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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자리는 역시 병원이 좋겠어
한수정 지음 / 희유 / 2024년 1월
평점 :

소설의 주인공 남유진. 외과의사지만 어머니의 죽음 이후 1년째 메스를 잡지 못하고 있는, 트라우마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의사다

. 그녀는 자살을 결심하고 자신이 죽을 장소로 병원을 선택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의사이기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모르핀'을 이용한 죽음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초반 그녀의 심리적인 상태를 보면서 마음이 착잡했다. 왜냐하면 우리 한국이 불명예스럽게도 자살율 세계 1위 국가라는 사실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뱃속에서부터 경쟁에 노출된다고 할 정도로 경쟁 압박이 심한 편이다. 이로 인한 우울증과 자살율이 높다고 알고 있지만, 별다른 대책이 나오지는 않는 것 같다. 유진처럼 상담을 거부하는 경우도 많고, 주변 시선 때문에 혹은 스스로 우울증임을 인정하지 않기보다 나약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문제가 더 커진다고 어디선가 봤던 것 같다. 외국에서처럼 일반 병원을 가듯 상담 받는 것 역시 특별한 일이 아닌 것으로 여겨져야 이런 부분이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국가 차원에서도 사회적으로도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과 편견도 달라져야 할 부분이라 생각된다.


유진이 자살을 결심했을 때, 그녀의 자살을 도와주기라도 하는 듯 상황은 유진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듯 보였다. 시골의 한 폐교를 개조한 상면 병원의 의사로 1년간 근무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도 그녀가 자원해서 가는 것처럼..; 자살을 앞둔 그녀가 자원했을리 없지만, 어쨌든 달리 생각하니 괜찮은 상황이었고, 유진은 새로운 근무지에서 첫날 자살을 하기로 나름대로 계획을 세운다. 게다가 때마침 그녀가 가는 곳에 모르핀을 필요로 하는 환자가 있었기에 모르핀 주문을 하기에도 수월했다. 그동안 어머니와 함께 살던 집에 거의 들어가지 않고 숙직실에서 생활하다시피 했던 유진은 이번 기회에 손댈 수 없었던 어머니의 물건들을 친구 지훈의 도움을 받아 정리까지 마쳤다. 이제 정말 세상과의 이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 상황은 유진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모르핀은 도둑 맞았는데, 환자는 미칠듯이 넘친다. 이러다 자살이 아니라 과로사로 죽을 판이었으니 얼마나 기가 막힌가. 근데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보건소도 없던 곳에 의사가 왔으니 주민들의 기대감은 얼마나 높았겠는가. 왠만해선 아파도 참기 일쑤였는데, 의사가 왔으니 죄다 몰려올 수밖에. 그래도 다행인건 유능한 간호사 미경이 그녀의 곁에 있다는 점이었다. 상면 출신에 스위스 자살 조력자 경력까지 있는 그녀는 유진의 원활한 진료를 위한 환경을 조성하고,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는데 아주 적합했다. 첫날부터 동네 사람은 전부 몰려온 것 같이 늘어선 줄에 경악했던 것도 잠시, 유진은 성실하게 진료를 해나갔다. 몸이 불편해 오지 못한 환자들을 위한 왕진에, 급한 환자 이송까지 해내며 말이다. 이런 상황에 유진은 자신의 계획대로 자살을 할 수 있기는 한걸까?!
유진과 미경의 자살에 대한 생각,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차이가 확연히 달랐고, 그래서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입장 차이는 분명했고, 각자 지닌 상처에서 비롯된 생각이었기에 누가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달리 생각해보고 또 느낄 수 있는게 아닐까? 남들에겐 피하고만 싶을 시골마을의 근무가 오히려 유진에겐 인생 제 2막의 시작과 다름없는 일이었으니, 참 다행이다 싶다. 우울증을 겪는 이들 모두 유진처럼 생각이 바뀔만한, 인생 2막이라 칭할 수 있을만한 맞춤형 사건이 딱 하고 나타나 다시 한번 삶에 대한 의지와 열정을 되살릴 수 있음 좋겠다. 아니면 맞춤형 우울증 극복 프로젝트를 실행 해주는 곳은 어디 안 생기려나.. 뭐가 됐든 우울증을 극복하는 이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어쩌면 불편할 수도 있는 주제지만, 그런 느낌이 들틈도 없이 읽었던 소설이었다.
-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