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피난처에 잘 있습니다
이천우 지음 / 북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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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기회로 과거로 돌아갔다면?! 먼 과거가 아닌 단 몇일이지만, 그 몇일 사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사건을 앞두고 있다면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겠는가. 만일 나에게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내가 가본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가볼 것 같다.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지 결국 같은 인생을 살게될지 은근 궁금해진다. 운명은 정해진걸까, 만들어지는 걸까? 이런 기묘한 타임루프를 어느 삼남매가 겪는다. 그것도 아버지의 사망을 기점으로 말이다. 삼남매는 아버지의 마지막을 몇번이나 겪고 장례식을 몇차례나 치뤄내야 했다. 대체 자신들이 왜 자꾸 시간을 되돌아가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삼남매는 그 이유를 찾는 동시에 자신들에게 닥친 현실도 되짚어보고 대처방안을 고민한다.



타임루프 관련 이야기를 좋아해서 꽤 읽었지만, 이런 타임루프는 또 처음이다. 무려 삼남매가 동시에 겪는데다 되돌아가는 타임도 멀지 않은 과거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몇일간의 시간을 여러번 겪으면서 삼남매의 인생이 달라졌다. 첫째는 아내와의 이혼과 정리해고를 앞두고 있었고, 아마추어 댄서라고는 하나 백수나 다름없는 둘째는 사랑 때문에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하며 웹툰작가인 셋째는 불현듯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달았다. 각자의 문제도 복잡한데, 아버지의 임종 이후 자꾸 시간이 되돌아가고 같은 일을 반복해서 겪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왜 아니겠는가. 다투고 배신당하고 상처받는 일을 반복해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삼남매는 날짜가 되돌아갈 때마다 다른 방법을 시도해서 각자의 문제점을 다른 방향을 바꿔보려 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남긴 일기장을 토대로 자신들의 시간이 왜 되돌아가는지를 알아내고자 고군분투한다. 이들이 마침내 찾은 단서는 '에이미'. 그런데 도무지 이 여자가 누구인지, 어디서부터 찾아야 하는지 알길이 없다. 충격적이게도 에이미는 유산되긴 했지만 삼남매보다 먼저 태어날 수 있었을 또 다른 형제를 임신했던 인물이고, 아버지의 열렬한 사랑의 상대였다. 과연 삼남매는 일기 속 '에이미'라 칭해지는 여자의 정체를 알아내고, 아버지의 한을 풀어 다시 시간이 미래로 흐르게 만들 수 있을까?

삼남매의 타임루프는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었을까? 아직 철이 덜든, 여유가 없이 깊이 생각하지 못하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인생을 알려주고 싶은 아버지의 마지막 가르침이 아니었을까? 다 읽고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아버지가 자신의 아이들을 사랑했던 거라고. 삼남매가 처한 상황들이 현실에서도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일들이라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순식간에 후루룩 읽었던 것 같은 소설. 가독성이 좋은 독특한 타임루프를 만날 수 있는 소설이었다.

-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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