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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가 아니면 죽음을 ㅣ 스토리콜렉터 99
제프 린지 지음, 고유경 옮김 / 북로드 / 2022년 1월
평점 :

한때 미드에 빠져 살았던 적이 있었다. 범죄 수사물 관련 미드를 참 많이 봤었는데, 그중 <덱스터>도 있었다. 그런데 사실 <덱스터>는 내 취향이 아니었다. 살인자를 살인하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억누르면서도 자신의 행위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덱스터>라는 캐릭터가 이상하게 불편했다. 그래도.. 하는 마음에 몇편을 봤지만, 결국 보기를 중단했던 미드 중 하나였다. 그랬는데, 이번에 만난 작품이 <덱스터>의 원작자의 신작이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녀는 <덱스터>와 같은 사이코패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둘다 실제 본성을 감추고 사람들 사이에서 연기를 매우 기가막히게 하면서 살인조차 거리낌없이 하는 인물들이니 거짓된 삶을 산다는 부분에선 닮은 캐릭터라 할 수 있겠다. 이번 주인공은 도둑이다. 그것도 천재적인 대도.
<열여섯 살 때 경찰차를 훔친 이후 단 한 번도 실수할 적이 없다. 지난 몇 년 동안 거의 모든 일을 계획한 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술술 해냈다. - P. 23>
<모든 것을 너무 손쉽게 해내다보니 불가능할 정도로 터무니없고, 상상조차 할 수 없고, 어리석고 완전히 말도 안 되는 강도질. 반드시 이런 일을 해야 한다. - P. 24>
버젓이 12.5톤이나 되는 동상도 훔칠만큼 마음만 먹으면 훔치지 못하는게 없으니, 더욱 불가능한 물건 훔치기에 집착하는 듯 보이는 라일리의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바로 페르시아제국의 황실 보물로 단 한 개에 150억 달러라는 세상에서 가장 큰 핑크 다이아몬드 다리야에누르, '빛의 바다'다. 그런데 이번 미션은 스스로도 불가능을 떠올릴만큼의 난이도 최강이었다. 맨해튼의 작은 사설 전시장인 에버하르트 박물관에 전시될 예정인 다리야에누르는 국방부 연구소의 보안 기술을 적용한 최첨단 전자 보안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고, 장소가 협소해 드나드는 사람을 아주 엄격히 감시할 수 있으며, 네이비실, 그린베레, 포스리컨 등 미국의 엘리트 특수부대에서 복무하다 전역한 대원들로 이루어진 보안 회사 블랙해트 소속 정예 경비원들이 24시간 밤낮으로 지키는 것도 모자라 이란이슬람공화국의 완전무장한 혁명수비대 한 소대가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할 예정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라일리는 불가능에 가까울수록 더욱 불타는 인물이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비슷한 캐릭터 하나가 자꾸 떠오를듯 말듯해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리플리>였다. 사람을 죽이고 그 사람의 삶을 훔쳐 사는 리플리와 오로지 자신의 목표만을 위해 여러 인물로 변장해 사람들을 속이며 진짜 자신을 숨긴채 거짓된 삶을 사는 라일리가 닮았다고 생각되는건 나 뿐일까? 심지어 이름마저도 비슷한 두 캐릭터. 혹시 거짓된 삶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늘어나는 살인과 또 다른 거짓말들로 결국 불행을 초래하던 리플리처럼 라일리도 불가능에 가까우면서 위험도가 높은 도둑질(목표를 위해 리플리처럼 거짓말과 살인을 반복하는 일)이 결국은 그의 발목을 붙잡게 되지 않을까? 더욱이 라일리에겐 그를 집요하게 쫓는 FBI의 특수요원 프랭크 델가도도 있으니 말이다. 암튼, 라일리에겐 그의 도둑질을 돕는 최적의 파트너가 있다. 바로 미술품 위조범인 모니크다. 그녀는 라일리의 변장을 돕고, 도구를 제작한다. 어찌나 솜씨가 감쪽같은지, 라일리의 진짜 얼굴을 아는 이가 없을 정도다. 아니, 왜 이런 좋은 머리와 능력들을 도둑질 하는데 쓰는 거냐고..!!!
귀신같이 철통 보안까지 뚫어버리는 두뇌, 그를 실행하는 대범함과 목표를 향한 끊임없는 도전정신과 열정, 그리고 인내심을 가진 라일리, 그리고 타고난 패션 센스, 믿기 힘든 솜씨로 그림, 조각 등을 완벽하게 복제하는 기술을 가진 모니크. 이 좋은 재능들이 나쁜 짓에 낭비되고 있다는 것이 참 안타까웠다. 이번 이야기는 라일리 시리즈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나에겐 덱스터보다 낫긴 하나, 역시나 썩 좋아할 수 없는 캐릭터이다. 도둑질을 응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더구나 도둑질 하려고 거짓 결혼도 불사하며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고,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인물이니 말이다. 다만, 워낙 스케일이 큰 도둑질이다보니 영화같은 장면들이 떠오르는 흥미진진함은 있다. 때문에 다음은 무엇을 도둑질 할지 궁금하긴 하다. 프랭크의 활약 역시도 궁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