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우 엔젤
가와이 간지 지음, 신유희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고난 후, 내 블로그를 검색해 보고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알고보니 내가 이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했다는 사실을 알고 말이다. 나는 당연하게도 작가의 작품 중 읽은 책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 작가의 이름이 익숙하고, 작가의 작품 몇몇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 한두권 정도는 읽기 전이긴 하지만 책장에 꽂혀 있기도 하고. 블로그 이웃들을 통해 전작들에 대한 리뷰들을 접하고 나도 모르게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던 작가였던 걸까? 뭐 어쨌든, 앞으로 작가의 작품들을 하나씩 읽어보는 걸로. 이 책은 먼저 출간 되었다는 <데드 인 헤븐>의 앞선 이야기라고 한다. 이렇다는건 이 이야기도 시리즈로 좀더 출간될 예정인걸까? 주인공 진자이 아키라를 내세운 형사 시리즈로 말이다. 그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스노우 엔젤>로 만난 진자이 아키라의 캐릭터도 괜찮고, 이야기 분위기도 좋았어서 시리즈라면 반가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드 인 헤븐>이 이 다음 이야기라고 하니, 위시에 넣어두고 읽어봐야겠다.


"가늘고 길게라고는 해도 매달 몇만 엔씩 약을 사다니, 주부 쌈짓돈으로는 한도가 있지 않나?"

진자이가 의문을 던지자 이사는 바로 해답을 주었다.

"용돈이 떨어진 주부는 우선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습니다. 한도액을 꽉꽉 채워 빌리고 나면 다시 새 카드를 만들어요. 현금서비스를 못 받을 정도가 되면 카드로 상품권을 사서 상품권 판매업소에 팔죠. 견제 한도액도 초과할 것 같으면 갖고 있는 명품이나 귀금속을 팔아요. 아까 그 아줌마는 현재 이쯤 되려나. 손목시계가 싸구려로 바뀌어 있었으니까."

보행로를 걸으며 이사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라도 하듯 계속 지껄였다.

"팔 물건도 없어지면, 다음엔 드디어 남편 돈에 손을 댑니다. 처음엔 은행 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죠. 한도액까지 빌리고 나면 예금을 모조리 인출하고, 잔고가 바닥나면 정기예금이나 재형저축을 해약해요. 은행계좌가 다 비어버리면 남편의 생명보험이나 주택화재보험을 해약합니다. 그쯤 되면 카드빚에 쫓기다 못해 대부업체로 뛰어들죠."

진자이는 암담한 기분이 들었다. 이사가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는,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가정이 각성제로 인해 붕괴되고 빚더미 지옥으로 빨려 들어가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대부업체에서도 돈을 빌리지 못할 정도가 되면 결국 불법 사체, 고리대로 가는 게 코스죠. 여기까지 오면 이미 남편도 함께 개인파산을 하는 수밖에 없죠."

"그 지경이 되도록 용케도 남편에게 들키지 않는군."

진자이의 그 말에 이사는 어깨를 움츠려 보였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마누라한테 살림을 전부 맡기니까요. 은행 통장도 생명보험 증서도. 그러니까 파산할 때까지 눈치를 못 채는 겁니다. 마지막에는 전부 들키고 이혼, 그리고 일가가 뿔뿔히 흩어지게 되지만요."

"이혼당한 후에 뽕쟁이 마누라는 어떻게 되는데? 그래도 약을 끊지 못하면?"

이사는 흥미 없다는 양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매춘이나 도둑질이라도 하지 않을까요? 좀 더 이른 단계부터 하는 사람도 있지만요. 뭐, 약값이 어디서 나오든 우리하곤 상관없는 일이에요."

(중략)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남편이 불쌍하다 싶을지 모르겠지만요."

진자이의 속마음이 들렸나 싶게 이사가 덧붙였다.

"평범한 주부가 약에 빠지는 건 대체로 남편에게 불만이 있기 때문이에요. 일에만 빠져 사느라 아내를 거들떠보지 않는다거나, 집안일이며 육아며 아내에게 죄 떠넘긴 채 자기는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고, 고민을 말해도 들어주지 않는다너가. 그러니까 남편도 자업자득이라는 거죠."  - P. 143~145


"도쿄도의 전체 세수에 맞먹는 금액이 폭력단의 자금원이 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폭력단이 사라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폭력단의 자금원 중 35퍼센트가 각성제, 15퍼센트가 도박장 개장이 차지합니다. 각성제와 도박으로 자금원의 절반이 조달되는 셈이죠."  - P. 177


소설 속 이야기라고만 할 수 없을 것 같은 이야기다. 그간 읽고 봤던 다른 영화, 소설 속 마약 관련 이야기랑 겹쳐 보면 현실에서도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가 아닌가. 평범한 일반인들이 마약 거래를 하는 일 말이다. 우리나라도 마약 청정국이었으나 이제는 마약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고 했으니 어디선가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무섭고 답답하고 걱정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부디 내 아이의 미래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 안전한 사회이길 바란다.) 그저 '돈'이 된다면 그게 어떤 결과를 초래하든 상관없이 달려드는 불나방 같은 인간들 때문에 왜 모든 사람들이 피해를 입어야 한단 말인가. 이런 못된 사람들만 따로 격리되어 살아가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사회로부터 아에 분리해 버리게 말이다.


9년전, 한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눈앞에서 잃어야 했던 진자이는 그 자리에 있던 폭력단원 5명을 사살하고 모든 것을 상사에게 보고한 뒤 달아났다. 이대로 복귀하면 이 사건을 제대로 조사할 수 없을게 뻔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도망자 신세가 되어 사건을 조사해 보지만 조그마한 단서 하나 제대로 찾지 못했다. 불현듯 찾아온 자괴감에 잠깐이지만 이제 그만둬야 하는 걸까 생각하던 찰나, 옛 상사가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마약단속반 미즈키 쇼코와 함께. 신종 마약을 조사하기 위해 마약반 혹은 경찰과 그 어떤 연결 고리 없이 우수한 조사 능력을 갖춘 이를 찾던 쇼코에게 진자이는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 진자이는 공식적으로(서류상) 2년전 죽은 사람으로 되어있으니 말이다. 망설이던 것도 잠시, 진자이는 쇼코의 의뢰를 받아들여 최근 돌고 있는 합성 약물의 최상위 인물을 잡기 위해 마약 판매상 노릇까지 하며 차분하게 계획을 실행해 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최종 보스에게 다가갈 기회를 얻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