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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틈새
마치다 소노코 지음, 이은혜 옮김 / 하빌리스 / 2024년 12월
평점 :


공수레 공수거. 똑같이 빈 손으로 태어나 빈 손으로 떠나는 우리의 삶. 세상에 오는 것과 떠나는 것은 모두 같지만 그 안의 삶은 다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어떤 삶을 살았느냐는 각자의 몫이다. 이 책의 이야기들의 주인공들은 모두 여성이다. 직업, 배경, 고민 그리고 각자 생각하는 삶의 방향과 의미가 모두 다르다. 하지만 딱 하나 같은게 있었다. 모두 남이 아닌 스스로 자신의 삶에 주체가 되고 싶어한다는 점이었다. 내가 내 삶의 방향키를 쥐고 원하는 방향으로 항해를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여성들이었다. 사실 이게 참 당연한 일인데, 삶이 여러 인연의 고리와 사람들 사이에 놓여있다보니 원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방향키를 쥐고 바로 서보려고 해도 이리저리 흔들리고 급기야 놓치는 일도 생긴다. 이 여성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장례지도사 일을 하고 있는 마나.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해왔던 그녀지만, 가족과 연인의 반대에 요즘 큰 갈등과 고민 속에 놓여있다. 그러던 중 친한 친구의 자살 소식과 함께 그 친구가 마나에게 직접 자신을 보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고 슬프면서도 친구의 마지막을 보내주는 일에 망설인다. 마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한참 전에 봤던 드라마 '일당백집사'를 떠올렸다. 혜리가 했던 역할이 마나의 상황과 비슷하다 느껴졌다. 드라마에서도 남자친구와 주변인들이 혜리의 직업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손을 잡는 일도 꺼리는 장면이 나왔었기 때문이다. 그때도 그랬지만.. 사실 나 역시 '장례지도사'라는 직업은 꺼려진다. 아무래도 '죽음'과 연결되어 있는 직업이다보니 가까이 하는게 쉽지는 않다. 그래서 남자친구와 가족, 주변인들의 반응이 이해가 되었다. 마나 본인 스스로 만족하고 계속 해나가고 싶은 일이라는건 알겠으나 결혼, 출산을 생각한다면 좀더 깊이 고민해 봐야 하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와.. 학폭과 관련된 이야기에선 진짜 열폭. '사과 했으니 됐지?!'라니.. '니가 사과 안 받아도 나는 사과 했다?!'로 끝이라니.. 그저 다른 사람들의 결속을 위한 희생양으로 당첨되었을 뿐이라니. 이게 말이야 방구야!! 참나. 기가 막혀서. 가해자들은 어쩜 어른이 되어도 저렇게 뻔뻔한걸까. 가해자는 끝까지 가해자일 뿐인가보다. 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더 고통 속에 놓여야 하는 걸까.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힘든 삶을 살아야 하는 것도 피해자. 가해자는 자신의 잘못을 잊어버리고 희희낙락 살아가는데 말이다. 현실에서도 참 많이 일어나는 일이다. 법은 대체 누구를 위해 있는 걸까.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너무 약하다. 특히 미성년자라고 하면 처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요즘 청소년들 영악해서 오히려 법을 이용하며 뻔뻔하게 대놓고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소년법이 사라져야 하는 이유다. 죄는 나이를 떠나 죄일 뿐이다. 학폭에 가담하는, 가담했던 이들 중 죄를 뉘우친 이들이 얼마나 될까.
다른 상황 속에 놓여있지만, 우연이 겹쳐 연결이 되는 이들의 삶을 보면서 내 삶을 돌아보게 됐다. 내 삶도 지금은 내가 주체가 아닌 아이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보니 소설 속 여성들의 상황과 고민들이 마냥 멀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희안하게도 이야기 속 여성들의 고단하고 슬프고 힘든 삶의 순간들이 여운처럼 남는다. 그런 순간들을 발판삼아 그녀들이 원하는 삶으로 안착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