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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도노휴 지음, 유소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은 2008년 오스트리아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을 모티브로 쓴 소설이다. 그 사건이란, 조세프 프리츨이라는 남성이 자신의 친딸 엘리자베스 프리츨을 11살이 되던 해부터 성폭행을 해오다가 그녀가 18세가 되던 1984년부터는 아예 그녀를 납치해 개조된 좁은 지하실에 납치한 후 24년간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한 충격적인 사건이다. 엘리자베스는 성폭행으로 인해 7명의 아이를 낳아야했고, 그 중 한명은 사망했는데 조세프는 그 아이를 지하 보일러실에서 태웠다고 한다. 남은 6명의 아이 중 3명은 엘리자베스가 종교집단에 빠져 낳아서 버리고 간 아이들이라며 부인과 이웃들을 속인 후 조세프에게 입양되어 키워졌다. 이 사건은 엘리자베스의 딸 케르슈틴(19)이 큰병을 앓게되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병원 직원이 의심스러워하며 신고를 했고 그로인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조세프이 아내이자 엘리자베스의 엄마인 로제마리는 엘리자베스가 가출을 한 줄로만 알고 있었을 뿐, 30여년간 전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조세프 프리츨은 224년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그런데 책을 읽고보니 나는 이 사건보다 2009년 미국에서 벌어진 '제이시 두가드' 사건이 더 비슷하다 느껴졌다. 이 사건은 제이시 두가드가 11살이 되던 해 등교길에 필립 가리도에 의해 납치되어 18년간 납치범의 집 뒤뜰 천막에서 갇혀 지내며 두 딸을 낳은 사건이다. 첫 딸을 14세가 되던 해에 출산하고, 그로부터 4년 후 둘째 딸을 출산했는데 11살, 15살이 된 두 딸은 가리도의 집에서 양육되었다고 한다. 병원이나 학교는 한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이 사건은 UC버클리에서 가리도가 제이시와 두 딸과 함께 종교 전단지를 학생들에게 나눠주다가 이를 의심스럽게 생각한 캠퍼스 경찰관이 그의 신원을 조회한 일이 계기가 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더 충격적인 것은 가리도의 아내 낸시 가리도도 이 범죄에 가담했다는 사실이다. 필립 가리도는 431년형을, 부인 낸시는 36년형을 선고 받았다.
조세프 프리츨 사건 이후, 터진 유사한 사건들은 사람들에게 더욱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런 끔찍한 일들은 대체 왜 일어나는 걸까. 더 끔찍한 것은 지금 이시간에도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버젓이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거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감금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딸을 성폭해온 인면수심의 아빠들이 꾸준하게 잡히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가벼운 형벌을 받는다는 것이 문제다. 암튼 이 책은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킨 사건을 모티브로 한데다 내년 영화로 개봉을 앞두고 있어서 궁금했었다. 모티브가 된 사건에 대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가 될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지만, 5살 소년의 시점을 따라 흘러가다보니 예상했던 것과는 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천진난만한 아이의 눈은 사건 자체가 지닌 공포스러움을 완화시켰고 그 덕분에 전체적인 이야기가 예상보다 밝은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가로, 세로 3.5미터의 작은 방에서 태어나 5살이 된 잭에게는 방이 세상의 전부였다. 하지만 엄마에게 방은 끔찍하고 갑갑하기만한 좁은 방일 뿐이었다. 하루하루 잭을 위해, 잭 덕분에 버텨내던 엄마. 잭은 그런 엄마의 마음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엄마를 위해 모험을 해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모험을 멋지게 성공시킨 잭! 엄마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7년동안 많은 것들이 변해있었다.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도 박찬 모자에게 세상의 관심이 엄마와 잭을 더욱 힘들게 했다. 그래서 잭은 다시 방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엄마와 둘이 안전했던, 아무 일도 없을 방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엄마는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도,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고만 한다. 잭에게 세상은 규칙도 너무 많고, 알아야 하고 배워야하는 것도 너무 많고 혼란스럽기만 한 곳이었다. 작았던 세상이 끝없이 넓어졌으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더구나 잭은 5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였으니 말이다.
내가 만일 엄마의 입장이라면, 잭은 내게 어떤 존재가 될까? 한줄기 빛이고 희망이라 느끼게 되는건 더이상 외롭지 않고, 더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 대화를 나눌 온전한 내 편이 생겼다는 것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 내 아이이기 때문일까? 납치범이자 강간범의 아이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기적처럼 구출이 되어 세상에 나와 가족을 만났을 때, 가족들은 잭을 온전히 엄마의 아들로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 어렵다. 어린 나이에 혼자 아이를 낳고 길러야했던 피해자들이 얼마나 큰 고통과 공포에 놓여있었던건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그래서 더욱 그들을 이런 상황에 놓이게 만든 범인들에게 분노가 치솟는다.
가독성은 좋았다. 도톰한 분량이었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읽어나갔다. 다만.. 이야기가 너무 평탄하게 흘러간 느낌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사건이라 할 수 있을 방을 탈출한 사건(책에서는 '대탈출'이라 칭한다.)마저도 그랬다. 약간의 스릴이나 긴장감이 없었다는 점이 아쉬움을 남긴다. 약간의 아쉬움은 있지만 이 책은 한번쯤 읽어봐야할 소설이다. 이런 일들에 대한 경각심과 이웃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필요한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새 잊혀져가던 사건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 것을 보면 작가는 이런 일들이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고 항상 우리 주변 이웃에 관심을 갖자는 메세지를 전하고자한게 아닐까? 그러고보면 요즘은 이웃에 누가 살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나만해도 내 이웃에 어떤 이들이 살고 있는지 잘 모르니.. 이게 사실 정말 문제긴 하다. 도시일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하다. 시리즈로 계속 인기몰이 중인 '응답하라~'를 보면 예전엔 그러지 않았다. 이웃간의 정이 넘치고 넘쳤던 그 시절. 그때만큼만 이웃에 관심을 가진다면 현대사회에 문제점이 되어가는 고독사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는 이도 없을텐데 말이다. 실제 사건의 주인공과 이런 일을 겪어야 했던 이들은 지금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 부디 앞으로는 그들에게 행복한 일들만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더이상 뉴스에서 이런 일들에 대한 소식을 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