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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사판정위원회
방지언.방유정 지음 / 선비와맑음 / 2025년 9월
평점 :

최근 몇년 사이 우리나라의 자랑이던 의료 시스템이 점차 붕괴되어 가고 있음을 많이 느낀다. 실제로 겪은 일도 있지만, 의대생들의 수업거부, 인턴과 레지던트들의 집단 의료행위 거부와 이탈은 충격과 실망을 안겨주었다. 의사로서의 사명감은 없이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움직임으로 보였기에 사람의 생명을 등한시한 그들의 복귀는 바라지 않았다. 그들이 의사가 된다면, 생명을 살리는 의사보다 이익을 쫓는 의사들만 늘어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딱 그런 이들의 미래 모습처럼 보였다. 사람의 생사를 득실을 따져가며 판단하고, 잘못된 일임을 알면서도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 어쩐지 현실 속 어딘가의 병원에서 벌어지고 있을 것 같은 이 이야기가 그래서 읽는내내 소름이 돋았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범인을 밝히며 시작한다. 피해자는 오기태. 가해자는 차상혁. 두 사람의 관계는 스승과 제자였다. 그 관계가 한순간에 무너진건 차상혁의 의료과실 때문이었다. 하필 같은 날, 성만 같고 이름이 같은데다 나이도 비슷한 두 명의 환자가 병원으로 실려왔고, 둘 중 한 명은 뇌사판정위원회의 판정에 의한 뇌사 확정으로 장기 이식 절차가 진행되게 된다. 장기 적출 수술을 코앞에 두고 뇌사판정 대상자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지금까지 이뤄낸 것들을 포기할 수 없었던 차상혁은 자신의 실수를 덮었고 이 사실을 오기태가 알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을 밝히길 바랬던 오기태의 말을 따를 수 없었던 상혁은 뺑소니 사고로 위장해 오기태를 뇌사 상태에 이르게 만든다.
오기태의 뇌사를 판정하기 위해 모인 6명의 뇌사판정위원회 멤버 중 하나로 참석한 차상혁은 오기태의 뇌에서 미세한 징후가 포착된걸 발견하지만 말하지 않았고, 그렇게 뇌사가 확정되는가 했으나 한명이 반대를 하면서 판정이 미뤄진다. 이를 둘러싸고 시작된 각자의 득실 싸움. 정말 소름이었다. 생명 존중은 눈꼽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그들의 싸움이 기가 막히고 황당하면서도 무서웠다. 결말에 다다를 때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메디컬 스릴러 소설, 영화 한편을 보는 것 같았다. 실제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져도 좋을 것 같다. 언젠가 영상으로도 만나볼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