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인 여자들]

신을 죽인 여자들
클라우디아 피녜이로 지음, 엄지영 옮김 / 푸른숲 / 2023년 12월

가톨릭 집안의 막내 17살 소녀 아나가 불에 탄 시체로 발견된지 벌써 30년이 되었다. 그 긴 시간동안 아나의 아버지 알프레도는 딸을 잊지 않고 범인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누가 왜 내 딸을 살해했을까. 이 사건으로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막내동생을 잃은 리아는 무신론자가 되어 가족과 연을 끊은 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작은 서점을 운영하며 유일하게 같은 편이라 생각되는 아버지와 편지로 소통을 하고 있었고, 엄마와 첫째딸 카르멘은 더더욱 종교에 빠져들었다. 가족 중 한명이 누군가에게 끔찍하게 살해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면, 그 가정은 더이상 화목한 가정일 수가 없을 터이다. 남겨진 가족에겐 슬픔과 분노가 더 클테니까.

이야기는 총 7명의 아나의 주변 인물들의 시점으로 이어진다. 사건 당시부터 아나에 대한 이야기,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중간 이후가 되면 인간이 악마보다 더 악마같은 존재임을 깨닫게 해준다. 욕망을 하느님의 계시 혹은 하느님의 시험으로 여기며 종교를 죄로부터 빠져나갈 구멍으로 이용한다는 것이 기가막힐 따름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분노가 같이 상승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어떻게 그러고도 30년의 세월을 아무렇지 않게 살았던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만약 아나가 알프레도에게 사실을 말했다면, 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 아니면 아나의 친구 마르셀라가 '선행성 기억상실'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조금만 달라졌어도 사건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결국 30년만에 끔찍한 진실을 마주한채 병으로 세상을 떠나버린 알프레도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요즘 가장 눈에 띄는 신간 중 하나인 이 책은 가독성도 좋아 스릴러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한번 읽어보라 권하고 싶은 소설이다. 스릴러에 종교라는 색을 입힌후 가족애, 사랑, 우정이라는 양념을 쳐서 긴장감과 몰입감을 높여놓아 스릴러 매니아들에게 사랑받을 만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다만, 뒷부분으로 가면 갈수록 혈압과 분노가 함께 상승할 수 있다는 점도 알고 있어야 한다. 욕설이 마구 튀어나오는 기현상을 겪을수도 있다는 점 역시 기억해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