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탄을 하면서 읽었던 <한국 공포 문학의 밤> 두번째 작품인 <사람의 심해>. 어떻게 이런 상상을 했을까 싶을만큼 놀라웠던 작품이다. 월, 화.. 두 요일 작품 모두 만족스럽게 읽었다보니 나머지 요일의 작품들도 궁금해졌다. 작은 가방 안에 쏙 넣고 다니기 딱 좋은 사이즈와 두께의 책이다보니 이동할때나 아이들 픽드랍을 하면서 비는 짧은 시간에 읽기에도 참 좋았다. 이번 편은 죽은 이의 몸에서 수산물이 끊임없이 나오는 한 가문에 얽힌 이야기였다. 그 수산물로 부를 쌓고 대대손손 번영을 이룬 가문.. 소개글만으로는 감이 잡히지 않는 이야기라 대체 어떤 이야기일지 참 궁금했다.
오래 전, 온 나라가 심한 기근으로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지경에 이르렀던 시절. 소씨 가문의 시작은 그때부터였다. 목을 맨 늙은 부친의 시신을 보며 고민을 하던 아들이 처자식을 위해 아버지 시체에 손을 댔던 그때, 아버지의 몸에서 튀어나온 싱싱한 물고기로 살아남게 되면서 소씨 가문의 비밀이 시작된 것이다. 소씨 가문의 직계 핏줄을 이은 이들의 죽은 몸에서는 끊임없이 수산물이 잉태되었고, 신기하게 이 수산물은 겹치는 법이 없었으며, 수산물이 나오는 한 시체는 썩지 않았다. 일정 시간마다 한 마리씩 나오는 수산물은 바닷물에 시체가 잠기면 중단되었다. 이런 특징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소씨 가문은 많은 자손을 낳으려 애를 썼고, 그렇게 시체에서 얻은 수산물로 부를 쌓아왔다. 이런 가문의 비밀에 질색하며 집을 나왔던 정유는 집을 나온지 5년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고향을 찾게 된다.
지하 깊숙한 곳에 마련된 넓은 공간은 거대한 수조로 가득했고, 각 수조마다 한 사람씩 누워있었다. 그 수조들 중 하나에 오랜 세월 그래왔듯 집 안에서 짧은 장례식을 거친 아버지의 시체가 있었다. 정유는 엄마에게 아버지도 팔거냐고 물었고, 엄마는 아무렇지 않은듯 아빠를 파는게 아니라 물고기를 파는 거라고 할 뿐이었다. 정유가 고등학생이었던 때 일어났던 집안의 비극을 잊은 모양새였다. 아니, 이 비극을 잊은건 엄마 뿐 아니라 가문 사람들 모두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비극에도 여전히 가문 사람들 대부분 가문의 사업인 수산업에 매달리고 있으니 말이다. 정유는 이런 집안이 끔찍하게만 여겨질 뿐이었다. 언젠가 자신도 이런 수조 속에 누워있게 될거라 생각하면 끔찍할 수밖에....
영원히 수조 속에 갇혀 후손들을 위해 수산물을 잉태해야 하다니.. 이 집안 식구들에게 영면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인듯하다. 자신의 남편을, 아버지를, 형을, 누나를, 조카를... 남녀노소 나이불문, 죽음 직후 수조 속에 가두고 수산물을 채취하기에 거리낌이 없는 이 사람들.. 서로를 가족이라 여기긴 하는 걸까? 모두가 상대방을 '돈'으로 보고 있는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니 가문에 대한 정유의 감정이 이해가 되는 한편, 집안의 도움 없이 살아가려 애를 쓰던 정유의 사회생활의 고단함 또한 이해가 되서 정유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었다. 놀라운 상상력이 담긴 소설,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가 된다. 다른 요일의 소설들도 하나씩 만나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