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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종말은 투표로 결정되었습니다
위래 외 지음 / 황금가지 / 2023년 10월
평점 :

단편들을 다 읽은 후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종말과 관련된 여러 영화 속에서 보고 느꼈던 것과 달리 책속에 등장하는 세상, 인물들은 종말을 앞두고도 꽤 침착하고 조용하다는 거였다. 처음에는 어떻게 이렇게 침착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 종말을 눈앞에 두고 있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하려고 할까로 생각을 해보니 또 이해가 되었다. 왜냐하면 나 역시 아이들 곁에서 조용히 관망하거나 지켜보거나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내며 그저 아이들 곁을 지킬 것 같기 때문이다. 미혼이었다면 해보고 싶었던 것 혹은 일탈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두 아이, 두 반려견을 키우고 있는 나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희망을 꿈꾸며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것 같다고 생각하니 책속의 분위기가 확 와닿는 것 같았다.
첫번째 이야기부터 참 독특했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 살인자가 된다니. 책 때문에 수많은 인명피해를 봤음에도 파쇄보다 무기로서의 활용 가치를 계산하는 움직임에 절로 혀를 찼다. 멸망으로 가는 길을 인간이 만들어가고 있는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네번째 '시네필(들)의 마지막 하루'를 읽으면서는 이상하게 넷플릭스 종말 영화 <돈 룩 업>이 떠올랐다. 왜인지 모르겠다. 전혀 다른 이야기임에도 자꾸 제대로 보지 못하고 넘어간 영화가 떠오른건 영화를 제대로 한번 보라는 거였으려나. 생의 마지막까지 미완성인 이야기의 결말을 찾아다니는게 참 쓸데없는 하루를 보낸 주인공이다 싶었지만, '무엇에든 매달리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서 그런거였을거야'라고 생각하고 이해하기로 했다.
마지막 작품인 '가위바위보 세이브 어스'는 가장 황당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였다. 외계인과의 가위바위보 시합에 지구의 운명이 걸려있다니 기가막히고 어이없는 상황임이 분명하다. 여기에 또 주인공은 지려고 마음먹어도 기어코 이기고야마는 가위바위보의 1인자였다. 지구의 운명을 건 승부가 가위바위보라니.. 참 하찮은데 진지하게 임해야하니 하찮다 말하기다 애매하다. 그래서 이 책의 작품들 중 가장 황당하면서 웃겨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되었다. 단편집이라 술술 읽기에 편했고, 종말을 주제로 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신선하면서도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