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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BRIS - 나를 찾아 주세요
박성용 지음 / 좋은땅 / 2024년 1월
평점 :

꽤 오랫동안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말을 할 줄 알았으면..' 하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행복한지도 물어보고 싶지만, 그 무엇보다 어디가 아플 때 말 혹은 표현만은 꼭 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두 반려견이 올해 9살로 노견에 접어들고 나서부터는 더 그런 생각이 잦아지는 것 같다. 반려견들은 아파도 티를 내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평상시 유심히 관찰하는 방법 뿐이니 아마 많은 반려인들이 같은 생각일거다. 때문에 반려동물과의 소통을 가능하게 해줄 기계가 발명된다면, 엄청난 이슈가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궁금했다. 인간과 동물의 소통을 가능하게 해줄 기계가 정말 발명되어 버린 세상의 이야기가 말이다.


미국의 한 IT 기업인 WWW(What a Wonderful World : 얼마나 위대한 세상인가!)의 발명품 MLF(My Lovely Friend! : 동물과의 커뮤니케이션 장치)가 전 세계에 큰 화제를 몰고 왔다. 15년간의 막대한 투자와 연구로 개발되었다는 이 혁신적인 기계는 지금은 인간이 동물에게 의사와 명령을 전달하는 기능(그러니까 동물이 인간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뿐이지만, 향후 5년 안에 동물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전달할 수 있는 기능이 추가로 개발될 예정이었다. 또 현재는 인간과 오랜 세월 같이 지낸 개와 고양이에게 적합한 제품이지만, 이후 다른 동물들과의 소통이 가능한 제품도 개발할 계획임을 밝혔다. 이 엄청난 제품은 출시와 동시에 전 세계에 돌풍을 일으킨다. MLF 개발과 출시를 반대하는 시위도 적지 않았지만, 반기는 사람들이 더 많았기에 날이 갈수록 구매자는 늘어만 갔다.




동물을 범죄에 이용하는 이들이 있을거라는 예상은 처음부터 있었지만, 출시 후 실제 벌어진 사건들은 그 예상치를 훌쩍 넘는 일들이었다. 게다가 예상치 못한 일들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반려동물을 자식처럼 생각했던 이들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반려동물의 생각과 행동에 배신감을 느껴 반려동물을 죽음으로 몰아넣기도 했고, 반려인의 배신을 눈치챈 반려동물이 반려인을 공격하는 일도 있었다. 또, 인간과 소통을 함으로써 반려동물의 인지능력과 사고력 등 많은 부분이 달라지면서 생각보다 지능이 급격하게 높아지는 것에 대한 우려의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회적 문제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지만 이미 4개월만에 650만대가 팔려나간 MLF. 이대로 정말 괜찮은걸까?

아무리 좋은 의도로 발명한 제품이라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사람들은 동물들에게 좀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고 동물과의 평화로운 공생 관계를 생각한 개발 의도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시작했다. 동물들은 다른 사람을 해치고 개인정보나 물건을 훔치는 것 뿐 아니라 전쟁에도 이용되었다. 이 책을 읽고나서 반려동물과의 소통을 위한 기술 개발은 세상에 나오면 안되는 발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확한 의사전달이 오히려 범죄에 악용되고, 동물의 목숨을 앗아가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행복한지, 어디가 아픈지에 대한 부분만이라도 알았으면 싶은 소망이 누군가에겐 범죄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게 허탈하기도 했고,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에 또 한번 실망했다. 나도 인간이지만, 도대체 인간의 악은 어디가 바닥일까. 소통할 수 없는 지금 이대로가 행복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소통할 수 없어도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분명 있으니까. 어떤 상상은 상상으로 끝내는게 좋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게 만드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