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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스톰
매튜 매서 지음, 공보경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현재 현대시설의 기반은 대부분 인터넷이 자리를 잡고 있다. 때문에 이 소설 속 이야기가 그저 가상의 이야기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현실적인 공포가 물밑들이 밀려온다고 해야할까? 인터넷 강국이라 불리는 우리나라 또한 이런 사이버 테러에서 멀리 있다고 보여지지 않는다. 과연 우리는 이런 사태를 대비해 두고 있을까?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우리는 항상 사태가 벌어지고 나서야 교훈을 얻는 터라 심히 걱정이 된다. 이야기는 인간이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인터넷에 의지를 하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것을 다른 이에게 의존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 역시도 많은 부분을 전자기기에 의존하고 있었고, 또 다른 많은 부분을 다른 이들에게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태가 벌어지면 나는 아무것도 못한채 누군가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 때까지 울며 주저앉아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일에 대한 대비를 한다고 식량을 저장하고, 이런저런 물품을 구비해 놓을 건 아니지만, 지금 세상에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전보다 좀더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엔 관심있는 기사만 클릭해서 보고 세상일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더랬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니 내가 세상에 얼마나 무지한지를 알았다.
이야기는 뉴욕 맨해튼에 거주하는 평범한 프로그래머, 마이클과 전쟁 음모론자로 평소 전쟁 대비용품을 준비해놓고 사는 친구 척이 갑작스럽게 닥친 사이버 스톰을 겪는 60여일간의 일을 담고 있다. 마이클은 하버드 명문가 출신의 아내 로렌과 결혼해 아들 루크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렸지만, 때때로 로렌에 대한 마이클의 열등감은 이들 부부 사이에 작은 틈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틈은 추수감사절 이틀간 평소 그를 달갑게 보지 않던 장인과 장모의 방문 이후 더 벌어졌고, 급작스레 변한 로렌의 태도에 마이클은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때, 인터넷이 자꾸 느려지고 멈추고 말썽을 부리더니 갑작스런 대규모 정전 사태까지 일어났다. 대체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고, 믿을 수 없는 갖가지 정보들이 떠돌기 시작하면서 도시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전기, 가스, 수도 등 사회기반시설이 멈추고, 소방서, 경찰서, 병원이 제 기능을 상실한다. 거기에 혹독한 영하의 겨울 추위와 기록적인 눈 폭풍까지 몰아닥치면서 사태는 갈수록 악화되었지만, 정부는 곧 복구된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다행히 마이클 가족은 척의 도움으로 아파트의 사람들과 함께 생존을 이어갔고, 식량문제가 심각해지자 벌어져서는 안되는 일까지 벌어지고 만다. 더이상 아파트가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한 마이클과 척은 일행을 데리고 척이 예전부터 마련해두었던 버지니아 주의 셰넌도어 계곡 근처의 오두막으로 가기로 한다. 그런데.. 콜라라가 창궐했고 이 때문에 워싱턴은 맨해튼에 격리조치를 내린다.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걸 이 책은 잔인하리만치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그렇게해서 살아남은 이들은 세상이 정상화 되었을때.. 여전히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내 가족을 위해, 내 자식을 위해 어떤 일까지 할 수 있는가..! 굶주림이 이렇게 사람을 극단적으로 끌고갈 수 있다는 게 서글프면서도 잔인했다. 무엇보다 총과 탱크같은 첨단무기로 싸우는게 아니라 인터넷의 마비가 함께 살기보다 나와 내 가족만 살기 급급한, 누구도 믿을 수 없고 폭력이 난무하는 이런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무서웠다. 인터넷의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는 지금, 한번쯤 이런 사태를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극사실주의 종말소설인 아토피아 연대기 6부작 중 첫번째 이야기라는 이 책. 앞으로 남은 이야기가 기대되고 궁금하다. 그만큼 폭 빠져서 읽었고, 재미있다. 가독성이 장난아니다. 폭스사에서 영화화까지 준비하고 있다니 영화도 기대를 해봐야할 것 같다. 잘 만들어진다면 진짜 대작이 될 듯한 느낌!! 다음 이야기에는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주인공은 계속 마이클과 척이 되는건지도 궁금. 6부작이 모두 빨리 출간되기를 바래본다.
"넌 인류의 기술이 늘 진보한다고 지나치게 믿는 경향이 있어. 인류가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이래로 기술보다 잃은 기술이 더 많아. 때로는 사회가 진보가 아닌 후퇴를 하기도 해."
"예를 들어서 설명해 봐."
"폼페이 유적에서 우리가 요즘 사용하는 것보다 더 나은 수도관 기술이 발견됐어." 척은 프렌치프라이 더미를 뒤져 반들거리는 푸아그라 덩어리를 집어냈다.
"피라미드 건축 기술도 잊힌 문명의 기술이지."
"이제 고대의우주인에 대한 얘기로 넘어가려고?"
"나 진지하거든. 1405년 명나라의 정화 제독은 쑤저우 항에서 선단을 이끌고 출항했는데, 당시 배의 규모는 요즘의 항공모함과 맞먹고 데려간 부대원들은 3만 명이나 됐어."
"진짜?"
"인터넷을 찾아봐. 루이스와 클라크 탐험대가 사카자위아를 데리고 그곳으로 탐험을 떠나기 사백 년 전에 정화 제독은 서인도 제도에 도착한 거야. 정화 제독이 이끄는 중국인들은 콜롬버스가 미국을 '발견'하기 백 년 전에 현대의 순양 전함보다 더 큰 배를 타고 지금의 오리건 주에 살던 부족의 추장들과 함께 마리화나가 든 담배를 피웠다니까. 콜럼버스가 타고 간 그 유명한 니나 호의 길이가 어느정도였는지 알아?"
"겨우 15미터였어. 콜럼버스가 데려간 탐험대는 50명이었고."
"그래도 배가 세 척 아니었나?"
"요지는 이거야. 우리가 들통 같은 조그만 배를 타고 유럽 대륙에서 노를 저어 힘들게 겨우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기 한참 전에, 중국은 이미 항공모함 급 함대를 탄 3만 명의 탐험대로 지구를 항해했다고."
우린 그때쯤 포크질을 멈췄다.
"핵심이 뭐야? 못 알아듣겠어."
"때로는 사회가 퇴보를 하기도 한다는 거야. 중국과의 이런 관계도 그렇고. 우리가 바보짓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중국은 적이 아니다?"
"중국을 적으로 보는 게 잘못된 관점이라는 거지. 우린 중국을 적으로 대하고 있는데, 그건 우리에게 적이 필요하기 때문이야. 중국은 세계를 지배하려고 하질 않아. 그들이 우리보다 상상도 못할 만큼 강했을 때도 세계 지배는 그들의 목표가 아니었어." P. 48~49
아침에 공복통이 어찌나 심하던지, 눈 더미 속에 묻어둔 식료품을 찾아오겠다며 훤한 대낮에 밖으로 뛰쳐나갈 뻔했다. 척이 그런 나를 붙잡아 진정시켰다. 나는 내가 배고파서가 아니라고, 루크와 로렌과 엘라로즈를 위해서라고 주절거리며, 마약을 손에 넣으려는 마약중독자처럼 굴었다. 웃음이 났다. '나는 음식중독자구나.' 하늘에서 내리는 눈송이들이 최면을 거는 듯했다. 나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어떤게 현실이지? 현실이라는 건 도대체 뭐지?' 환각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정신이 온전하질 않고 자꾸만 다른 곳으로 미끄러졌다. - P. 358
사이버 세상과 실제 세상의 구분은 무의미해지고 있었다. 사이버 폭력은 실제 폭력과 다름없으며 사이버 전쟁도 실제 전쟁이었다. 우리가 사이버를 현실로 받아들이면서 사이버 시대가 제대로 시작되었다. 세상이 달라졌고, 나 역시 크고 작은 방식으로 달라졌다. 이제는 신문에 실린 기사도 다른 시각으로 읽었다. 전처럼 대충 훑어보는 게 아니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려 노력했고 내가 도울 방법이 없는지 알아보려 했다. 늘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의 가치를 깨닫고 제대로 즐기게 되었다. 배불리 먹고 잠자리에 드는 기쁨, 내일 아이들에게 무엇을 먹일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안도감, 안전한 잠자리를 확보한 안정감을 즐겼다. - P. 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