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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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의 발달로 고통없는 세상이 올 수 있을까? 암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던 아버님과 친구를 가까이서 봤기에 후유증 없는 진통제가 등장한다면 참 반가울 것만 같다. 하지만, 아무리 후유증이 없다한들 작은 고통에도 진통제를 투여하는건 별로 바람직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지 싶다. 고통에 무감각해진 사람들이 어떤 일을 벌일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어쩌면 책에서처럼 오히려 고통을 추구하는 사이비 종교가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고통이 없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접근해서 책을 펼쳤는데 예상보다 무거운 생각거리를 던져댔다. 뭐든 자연적인 것이 가장 좋은게 아닌가. 본래 가지고 태어나는 감각 중 하나인 통각을 없앤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이 될테니 많은 문제가 발생할거란 것 역시 예측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 행해졌던 마구잡이 개발과 환경파괴가 이제 기후변화와 기후재앙으로 우리에게 되돌아오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고통을 겪지 않는 인간은 신의 구원을 갈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고통이 없는 상태가 죄악에 빠진 상태보다도 더욱 무서운 타락이라는 주장을 수긍했다. 그들은 통증의 신체적 감각뿐 아니라 고통에 수반되는 두려움, 절망감, 모멸감, 자괴감, 분노 등의 정서적 반응에도 주목하며 이것이 영혼의 존재를 증명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므로 고통은 곧 영혼이자 인간의 정수이고, 고통의 근절은 영혼의 멸절이자 신에 대한 거부이며 구원에 대한 모독이었다. - P.30

후유증 없는 진통제가 개발된 이후, 아픔을 견디는 것이 정신병의 징후로 여겨지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이에 되려 고통을 추구해야 구원 받을 수 있다는 사이비 종교가 나타났고, 교단에서는 고통을 단계별로 배치해 사람들에게 굳이 겪지 않아도 되는 조그만 고통을 겪게하고 극복하게 하면서 완전히 교단에 귀속되게 만들었다. 세상이 변해도 사이비 종교는 어김없이 생기나보다. 어떻게든 사람들의 약해진 마음을 파고들어 현혹시키는 못된 인간들. 그런 인간들에게 속아 고통이 없는 세상에 살게 되었으면서, 고통을 추구하게 되어버린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현실 속 진짜 사이비 종교에 빠져든 사람들도 이해가 되지 않는데 책 속 세상이라고 이해가 될까. 굳이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겪어가며 사이비 종교에 귀의하는 사람들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서는 고통과 절망에도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의미를 찾아내는 것은 인간의 커다란 능력이다. - P. 131

초월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고통을 극복함으로써 대체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 P. 228

인간은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는 삶을 견딥니다. 고통에 초월적인 의미는 없으며 고통은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무의미한 고통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생존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인간은 의미와 구원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 P. 285

자신의 아이보다 신약 개발을 더 중요하게 여긴 부모에 의해 실험대상으로써 고통스럽게 살아야 했던 경과 그녀의 오빠 효. 불치병으로 긴 투병생활을 겪으며 사람들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잃고 방황하다가 사이비 종교에 빠져든 욱. 이들을 보면서 고통이 주는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때로 고통은 정신적 혹은 신체적으로 한단계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삶의 방향을 크게 바꾸기도 하며, 삶 자체가 달라지게 만들기도 한다. 때문에 결과가 좋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에 따라 의미는 달라질 것이다. 내 생각에는 굳이 고통에 삶의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고통이란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게 좋을테니까. 가볍게 읽기보단 좀더 무겁게 읽힐 소설을 찾는다면 딱일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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