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너무나 자주 잊는 것 같다. 이 땅에는 인간 뿐 아닌 수많은 동식물이 함께 살아가고 있고, 모두가 주인이라는 것을 말이다. 인간들은 동식물의 터전을 당연한듯 빼앗으면서도 그 대안을 따로 마련해 주지 않는다. 오히려 괴롭히거나 쫓아내기만 할뿐 공존은 이후의 문제로 생각한다. 이야기 속에서처럼 한두개의 주차공간을 위해 20년된 느티나무를 희생시키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과 느티나무 주변을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는 길냥이 네로를 괴롭히고 쫓아내려는 사람들은 현실에서도 참 많이 존재한다. 그래도 다행인것은 이야기 속에선 해피엔딩이라는 것이다.맞벌이를 하는 딸이 손녀를 출산하자 잠깐이나마 도와주기 위해 딸네집에 왔다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던 김붙들 할머니. 딸은 갓난쟁이와 하루종일 씨름하며 하루하루 우울해지는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그저 당장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할머니의 손길이 마냥 좋을 뿐. 맞벌이로 고생하며 아이 맡길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는 딸 부부에게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하지 못한 할머니. 문득 창밖으로 보이는 느티나무를 보다가 손녀와 외출에 나선다. 느티나무 그늘에서 쉬며 손녀를 위한 뜨개질을 하던 할머니는 육아로 힘들어하던 젊은 초보엄마를 만나게 되고, 이를 계기로 하나둘씩 모인 주민들로 느티나무 아래 할머니의 뜨개질 교실이 열리게 된다.바이올린 신동으로 알려져 잘 해야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려 오히려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예준이, 아빠와 둘이 살다가 아빠의 재혼으로 잠시 고모와 살게되면서 부모 모두에게 버림 받았다는 생각에 마음을 닫아버리고 길냥이 네로에게 애정을 쏟는 서윤이. 두 아이도 느티나무와 네로를 통해 조금씩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며 느티나무를 베고 주차장을 만들자는 의견에 적극 반대 의사를 낸다. 주민들의 의견은 분분했고, 드디어 투표가 시작된다.내가 어릴 때만해도 하루가 멀다하고 동네 한쪽 공간에 자리를 마련해 일을 마친 어른들이 모여 교류의 장이 펼쳐지곤 했다. 그러면 근처에서 아이들도 모여 놀았다. 내가 그 시절의 엄마 나이가 되고 아이를 키우다보니 한번씩 그 시절이 생각난다. 어렵고 가난했지만, 그럼에도 서로 돕고 살아가던 그 시절의 정겨운 분위기가 그립다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김붙들이 할머니의 뜨개질 교실이 딱 그 시절의 동네 사랑방 같은 느낌이라 괜히 울컥하기도 했다. 지금도 동식물은 터전을 잃어가고 있고, 그 때문에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떠밀리듯 내려오는 일이 많아졌다. 미래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느티나무 밑 모임과 같은 주민 교류의 장이 현실에서도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