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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낳은 아이들 ㅣ 단비어린이 역사동화
조연화 지음, 황여진 그림 / 단비어린이 / 2020년 11월
평점 :

"기억하거라. 양반이든 천민이든,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반드시 귀히 쓰일 데가 있어서 하늘이 낳은 것이다." - P. 73
"천것 주제에 똑똑한 아들을 낳은 죄로 그동안 제 한이 끝도 없었는데, 훈장님 덕분에 희망이 보입니다요. 부디, 부디 우리 자식만은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끝까지 도와주시옵소서. 그렇게만 된다면 저는 오늘 죽어도 좋습니다요." - P. 126
"불휘야, 살아 보니 한때 옳은 일을 많은 하고 마는 것보다, 적더라도 평생 옳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널리 이로운 것이더구나!" - P. 162
단번에 읽어버렸던 역사 동화책이다. 완전 감동. 뒷부분에서 울컥해서 눈물이 나올 뻔 했다. 이런 이야기를 읽고나면 신분제가 사라진 현대에 태어난 것에 감사하게 된다. 특히 여성의 지위가 한없이 낮았던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말이다. 여자라서, 천민이라서 같은 인간으로 태어났음에도 수많은 차별에 허무하게 쓰러져갔을 삶들을 상상하면 지금의 삶에 감사할 수밖에 없다. 혹시 옛 시절의 실제 선비들 중 이야기 속 강대감(그것도 우의정이라는 높은 벼슬을 지냈고, 임금의 신임까지 돈독했던!) 같은 인물이 있었을까?! 결코 알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있었을거라 믿고 싶다.
아무 사심 없이 백성들을 살피고, 부패한 관리들을 법대로 처리해 왔던 강대감은 조정 대신들의 모함에 머나먼 전라도의 끝, 섬진가오가 바다가 맞닿는 마을 마로현으로 귀양을 가게 된다. 이곳을 다스리는 관리들은 부패한 관리들이었고, 때문에 강대감은 제대로 된 관리조차 받지 못한다. 하지만 강대감은 개의치 않았다. 반드시 진실이 밝혀질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강대감이 오기 바로 전까지 머물렀던 유 대감이 겨우내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준비해 놓은 광이 있어 관리들의 부실한 관리에도 꿋꿋하게 버텨낼 수 있었다. 한편 마을에선 이방의 파렴치한 계획에 의해 한 천민 가족이 재산을 빼앗겼고, 그것도 모자라 아내가 목숨을 잃는 사건이 벌어진다. 우연히 그 현장을 목격한 강대감은 부당함을 알면서도 자신의 처지 때문에 나서지 못하고 바라봐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날 강대감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북쪽길로 산책 삼아 가보게 된다. 그곳에서 한 무리의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고, 곧 북쪽길에 자리잡은 마을이 천민의 마을이라는 것, 그가 만난 아이들이 천민 아이들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하지만 강대감은 개의치 않고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고, 매일 찾아와 아이들과 조금씩 친해진다. 그러다 아이들이 자신들의 부모가 당하는 부당함을 덜어보고자 글을 가르쳐 달라는 부탁을 했고, 강대감은 고민을 하다 아이들을 가르쳐보기로 한다. 아이들이 배우는 글은 언문으로 한양에서는 오래전부터 통시(변소)글이라고 할 정도로 모든 백성들이 배우고 있는 글이었다. 그런데... 한 아이. 불휘. 강대감이 우연히 목격했던, 어미를 잃었던 그 아이. 너무나 똑똑했던 그 아이는 언문으로 만족하지 못했고, 이에 깊이 고민을 하던 강대감은 그 누구도 모르게 불휘에게 양반들의 글자를 가르치게 된다.
귀양길에 만난 소중한 인연. 마로현의 천민들에게 있어서 강대감은 하늘에서 내린 인물이나 다름 없었다. 그 덕분에 아이들은 꿈을 꿀 수 있게 되었고, 희망을 꿈꾸었다. 강대감에게 있어서 마로현의 천민들은 절대 잊을 수 없는, 끊을 수 없는 인연이었다. 너무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다. 많은 아이들이 읽고 느끼는 바가 있었으면 좋겠다. 꿈이 있고, 희망이 있다면 길이 있다는 것을, 세상이 확 바뀌지는 않더라도 꾸준히 길을 내다보면 언젠가 길이 생긴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