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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실의 새 - 나는 잠이 들면 살인자를 만난다
김은채 지음 / 델피노 / 2024년 5월
평점 :

평생 중 선명하게 꿈을 꾸는 일이 얼마나 될까? 아니, 꿈을 정확히, 또렷하게 기억하는 일이 많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가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꿈은 결혼 전 친정집에서 키웠던 반려견을 떠나보내기 전에 꾸었던 너무나 슬펐던 꿈, 그리고 첫째를 임신하고 꾸었던 태몽 정도다. 꿈은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부터 기억이 흐려지고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너무나 선명한 꿈을, 그것도 새가 되어 누군가 잔인하게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하는 꿈을 자주 꾸는 한 남자가 있다. 그 꿈으로 먹고 살면서도 '꿈을 꾸지 않는게 꿈'인 이 남자, 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잔혹한 꿈을 반복적으로 꾸는 걸까?
'자신이 꾸는 꿈을 글로 풀어내 스릴러계의 인기있는 작가가 된 은둔 작가'라는 배경을 가진 주인공에 호기심이 생겨 읽어보게 된 책이다. 이 작가는 10세 이전의 기억도 없는 부분기억상실도 있는 남자다. 또, '야경증'이라는 수면장애까지 가지고 있는데, 하필 이 작가가 쓴 책의 사건들이 그대로 현실에서 벌어진다는 설정이다. 기억상실 또는 몽유병 같은 수면장애를 가졌고, 꿈이 현실에서도 벌어진다는 설정을 가진 이야기라면 보통 주인공 본인이 범인인 경우가 많다. 비슷한 설정의 이야기들은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재미가 달라진다. 그래서 이 책도 '설마, 혹시' 하는 의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읽었더랬다. 그런데 다행히(?) 내 짐작과 다른 이야기로 흘러갔다. 와,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가는 거였다니!!!


10세 이전의 기억이 없으니 왜 자신이 보육원에서 자랐는지 알지 못하는 하진은 운이 좋게도 빠르게 입양을 갈 수 있었지만, 양부모는 좋은 부모가 아니었다. 그를 반려견 대체품으로 여겼을 뿐이었으니까. 아니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어 싶어 분노가 솟구쳤다. 대체 하진의 삶은 왜 이런건가 싶을만큼 불행이 연달아 그를 찾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사실 진짜 불행은 시작도 하지 않았었던 거였음을 이후에 알았다. 불행의 끝판왕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그가 왜 자꾸 그런 꿈을 꾸는건지, 왜 새가 되어 방관자처럼 살인자의 살인을 목격해야 하는건지.. 드러난 진실은 생각보다 더 잔혹했고, 끔찍했다.
책을 읽기 시작하니 후루룩 금새 읽어나갈 수 있었다. 결말로 치달을수록, 진실에 다가갈수록 더 잔혹해지는 이야기에 경악했다. 정말이지 사이코패스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겉으론 멀쩡해 보이는데 뒤로는 어떤 짓을 할지 모르니 말이다. 살인도 하면 할수록 는다는데, 이 소설 속 살인자 역시 그런 모양새였다. 얼마나 많은 살인을 저질렀으면.. 어휴!! 예상과 다른 전개로 꽤 흥미로웠던 소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