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레스크
쓰무라 기쿠코 지음, 양지윤 옮김 / 빈페이지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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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정의 휴먼 드라마 한편을 감상한 기분. 진짜 오랫만에 이런 소설을 만났다. 은근히 만나기 힘든 소설이라 읽는 동안 페이지 수가 줄어드는게 아까웠다. 읽으면서 오래전에 읽었던 일본소설 <오싱>이 간만에 생각나기도 했다. <오싱>은 한 여자의 일생을 담은 소설이었는데, 고등학생 시절 정말 재미있게 읽고 책도 소장했더랬다. 정리한지 오래되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한번 다시 읽어보고 싶어진다. <오싱>이 한 여자의 일생을 담고 있다면, 이 소설은 두 자매의 50년을 담아내었다. 총 5개의 챕터가 있고, 챕터마다 10년이 담겨있다. 두 자매의 인생이 담긴만큼 등장인물도 꽤 되는 편이다. 잔잔하게 흘러가는 이야기지만, 지루할 틈이 없다. 힐링하는 기분으로, 인생 드라마 한 편을 감상하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었던 소설이다.


리사와 리쓰 자매. 10살 차이가 나는 자매에게 위기가 찾아온건 홀로 그녀들을 키워왔던 엄마에게 남자친구가 생기면서였다. 두 자매를 키우면서 많이 지쳐있었던 엄마는 남자에게 기댔는데, 하필 그 남자친구가 좋은 남자가 아니었다. 엄마는 리사의 대학등록금을 남자의 사업자금으로 쓰는가 하면, 리쓰가 남자에게 혼이나고 집에서 내쫓기는 일이 잦아지는데도 내버려 두었다. 집에서 벗어나고자 아르바이트를 하던 리사는 리쓰가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지 뒤늦게 알게 되었고,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온다. 이때 리사의 나이가 18세, 리쓰의 나이가 8살이었다. 숙식을 제공한다는 한 소바 가게를 찾아간 리사는 이곳에서 여러 일들을 겪으며 성장해 나가게 된다.


"첫 남편과 이혼한 뒤 우릴 키우며 오로지 일만 해온 엄마로서는, 그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을지도 몰라요. 그걸 되찾으려고 했던 거겠죠. 그래서 지금은 남편이 된 그 남자가 제 여동생을 구박하거나 오밤중에 밖으로 쫓아내도, 엄마는 강하게 맞서지 않았던 거예요." - P. 279~280

"저도 딱히 그렇게까지 심각한 마음으로 집을 나온 건 아니었어요. 엄마가 하는 일이 납득이 가지 않았고, 열여덟 살이 되었으니 단순히 자립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리쓰한테 나랑 같이 갈 거냐고 물었더니 따라왔어요. 하지만 저 말고는 주변에 초등학생 여자애를 기르는 친구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곳 생활이 막막해진다면 엄마가 있는 집으로 다시 보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여러 사람들이 도와준 덕분에 어떻게든 생활을 꾸려 여기까지 왔죠." - P. 281

엄마라는 사람이 어떻게 딸들에게 이렇게 모질게 굴었을까. 어떻게 그렇게 그냥 내버려 두었던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일을 리사는 나름 이해하려고 애를 썼던 모양이다. 처음엔 '굳이 왜 이해 하려고 하는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만히 다시 생각해보니 이렇게라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되었던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큰 상처를 봉합하려는 스스로의 노력이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자매의 엄마가 용서가 되지 않았다. 다행이라면 자매가 잘 성장해 주었다는 것.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두 자매가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는 이유였던게 아닐까. 삶이 녹아있는 힐링 소설, 제대로 힐링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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