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유전학
임야비 지음 / 쌤앤파커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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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영화를 본 것 같은 소설. 타국의 인물을 대상으로 한 국내 작가의 작품인데, 읽다보면 순간순간 외국 작가의 소설로 착각할만큼 입체감 느껴지는 인물들과 탄탄한 스토리는 절로 감탄을 하게 한다. 독재자가 존재했던 시절의 역사적 사실과 획득 형실 이론, 한랭 내성 유전이라는 과학적 이론이 섞여 멋진 이야기가 탄생했다. 과연 악은 유전이 될까? 나는 유전적인 부분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으나, 환경적인 요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역사적인 인물들이나 알려진 인물들 중 잔혹함의 대명사로 불리는 이들의 부모 혹은 조부모가 똑같이 잔혹했던 경우가 흔한가? 간혹 '그 핏줄 어디 가나' 싶은 말을 생각나게 하는 사례들이 종종 보이기는 하지만, 결코 흔한 사례는 아니다. 물론 가족까지 알려지는 일은 거의 없다보니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반대로 주어진 환경에 따라 잔혹함이 폭발하는 경우가 있다. 가장 생각하기 쉬운 환경이 바로 전쟁이다. 지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상황만 봐도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가 싶은 일들이 끝없이 쏟아지고 있지 않은가. 잔인한 행각을 벌이는 군인들이 과연 전쟁 전에도 그러한 인물들이었을까?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히틀러,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온갖 악랄한 생체 실험을 했던 나치 장교 요제프 멩겔레 두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악인이었을까? 한번 생각을 시작하니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런 생각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야기의 주인공 '기적의 케케'가 겪은 일들 때문이다. 알렉산드르 황제의 승인을 얻은 젊고 자신만만했던 리센코 후작에 의해 시작된 실험은 방한복으로 무장한 건장한 군인들도 벌벌 떠는 강추위에 다양한 연령대의 어린 아이들을 아침 저녁으로 영하 50도의 물 속에 입수 시키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런 일들을 반복하며 살아남아 성장한 아이들을 결혼시켜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한랭 내성'이라는 유전적 형질을 갖게 하는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연약한 아이들은 계속 죽어나갔고, 성장한 아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 역시 오래 버티지 못하고 전염병에 의해 죽었다. 자신의 목을 내걸고 20년의 기한으로 시작한 일이었기에 조금이라도 성과를 내보여야 했던 리센코 후작은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처음의 온화함은 사라지고 갈수록 냉랭함과 잔혹함만 더해갔다. 지나치게 자신의 이론에 집착하던 리센코 후작의 모습은 악마 그 자체였다. 페쇄적이며 한정된 집단 생활 속에서 자라며 죽어가야 했던 아이들의 모습은 독일의 유대인 생체실험, 일본의 마루타 생체실험을 절로 떠오르게 만들었다. 고작 20년 안에 말도 안되는 방법으로 유전적 형질을 만들겠다니. 어떤 면에선 참 대단한 인물이다.

이런 끔찍한 상황 속 실험체로 살아가던 케케가 드디어 탈출을 하면서 꽃길을 걷나 했지만, 케케의 인생은 끝까지 굴곡진 삶이었다. 그녀의 아들로 인해서.. 본문을 다 읽고 에필로그를 읽어보면 절로 소름이 돋는다. 정말 이게 실화가 아닐까 싶을정도로 정교하게 짜여진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케케의 아들의 정체 그리고 그 아들이 가진 유전적인 부분을 예측해보면 제목이 왜 '악의 유전학'인지를 알게 된다. 끝까지 손에서 놓지 못하고 읽게 만들었던 소설. 한편의 묵직한 영화를 관람하고 쉬이 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지를 잔뜩 얻은 기분이지만, 요즘처럼 사회적으로 묻지마 사건이 자주 일어나는 때에 한번쯤 생각해볼만한 주제가 아닌가 싶다.

#악의유전학 #쌤앤파커스 #임야비 #e북카페

-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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