주였구나.. 알고나니 그저 웃음이 나온다. 소주가 감자로 만들어진 거였다니! 소주를 즐겨 마시는 이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는 '참이슬', 처음처럼'이 익숙하지만 지역마다 대표 소주가 존재한다고 한다. 글고보니 예전에 sns를 통해 몇몇 소주 상표를 보고 신기해 했던 기억이 있다. 실제로 부산에는 '좋은데이'와 '시원블루', 대구, 경북에는 '참소주', 광주, 전남에는 '잎새주', 제주에는 '한라산', 충북의 '시원한 청풍', 대전, 충남의 '린' 등이 지역별 대표 소주라고 한다. 소주 종류와 회사가 이렇게 많다는 것도 난 참 신기했다.
시대가 바뀌어도 거리에는 실망과 낙담을 감추며 힘겨운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그들에게 소주 아니, 소주 맛 술 그러니까 값싼 희석식 소주는 여전히 좋은 동반자다. 삼겹살 집과 감자탕 집에서, 그리고 포장마차에서 샐러리맨과 자영업자와 출구를 모르는 청년들이 희석식 소주 한잔을 앞에 놓고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는다. 고급 양주가 하지 못하는, 전통의 증류식 소주도 하지 못하는 일을 싸구려 희석식 소주는 할 줄 안다. - P. 35
소주와 함께 위안을 얻고, 소주와 함께 힘겨움을 털어놓는.. 서민의 삶에 침투해 동고동락을 해 온 소주. 알코올에 의지하는 것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어쩔땐 소주 한잔이, 알코올이 주는 알딸딸함이 속의 응어리를 풀어주기에 적합할 때가 있음을 안다. 가볍게 읽으며 약간의 상식을 쌓기에 좋았던 이야기. 피식 웃음을 지으며 읽었던 책이다. 소주 때문에 삼겹살의 소비량이 엄청나게 늘어났고, 그 때문에 돼지고기의 10%에 불과한 삼겹살을 얻기 위해 도살을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는 이야기엔 황당한 웃음이 절로 나왔다. 진짜인가?ㅋ 어찌됐든 우리나라에선 삼겸살이 인기인건 맞으니까. 이번에도 재미나게 읽었던 살림지식총서. 이젠 표지와는 상관없이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